얼마 전 지인들로부터 에세이 한 권을 추천받았다.
추천의 이유는 제각각이어도 글이 참 좋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책 제목이 조금 낯간지러웠지만 여럿이 입을 모아 추천한 책이니 의심을 잠시 내려놓고 읽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책은 당혹스러울 만큼 별로였다. 문장이 유려하지 못해 읽는 내내 자꾸만 흐름이 끊어졌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표현들은 질서 없이 나열되었다. 술에 취해 쓴 싸이월드 포스팅 마냥 감정의 농도만 짙을 뿐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잠시 책을 덮고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검색을 해보았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 좋은 글로 평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좋은 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일단 '좋다'라는 감정부터가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책처럼 누군가에게 좋은 글이 다른 이에겐 정반대의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이 제각각이고, 그 기준에는 우열이 없다. 더불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글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각기 다른 성격의 글들은 당연히 '좋은 글'이 되기 위한 서로 다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월요일 합평 모임을 위해 쓰는 글과 회사에서 대표님께 쓰는 글은 목적도 다르고 잘 쓰고 못씀의 기준 역시 상이할 것이다. 이쯤 되니 '좋은 글'의 범위가 너무 방대하여 애초에 정의할 수 있는 것인지 조차 의심된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좋은 글의 출발은 잘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글이란 결국 누군가가 읽었을 때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일상의 단어들로 채운 쉬운 문장과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강조하는 구조만 갖춘다면, 적어도 읽는 것부터가 난관인 글의 멍에는 벗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수준의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문득 영화 '위플래시'의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말이 그만하면 됐어(good job)야"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매일 밤 고민을 거듭하며 글을 쓰고 월요일 저녁마다 머나먼 연남동까지 넘어와 합평에 참여하는 이유가 '그만하면 된' 글을 쓰려는 건 아닐 것이다.
적당히 괜찮은 수준을 넘어선 훌륭한 글은 통찰의 영역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사람의 마음에 작은 미동이라도 만들어내는 건 그럴듯하게 포장한 잔재주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좋은 글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조건 위에 긴 고민의 시간이 빚어낸 묵직한 통찰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일상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남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영역에서 공통점을 끄집어내 연결하는 작업들이 앞서 말한 통찰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이 과정은 너무나 험난하고 고통스럽다. 오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고 때로는 노력을 들여도 의미 있는 답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언제나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결과물로서 보장되는 게 아니란 사실을 요즘 많이 느낀다.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매번 훌륭한 글이란 목표에는 닿지 못할지언정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은 나를 닮아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쓴 글은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단 나의 언어가 고스란히 담겼으면, 더불어 나의 현재를 반영한 사유의 결과로 채워졌으면 한다. 때로는 그 글이 형편없기도 하겠지만 피드백과 반성의 과정이 글과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오늘도 고민하며 글을 끄적인다.
최종 완성된 결과물은 못난 글, 그럭저럭 괜찮은 글, 훌륭한 글 사이 어딘가에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중 어느 영역에 놓이더라도 내가 쓴 모든 글들은 나와 닮아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