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 멀리 반짝이는 별 Jul 09. 2022

꽃같이 아름다웠던

02. 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드라큐라>에서 열연을 펼친 위노나 라이더. ⓒ 2022. IMDB All Rights Reserved.

넷플릭스 시리즈물 가운데에서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인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에는 낯익은 얼굴이 등장한다. 20년간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던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게 2000년대 초였다. 쇼핑몰에서 옷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던 라이더는 당시에도 커리어가 흔들리고 있었다. 충분한 부를 소유했음에도 옷을 훔친 이유에 대해 다양한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고, 이 시점부터 라이더의 연기 인생도 확연히 내리막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노나 라이더는 철저히 1990년대의 배우가 됐다. 

     

위노나 라이더는 1971년생으로, 히피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꽤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 1986년도 영화 <루카스(Lucas)>가 데뷔작이다. 이후 <헤더스(Heathers)>, <비틀쥬스(Beetlejuice)> 등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고, 각광받기 시작한 이 시기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위노나 라이더의 전성기는 누가 뭐라든 1990년대다. 특히 그녀의 핵심 커리어는 1990년대 초반에 집중되어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1988년에 열여덟이었는데, 1990년대 초반이라면 겨우 갓 스물을 넘은 시기가 전성기였다는 뜻이다. 위노나 라이더는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고, 1990년대에 아카데미 후보에 두 번이나 지명됐다. 최전성기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당시 가장 뜨거운 여배우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조니 뎁의 여자친구이기까지 했다!   

  

위노나 라이더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될 수 있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 (1990)
드라큐라 Bram Stoker’s Dracula (1992)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 (1993)
영혼의 집 The House of the Spirits (1993) 
청춘스케치 Reality Bites (1994)
작은아씨들 Little Women (1994)      
<가위손>에 출연한 위노나 라이더와 당시 연인인 조니 뎁. ⓒ2022. IMDB All Rights Reserved.

20대로 접어들기 전, 위노나 라이더는 자신의 연인 조니 뎁과 <가위손>에 출연했다. <가위손>은 팀 버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이후 조니 뎁은 꾸준히 팀 버튼의 영화들에 출연했다. 위노나 라이더와 조니 뎁의 관계는 라이더가 출연했던 <열정의 록큰롤(Great Balls of Fire)>(1989) 시사회에서부터 시작됐는데, 조니 뎁은 스물일곱, 라이더는 겨우 열아홉살이었다. 여덟 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인이 된 두 사람은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았다. <가위손>은 실제 연인인 두 사람이 주연을 맡았고, 기괴한 상상력으로 당시 <배트맨>을 내놓았던 팀 버튼이 연출한 영화였기에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평단의 반응이 좋았다. <비틀쥬스>, <에드우드(Ed Wood)>, <슬리피 할로우(Sleepy Hollow)> 등과 함께 기괴한 세계관을 반영한 팀 버튼의 대표작으로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조니 뎁의 주가는 이 영화로 한층 상승했다. 악취미의 대가 존 워터스의 <크라이 베이비(Cry-Baby)>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조니 뎁이기에 손이 가위인 기괴한(?) 캐릭터가 어색하지 않았지만, 또한 조니 뎁이기 때문에 로맨틱한 매력남으로 인기몰이가 가능했다. 그 조니 뎁의 여자친구로, 이제 막 스물로 접어드는 연기 잘하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바로 위노나 라이더였다. 라이더는 <가위손>과 비슷한 시기에 셰어, 크리스티나 리치와 소품 같은 영화 <귀여운 바람둥이(Mermaids)>에 출연했다. 

이후 위노나 라이더의 비상은 조니 뎁의 그것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와 작업했던 모습. ⓒ2022. IMDB All Rights Reserved.

(<대부> 1, 2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부3(The Godfather Part 3)>로 주춤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드라큐라>의 뮤즈로 위노나 라이더를 선택했다. 사실 라이더는 <대부3>에 알 파치노의 딸로 출연하려 했으나, 코폴라는 자신의 딸 소피아 코폴라(훗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로 성공적인 감독 대열에 합류한 그녀)를 캐스팅했다(이후 이 캐스팅은 <대부3>의 별점을 몇 개나 날려 먹은 최악의 선택으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드라큐라>에서 위노나 라이더는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게리 올드만, 안소니 홉킨스 같은 뛰어난 연기파 영국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훗날 돌이켜보면, 이 영화에는 키아누 리브스, 모니카 벨루치 등 스타들이 출연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했다.)     


<드라큐라>는 매력적인 공포영화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오해로 아내 엘리자베타를 잃은 드라큐라 백작이 영겁의 시간을 초월해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기본 줄거리로, 위노나 라이더는 드라큐라 백작의 자살한 아내 엘리자베타이자 약혼자와 드라큐라 백작 사이에서 혼란에 빠지는 미나 머레이를 연기했다. 드라큐라의 아내라는 전생을 가진 미나 머레이는 순결하고 보수적인 여성의 표본이다. 잔인한 공격성과 섹슈얼리티를 동시에 내포한 뱀파이어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이제 막 스물을 넘긴 위노나 라이더는 미나 머레이의 무결점 순수성을 드러내기에 더할 나위없이 훌륭했고, 드라큐라 백작으로 인해 타락하는 순간까지 훌륭히 소화했다.  


위노나 라이더의 미나 머레이는 마틴 스콜세지의 <순수의 시대> 메이 웰렌드로 이어졌다. 메이 웰렌드는 자신의 약혼자가 청혼해주기만을 바라며 순진무구하게 살아가는 뉴욕 상류사회의 평범한 여성이다. 은밀한 사건들을 관조하며 사랑과 가정을 끝내 지키는 강한 인물이지만, 캐릭터의 의외성은 역시 위노나 라이더의 가녀린 외모로 인해 영화 말미에 강력한 폭발력을 발휘했다.      

위노나 라이더는 <순수의 시대>로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이후 <청춘스케치> 출연. ⓒ2022. IMDB All Rights Reserved.

위노나 라이더는 <순수의 시대>로 생애 첫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됐다. 오스카 전초전인 골든글로브에서는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스물넷이었다. 

<순수의 시대>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영화이기도 했지만 그 출연진이 무려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미셸 파이퍼였다. 그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밝혔던 위노나 라이더에게 골든글로브 트로피는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코폴라나 스콜세지 같은 거장과의 작업은 <정복자 펠레(Pelle, the Conqueror)>의 빌 어거스트로 이어졌다. <영혼의 집>에서는 제레미 아이언스, 메릴 스트립 등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 뒤, 소품 같은 영화로, 장난끼 넘치는 벤 스틸러의 연출 데뷔작 <청춘스케치(Reality Bites)>에 출연했다. <청춘스케치>는 포스터가 유명한데, 90년대 말 TV에서 벽에 걸린 드라마 소품으로 등장했던 이 영화 포스터를 많이 봤을 것이다. <청춘스케치>는 대학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하기 직전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뇌를 담았다. 그 시절 청춘의 아이콘처럼 보였던 에단 호크가 주연을 맡았고(이후 <비포 선라이즈>로 인기를 모았는데, 에단 호크는 아역 출신이어서 좀더 거친 이미지를 풍기기 위해 머리도 감지 않고 수염을 기르며 손톱의 떼도 그대로 둔다고 밝힌 바 있다), 연출을 맡았던 벤 스틸러가 직접 출연했으며, 당시 스티브 잔, 재닌 가로팔로 등 젊은 배우들이 등장했다. 한동안 시대극이나 극도의 형식주의 영화에 출연해왔던 라이더는 이 영화로 80년대 그녀가 출연했던 <헤더스> 류의 청춘물로 다시 돌아왔다. 스물다섯 살 여배우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영화는 없었다.  


유사한 시기에 그녀는 질리언 암스트롱의 <작은 아씨들>에도 출연했다. 수잔 서랜든이 어머니로 등장했던 이 영화에서 위노나 라이더는 쾌활하고 지적인 둘째 ‘조’로 등장했다. 영화에는 클레어 데인즈, 커스틴 던스트 등이 자매로 등장했고, 가브리엘 번이 라이더와 러브 라인을 구축했다. <태양의 제국> 이후 성인 연기를 막 시작했던 아역 출신 크리스찬 베일, 에릭 스톨츠 등이 출연했다. 워낙 강력한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기에 많은 관심을 모았고, 영화는 그 관심을 충족시켰다.     


위노나 라이더는 의상, 음악과 더불어 출연배우로는 유일하게 아카데미상(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수상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그녀는 오스카에 두 번이나 지명된 여배우가 된 셈이었다. 거장들과 언제든 작업할 수 있는 연기력, 그리고 흥행력 등을 감안할 때 위노나 라이더는 배우로 이미 많은 걸 이뤄냈다. 당연히 앞날은 탄탄대로가 될 것임이 자명했다.     

 

하지만 70년대 뛰어난 여배우 중 하나였던 샐리 필드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음에도 잊혀진 배우가 됐듯,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살아남는 것에는 보장이 없다. 위노나 라이더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작은 아씨들> 이후 <보이즈(Boys)>라는 작은 영화와 조슬린 무어하우스의 <아메리칸 퀼트(How to Make an American Quilt)>, 니콜라스 하이트너의 <크루서블(The Crucible)>에 출연했다. <아메리칸 퀼트>와 <크루서블>은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였다. <아메리칸 퀼트>에는 앤 밴크로프트, 엘렌 버스틴 등 내로라 하는 미국 여배우들이 등장했고, <크루서블>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와의 두 번째 조우였다. 두 영화 모두 오스카 시즌에 적합한 작품으로 큰 화제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여느 때와 달리 라이더는 주목받지 못했다.   

<에일리언4>는 실패한 영화로 기록됐다. ⓒ2022. IMDB All Rights Reserved.

이즈음 라이더는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에일리언4 (Alien: Resurrection)>의 출연이 그것이었다. <에일리언> 시리즈는 1992년에 나왔던 데이빗 핀처의 3편 이후 누가 속편을 감독할지에 큰 관심이 쏠렸었다. 수많은 감독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3편이 상대적으로 부진했고, <에일리언>이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섣불리 감독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당시 <델리카트슨 사람들(Delicatessen)>에서 미증유의 영상미를 선사했던 장 피에르 주네가 있었고, 그가 차기 감독으로 선정되면서 시고니 위버와 함께 위노나 라이더가 소환됐다. 주로 여성적이고 연기력이 강조되는 작품들에 출연했기에 라이더가 이 SF 액션 대작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낯설었다.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장신의 시고니 위버에 비해 위노나 라이더는 161센티미터의 신장을 가진, 상대적으로 소박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영화에서 어떤 인물로, 어떻게 다루어질지에 모두의 관심이 기울었다.      


아쉽게도 <에일리언4>는 3편과 마찬가지로 별볼일없는 속편 취급을 받았다. 위노나 라이더의 도전은 영화의 실패에 묻혔고, 장 피에르 주네의 할리우드 진출 역시 실패로 끝났다(물론 이후 <아멜리에>가 크나큰 성공을 거두면서 감독으로서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지만). 영화 속에서 라이더가 눈에 띄었다고 할만한 구석은 별로 없었다. 실패한 영화에서도 배우의 연기는 빛이 나야 했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이 아니었다.   

  

이 실패 즈음에 라이더는 맷 데이먼과의 연애로 이슈가 됐다. 90년대 중후반을 빛낸 일련의 배우들,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 그리고 신성 귀네스 팰트로우와 인연을 맺은 건 이때였다.    

  

2000년대로 접어들기 직전까지 위노나 라이더의 필모그래피에는 <셀러브리티(Celebrity)>, 그리고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가 있다. <셀러브리티>는 우디 앨런의 영화로, 수많은 스타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네스 브래너, 샤를리즈 테론- 이 출연했다. 제임스 맨골드의 <처음 만나는 자유>는 위노나 라이더의 이름이 전면에 걸린 영화였다. 포스터를 봐도 그녀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와 있다. 위노나 라이더 ‘주연’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영화로 득을 본 건 이제 막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안젤리나 졸리였다. 이미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던 졸리는 좋은 연기력을 지닌 배우로 분류됐다. 그녀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이후의 행보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라이더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고, 배우로서의 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렇게 그녀의 20대, 그리고 1990년대는 힘없이 저물어갔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할 것은 귀네스 팰트로우와의 인연이다. 라이더보다 한 살 어린 귀네스 팰트로우는 1998년에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 in Love)>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바로 이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그녀가 출연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팰트로우는 당시 연애 중이던 벤 애플렉과의 인연 때문인지 위노나 라이더와도 친하게 지냈다. 당시 라이더의 집에 방문했던 팰트로우는 이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시나리오를 발견했고, 그녀 몰래 시나리오를 갖고 나가 결국 배역을 꿰어찼다(는 이야기가 기사회된 적 있다). 생각하면 얄미운 팰트로우의 이 일화는 위노나 라이더의 배우 생명 역시 너무 덧없이 저물어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이후 위노나 라이더는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다. 거의 매해 영화들에 출연했고, 다양한 도전을 꾀했다. 불미스런 사건까지 벌어져 배우 생명에 위기가 왔지만, 그럼에도 라이더는 묵묵히 배우로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기묘한 이야기>를 보면, 이제 50대에 접어든 여배우의 세월이 눈에 띄어 할리우드 영화팬으로서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위노나 라이더는 어린 날 너무도 영특한 배우였고, 그 빛나는 모습은 그 시절 영화들 속에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다. 

위노나 라이더. ⓒ2022. IMDB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1990년대, 할리우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