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탁
십오층에는
늙고 병든 부모가 살고 있었습니다
육순 잔치 건너뛴 칠순 되던 해
중풍 맞은 아버지의 바깥은 무너져 버리고
굳은 몸 안에 갇힌 수인이 되었습니다
맨 발로 인지의 사금파리 밟고 오는
어머니의 치매
세상 빼앗긴 아내의 하얀 첫 편지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저 편으로 석방되고
저 편에서 저 세상이 그리워졌습니다
어머니 유독 좋아했던 분홍
진달래로 피어 나는 봄 오면
아버지의 가슴에
한 맺힌 붉은 철쭉 따라집니다
이리저리 날마다 찢어지고 부서지는
어머니의 하루
살아 갈수록 말라 버리는 시간마다
쫓아다니며 닦아 내고 치워 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저 편에서
아버지의 이 편 가슴은
함께 찢기고 부서 젔습니다
십오층 1507호에는
하늘 가까워진 높이가 있었습니다
낯 선 높이에 갇히어 뒤틀리며
한편으로 두렵고 허무했던 당신들의 하루에도
해 뜨고 달 별 오는 사람 눈빛 있었다는 것을
진달래 피고 철쭉 짙붉어지는
서러운 복받침 있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치매
자식 사랑 끝에서 무너진 억장이었다는 것을
몸과 마음 나란히 잠들 수 없었던 십여 년
찢어지고 부서지며 그런대로 지내 가셨습니다
속 삭히는 섭섭함 모르는 듯 지나 쳐 갔던
절름거리던 부모 속정 이었습니다
1507호 등불 꺼져 버렸습니다
1507호 달빛 물든 창에 별 둘 반짝입니다
포말로 이는 눈물에 쓰러져 오는
아버지
어머니
속 가슴 둔덕마다 진달래 분홍입니다
긴 한숨 비탈마다 철쭉 흩뿌립니다
-어머니는 나의 분홍을 가져가 버렸다
삼월이 오면 내 가슴에는 투명한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