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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aiji May 25. 2020

누군가 즐거운 한 때, 그는 떠났다.

마흔, 죽음에 대하여

만남이라는 사치를 누리다
헤어짐이라는 오만을 부린 우리
한 사람이 떠나갈 땐 참 많은 게 떠나


다들 잘 지내나요
난 별 일 없는데
다들 행복한가요
난 웃고 있는데


세상 속 우리 모습이 이토록 슬픈 건
내 못난 마음이 잔뜩 흐려져서겠지





그런 날이 있다. 

왠지 모든 게 잘 되는 날.

어제는 이 주만에 동네 뒷산에 달리기를 나갔는데, 

오랜만에 하는 운동임에도 다리가 가볍고 힘이 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와의 데이트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고,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단둘이 시원한 와인과 함께한 저녁식사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한참 웃고 떠들던 자정이 다 된 일요일 밤에 대학 동기에게 문자가 왔다. 



지난 토요일,

새벽 출근길에 가을방학 음악을 듣고 있었다. 

졸린 출근길 멍하니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요란한 소리가 차에서 들렸다. 


나는 차를 갓길에 급히 세우고 차에서 내려 소리가 났던 보조석 쪽으로 가 살펴보았다. 

차 보닛과 백미러, 옆 문이 심하게 긁혀있었다. 

아마 굵은 철사가 길 위에 떨어져 있었고, 그 구부러진 철사가 차를 심하게 긁은 것으로 보였다. 


차가 손상되었다는 것에 무척 짜증이 났다가,

큰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마치 죽음의 발톱이 나의 차를 긁고 스쳐지나간 것 같았다.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일요일 저녁,

아이를 일찍 재우고 

아내와 즐거운 저녁식사시간을 가졌다. 

값이 꽤 나가는 나파밸리 화이트 와인을 열고,

제일 비싼 초밥을 포장해와서 육아로 가지지 못했던 시간을 누렸다. 


우리는 무척 행복하고 호화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엌에서 충전 중이던 내 핸드폰을 보고 아내가 말했다. 

"00에게 문자가 왔어."

"00?"

00은 내 대학 동기 여자아이였다. 

각자 바빠 안부도 묻고 지내지 않은 아이였기에 문자가 왔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부고

배우자상

......'


누군가는 웃고 떠들며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슬퍼했다. 

그것도 칠순이 넘으신 부모님의 죽음이 아니라 나이 마흔의 어린 두 딸의 아빠가.


나는 항상 불만이 있었다. 

매일 열두 시간 넘게 일을 해야 했고,

두 시간 정도만 아내와 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문자를 받고 나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2시간의 가족과의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깨달았다. 

그리고 하루도 허투루 살아가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가장 먼저 걱정이 돼서 떠올랐던 사람은 대학 동기의 어린 딸들.

둘째 딸은 내 아이보다 늦게 태어났기에 아직 돌도 되지 않았다. 

이 둘째 아이는 영영 아빠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애도하고 슬퍼하는 몫은 오롯이 산 사람의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똑같은 하루도 누군가에게는 모든 걸 준다고 했고 바꿀 수 없는 날이 되었고,

나는 내 가족과의 하루 단 두 시간의 시간을 위해서는 그 어떤 걸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 출근길에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떠난다면 괴로워할 사람이 있음에

절대 갑자기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굳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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