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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aiji Dec 11. 2023

헐벗은 나를 찾아 떠난 사막 (2)

2023년 칠레 아타카마 사막 울트라 마라톤 후기(대회 시작)

<홈피 첫 화면을 장식한 나의 뒷모습. 아직도 뭉클하다>

솔직히 말하건대, 이 대회를 참가하면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00k를 논스톱으로 완주한 경험이 있어서 40~50킬로미터를 여러 날 나눠서 달리는 (스테이지 레이스라고 부른다.) 이 대회가 오히려 수월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논스톱 트레일러닝대회와는 다르게 산을 많이 오르는 코스도 적기도 하고 잠을 잘 시간이 주어지기에 충분히 회복을 하며 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큰 착오였다. 


대회 중에 사람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이 세 가지다. 

10 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의 무게, 물집 그리고 고산병. 


감사하게도 나는 물집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기에 그런 축복받은 내 발에도 물집이 생겼다. 

이중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것은 고산병이다. 


첫날 대회가 시작되었다. 

<출발선에서>
<해발 3,2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시작되었다>

Day 1. 

코스명: Navigation by rock

거리: 35k


걷기만 해도 심박이 160에 다다른다. 

설레어서 그런가?

지대가 높아서인가? 

가방이 무거워서인가? 

물까지 배낭이 12킬로가 넘어서인가? 

심박이 떨어지질 않는다. 달릴 수가 없다. 

심박이 오를수록 뇌압이 찬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뿜어 올리는 혈액이 뇌를 쳐올릴 적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컷오프를 한 시간 남기고 첫 캠프장에 도착했다.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했던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제외하고

내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나만 고산병인가. 

나만 힘든 건가. 

다들 너무 잘 걷는다. 


앞으로 오일동안이 걱정이다. 

Day2. 

코스명: The Slot Cayons

거리: 38k


아침에 일어났는데 두통이 나아지질 않는다. 

이제 두통에 콧물까지 난다. 

고산병에 감기도 걸린 걸까. 

달리지 못하고 걷기만 해서 컷오프 30분 전에 들어왔다. 

캠프에 도착했는데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머리를 감싸고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고산병은 이틀만 참으면 괜찮아진다는데, 

아타카마 사막에 도착한 지 나흘째인데 전혀 호전이 없다. 

오늘은 어찌어찌 안 잘렸지만 내일도 버텨낼 자신이 없다. 

월 200km가량 달렸던 훈련은 무엇을 위했던 걸까. 

그냥 거리만 길었던 잘못된 훈련이었나.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이 상태로 대회를 진행하다가는 몸이 망가질 것 같다. 

한 달 후엔 홍콩에서 열리는 트랜스란타우 100k에도 참가해야 하는데 부상을 입으면 홍콩대회도 어렵다. 

이렇게 달리는 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대회는 포기하고 가족과 홍콩여행이나 할까. 

너무 힘들고 자괴감이 들어 침낭을 뒤집어쓰고 많이 울었다.

다들 괜찮아 보인다. 

다들 즐거워 보인다.  

집에 가고 싶었다. 

아내가, 아들이 보고 싶다. 

집에 너무 가고 싶다. 

내일 잘 달릴 자신이 없다. 

대회가 나흘이나 남았다. 

버텨낼 자신이 없다. 

포기해야 하는 걸까.

Day 3   

코스명: The Atacameños Trail

거리: 40k


많이 피곤했는지 아주 깊게 잠들었다. 

시계가 7시간의 긴 수면을 알려줬다. 

두통약 두 알을 털어 넣고 대회를 시작했다. 

오늘만 버텨보자. 

오늘이 대회 삼일째이니 오늘만 버티면 고산병은 괜찮아질 거야. 

내 몸아, 오늘까지만 제발 버텨줘라. 

약 기운 때문인지 머리에 혈압이 칠 적마다 깨질듯했던 두통이 좀 진정되었다. 

이틀 동안 걷기만 해서 컷오프시간에 쫓기는 힘든 날들이었다. 

서양 참가자들처럼 걷는 속도가 조깅보다 빠르면 모를까 

걷는 속도가 느린 나는 

달리지 않으면 시간 내에 들어오기 힘들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이틀 동안 고통을 겪으며 달리는 법을 잊은 느낌이었다. 


달려볼까?

천천히 달려보았다. 

심박이 올라갔다. 

그런데 혈압이 상승해도 두통이 심하지 않았다. 

호흡이 안정적이다. 

호흡이 돌아왔다. 

달릴 수 있었다. 

달려진다! 


컷오프시간을 두 시간 반이나 여유 있게 남기고 캠프장에 도착했다. 

드디어 몸이 고산지대에 적응했다! 

Por fin! 마침내! 

Day 4 

코스명: The Infamous Salt Flats

거리 21k 


약 기운이 떨어지면 여전히 편두통이 있었다. 

습도 10% 미만의 건조함 때문에 코에서는 계속 피가 났고, 흐르는 콧물 때문에 코가 헐었다. 

하지만 타이레놀을 먹으면 견딜만한 정도로 두통은 약해졌고 높은 해발의 사막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 


네 번째 날 대회를 시작하자마자 자연의 부름을 받고 20여분을 덤불에 숨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여유롭게 가다 잘못된 컷오프시간을 다른 주자들에게 듣고

서둘러 다운힐을 뛰어내려와 컷오프시간 6분 남기고 CP1에 들어왔다. 

컨디션이 좀 나아졌다고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직 대회가 반이 남았다. 

대회 나흘째에서 컷오프 당할 순 없다! 

CP1에서 물만 채우고 신발의 모래를 서둘러 털어내고 다시 달렸다. (오늘도 역시 달리진다!)

CP2에 도착했는데 스텝이 ‘멈춤’을 지시했다. 

지금 해가 너무 강하니 두 시간 동안 대기를 하란다. 


‘이 정도 더위로 왜 나를 멈추는 거야! 달리게 내버려 둬! 이러면 흐름이 끊긴단 말이야! 사막이 원래 더운 거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두 시간을 천막 그늘에 앉아있었다. 

그동안 일본 선수들이 가민시계로 온도를 체크했다. 


50...51...52...54...


양지에서 54도, 음지에서도 38도를 찍었다. 

건조한 곳이라 더운 줄 몰랐는데 살인적인 태양광이다. 

유대장님 말씀이 이런 날씨가 아주 위험하단다. 

강한 햇볕 때문에 순식간에 열사병으로 쓰러진단다. 

결국 운영본부에서 더 이상 대회진행 불가를 결정하고 시간 페널티로 정산을 하기로 했다. 

나흘째 대회는 21k에서 중단되었고, 나는 꼴찌에서 79위로 올랐다. 

Day 5 

코스명: The Long March through the Valley of the Moon

거리: 72k


롱 마치 데이다. 

가장 긴 거리를 달리는 날이다.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한국의 겨울 아침을 떠올렸다. 

달리기 좋은 아침이다.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를 폐에 깊숙이 넣으며 달려 나갔다. 

오늘도 역시 달려진다! 

고산병 완전 극복! 

낮기온이 30도 넘게 오르기 전에 진도를 많이 빼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온 샘을 따르며 페이스를 조절한다. 

순둥순둥하게 사람 좋게 생긴 샘은 풀마라톤 경험이 한 번 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용한 킬러’로 통하는 아주 잘 달리는 친구다. 

그 친구와 호흡을 맞추며 20k가량동반주를 하다 먼저 보냈다. (힘들어서 못 따라가겠다;;;)

해가 떠오르자 다시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달렸다. 

소금기 가득한 사막의 기운 때문에 배추가 절여지는 것처럼 몸이 쪼그라든다. 

소금에 절어 지칠 대로 지치며 해가 기울기를 기다리며 버텼다. 

드디어 노을이 지고 보름달이 떴다. 

산 정상에서 보름달과 노을을 촬영하던 카메라맨 띠아고를 만났다.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줬던 사진작가, Thiago>

“인태, 괜찮아?”

“띠아고, 나 너무 힘들고 지쳤어.”

“인태, 잠깐 멈춰봐. 그리고 심호흡해. 저 달을 봐봐. 여기 산을 봐봐. 여기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주변을 돌아봐.”

“그러네. 정말 멋진 곳이야. 그거 알아? 저 보름달이 뜨는 날은 우리나라의 큰 명절이야.”

“그래? 그럼 이 좋은 풍경을 가슴이 잘 안고 집으로 가져가. 

브라더, 내가 안아줄게! 힘내!”

땀, 모래, 소금에 절은 나를 띠아고가 개의치 않고 힘껏 안아주었다. 


이날 주로에서 정말  많이도 울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고산병을 극복하고 다시 내 페이스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오일동안 연락도 못하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해서 또 눈물이 났다. 

주로에서 앞뒤를 살피니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정말 한참을 엉엉 울었다. 


롱데이만 지나면 마지막 날은 18킬로만 남는다. 

롱데이가 사실상 완주를 결정한다. 

그렇게 72킬로를 14시간 만에 달리고 22시경에 캠프에 도착했다. 

해냈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짐승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이날까지 100여 명 중 20명가량이 중도포기를 했다. 

이제 80명 조금 안 되는 사람만 남았다. 

무거운 배낭과 물집, 그리고 뜨거운 태양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밥도 못 먹을 정도로 힘들어하며 포기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몸상태가 돌아와서 롱데이를 40위의 순위로 마무리했다. 

드디어 반평균이다! 

Day 6 

휴식날 


롱마치데이의 컷오프 시간이 다음날 아침 7시까지라서 

6일째 날은 달리지 않고 휴식을 가진다. 

정말 꿀 같은 날이다. 

기절해서 자고 있다 아침 7시쯤 눈을 떴다. 

스텝과 선수들이 캠프장 입구를 서성인다. 




아직 한 명이 안 들어왔다! 

마지막 주자는 24시간 가까이 산을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사막의 밤은 3~4도까지 내려가서 아주 춥다. 

그 산을 밤새 걸어 내려왔다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는 일본의 유이. 

이번이 두 번째 아타카마 대회 도전이라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발목이 코끼리처럼 부었고 물집의 개수는 셀 수가 없다. 

내 달리기에는 눈물이 나지 않지만

절뚝이며 걸어오는 천천히 가까워지는 유이를 보니 눈물이 났다. 

저 속도와 저 몸상태로 추운 사막의 밤을 꼬박 새우며 걸어오다니... 

너무 측은하고 감동적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유이를 우리는 모두 ‘챔피언’이라고 불렀다. 

Day 7

코스명: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거리 18k


산 페드로는 아타카마 사막의 오아시스다. 

이 마을까지 하프마라톤보다 조금 부족한 거리를 달리는 마지막 날이다. 

이날은 누구나 완주할 수 있다. 

식량을 전부 소진해서 배낭은 12킬로에서 5킬로로 가벼워졌다. 

그동안 힘들게 너무 버텨왔기에 마지막 날에는 모든 걸 털어내고 싶었다. 

배낭을 멘 채 18킬로를 멈추지 않고 있는 힘껏 달렸다. 


드디어 완주! 

완주 세러머니는 꽃게처럼 옆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침에 아차산 갈 적마다 아내와 아들이 두 시간 정도 후면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창 밖을 바라보곤 한다. 

아빠가 아차산 갔다 집에 돌아오면 아들을 재밌게 해주고 싶어 꽃게춤을 추곤 했다. 

아들을 위한 세레머니였다. 


일주일 만에 켠 핸드폰은 무슨 이유인지 로밍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투어리스트센터 직원에게 가서 사정사정해서 핫스폿을 얻어냈다. 


일주일 만에 아내에게 처음 연락했다. 

”집에는 별일 없어? “

제일 먼저 걱정되었던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고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철없는 남편, 아빠 때문에 맘 졸이며 기다리게 한 미안함이 밀려와 말없이 한참을 있었다. 


‘부상 없이 잘 완주했어. 물집 두 개밖에 안 생겼어. 아픈 곳은 없어. 걱정 마. 나 너무 잘 달렸어.’


모든 걸 털어냈다. 

너무 후련하고 행복했다. 

같이 달린 선수들 모두 서로를 도우며 의지를 많이 했다. 

나 혼자서는 절대 완주할 수 없었다. 

모두 너무 고생했고 수고 많았어. 

그리고 고마워. 



Day 6 

<롱마치 후 휴식날의 에피소드>


대회 초반에 너무 힘들게 버텨왔기에 밥심으로 버틸 요량으로 식량 소진을 많이 했다. 

내일은 없다, 오늘까지만 버티자는 심정이라 대회 후반을 생각하며 음식량을 조절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대회 하루 남기고 

남은 먹거리는 견과류와 단백질 미니바 몇 개뿐이었다. 

하릴없이 손가락 빨며 떡볶이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스페인어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칠레 스텝과 스페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너 와인 좋아해?”

“칠레 와인이 맛있지!(칭찬으로 밑밥 깔고...)”

“이따가 와인 사다 줄까? 우리 와인 마실 거야. 너 한 병 사다 줄 수 있어. ”

“아... 고맙지만 와인은 됐고, 과일 좀 사다주라. 내 친구들이 많이 배고파. 우리 식량이 다 떨어졌어.”


그렇게 밤이 되었고, 나는 그냥 빈 말인 줄 알고 모닥불에서 멍 때리고 있었는데 칠레인 스텝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자기 따라오란다. 

화장실보다 더 머나먼 스텝 텐트를 따라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장면인가?! 

자기들도 대회 마지막 날이라고 파티를 한단다! 

와인과 바베큐다! 

고기 익는데 한 시간 걸린다기에 이따 다시 오겠다 약조하고 텐트로 왔다. 

아쉽게도 대장님과 다른 분들은 주무시고 아직 잠이 들지 않은 형님 두 분과 다시 스텝 텐트로 갔다. 


훈연으로 기가 막히게 부드럽게 익히고 소금만 뿌린 닭날개,

한국에서는 손도 안 대는 돼지 뒷다리 살인데 훈연 바베큐로 익은 뒷다리 살과 돼지껍질은 투뿔 소고기 등심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졌던 것은 노래와 기타.

어느 바에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라이브 현장이었다. 


대회는 자급자족 서바이벌로 진행한다. 스탭에게 음식을 얻어먹은 건 페널티(추가시간)를 받을 수 있는 규정 위반행위다. 

떳떳한 행동은 아니지만, 백여 명의 사람들과의 순위경쟁보다는 힘들 때 서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었던 밤이다. 

페널티를 준다면 기꺼이 받을 만큼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에너지 충만했던 

잊지 못하게 아름다웠던 사막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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