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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은 Nov 01. 2021

아보카도 양말

일주일에 두 번 보던 필라테스 강사는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옷을 즐겨 입었다. 레오파드 무늬나 지브라 무늬는 예삿일이었고 옷에 무늬가 없으면 색이 비범했다. 연분홍색 상의에 진분홍색 하의는 명란젓을 떠오르게 했고, 파란색 상의에 하얀색 하의는 스머프를 생각나게 했다. 한 번은 아보카도가 그려진 하얀 양말을 신고 왔는데, 그날만큼 필라테스가 어려웠던 적도 없었다. 그의 시범이 아니라 그의 양말에 자꾸 눈이 갔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옷을 사는지 궁금했다. 내가 필라테스복을 구입한 웹사이트에서는 그런 옷을 본 적이 없으니까. 하의에 그려진 상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내 옷에 그려진 것과 같은 게 아닌가. 내 앞사람도, 내 옆 사람도, 심지어 내 앞의 옆 사람도 모두 같은 상표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수강생은 검은색, 남색 아니면 베이지색 같은 무난한 색의 옷을 주로 입었고, 필라테스 강사는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색 중 하나를 골라 입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옷 취향이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필라테스복에서만큼은, 나와 그 사이에 교집합은 없어 보였다. 필라테스 센터를 나서면 어디서라도 그를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서점에서 그가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 서점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도서 검색대부터 찾았다. 기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책을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은 것이다. 영수증처럼 생긴, 도서 검색대에서 뽑은 보물지도를 손에 들고 구석으로 향했다. 책장을 뒤적이는 사람이 거의 없어 자리 잡고 책 읽기 딱 좋은 곳. 판매대를 떠받치고 있는 2단짜리 낮은 책장에 내가 찾던 책이 꽂혀 있었다. 허리를 굽혀 책을 꺼내 목차부터 훑었다. 누구하고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워 혼자 속만 끓이던 질문들을 이제 해결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그의 얼굴이 스쳤다. 정확하게는 그의 별난 옷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흔히 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또 그 일을 즐기는 모습이 별난 것이라면 지금 내 모습이 딱 그러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학자가 쓴 <고독한 군중>이라는 제목의 책은 검은색도, 회색도, 베이지색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레오파드 무늬나 지브라 무늬, 어쩌면 아보카도가 그려진 양말에 가까웠다. 


필라테스복을 구매한 웹사이트를 서점에 비유한다면? 필라테스 강사는 웹사이트의 첫 화면이 아니라 30페이지쯤은 더 뒤로 이동해 그 화려한 옷들을 샀을 것이다. 나 같은 초보자는 그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그런 곳. 사람들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긴 갈증을 풀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은밀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와 나를 하나로 묶었다.


화려하고 특이한 것, 보기 드물어 눈에 띄는 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심드렁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 흥미로운 대화 거리는 찾기 힘들 거라고 단정 지으면서. 그렇게 지나친, 이제는 자세히 떠오르지도 않는 얼굴들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남이라고 생각했던 얼굴들. 그런 책을 왜 읽냐며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잘라 말하던 사람들 눈에 비친 내 얼굴이기도 했다. 


코로나가 심해진 뒤로 필라테스를 그만두었다. 그에게 배운 어떤 필라테스 동작보다 아보카도 양말의 잔상이 더 오래 남아 있다. 덕분에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사람들, 이를테면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도 더 이상 남 같지 않았다. 필라테스복을 처음 구매할 때 무엇을 사야 할지, 어떤 게 좋은지 몰라 망설이던 나. 갈 곳 잃은 내 마우스 커서를 구한 건 인기상품, 신상품 같은 눈에 띄는 단어들이었으니까.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혹은 다양할수록 좋다는 말을 익히 들었다. 그러나 아보카도 양말이 말하길, 경험은 한편은 무디고 한편은 날카로울수록 이롭다. 경험의 수가 아니라 경험의 폭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무난한 색의 필라테스복을 입는 사람들과 아보카도 양말을 신는 사람들 사이, 베스트셀러 매대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과 <고독한 군중>을 읽는 사람들 사이. 살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딱 그만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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