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 비둘기 Sep 26. 2017

낮잠

집으로 올라가려고 아파트 승강기에 탔을 때였다.

위에서 내려온 승강기였지만

할머니 한 분이 내리지 않고 계셨다

승강기 문이 닫혔고

그녀는 어떤 층인가를 누르려는 듯

숫자에 바짝 다가서서 더듬거리며 버튼들을 누르고 있었다

2층, 4층, 11층, 13층..

이 모든 층을 누르고도 그녀는 갈 곳을 찾지 못한 듯했다

할머니 몇 층 가세요?

그제야 내 쪽을 돌아본 그녀의 한 쪽 눈은 거의 감겨있었고,

다른 쪽 눈도 잘 보이지는 않는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경로당을 가고 있었다며 내 손을 잡는 그녀.

며느리가 깜빡 잠이 들어 있길래 깨우기가 미안시러워서
혼자 나왔더만 꼭 이래 길을 잃어버리네-

다시 내려와 경로당 앞까지 내 손을 꼬옥 잡고 있던 그녀는

고맙다며,

미안하다며,

이제는 아는 길이라며,

내 손등을 토닥이고 경로당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미안함이 선택이 아니게 된다는 것,

그래도 그녀는

그녀의 온기 어린 배려와

낯선 누군가와의 3분간의 손잡음으로 며느리의 낮잠 30분을 샀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사장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