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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르따 Nov 14. 2024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1) 산 자카리아 제단화 - 2

제단화는 마치 성당 창문을 만들어 밖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제단화는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의도한다. 먼저 기둥들에 주목해 보면 양쪽에 기둥 한 쌍이 서있다. 맨 앞쪽의 두 기둥 (노란색 사각형)은 성당 내부의 실제 대리석 기둥이고 그 안쪽 그러니깐 그림 안에 실제 기둥과 거의 똑같은 모습의 기둥 한 쌍이 그려져 있다(빨간 사각형). 기둥에 새겨진 문양, 형태, 색깔까지 거의 비슷해서 언뜻 보면 실제 기둥과 그림 속 기둥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미 성당과 제단을 짓고 나서 벨리니에게 그 틀에 맞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 기둥과 그림 속 기둥 사이에는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리고 나무들이 보인다. 마치 바깥 풍경이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보이는 것처럼 의도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림의 가장 뒤쪽으로는 반구 형태의 돔이 있는데 이것 역시 실제 성당 건물이 창밖으로 확장된 것 같이 보이도록 한 의도이다. 그림 속 구조물은 다른 대부분의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산 마르코 바실리카의 제단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돔 내부가 황금색 모자이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벨리니의 그림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성모 마리아의 푸른색 로브다. 울트라마린으로 불리는 이 파란색은 정말 쾌청하고 시원한 아름다움을 준다. 그리고 린넨처럼 보이는 옷감과 함께 크리스프 한 질감까지 전해진다. 

울트라마린은 '바다(마린)+너머(울트라)'라는 의미인데 말 그대로 바다 건너온 안료이기 때문이다. 청금석이라고 불리는 보석이 그 재료이고 산지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지역이다. 지도에서 보면 이탈리아반도가 있는 지중해에서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흑해를 통한 '바닷길을 건너' 실크로드로 이어지는 루트가 그려질 것이다. 그래서 바다 건너서 온 색이라는 이름이 이 찬란한 푸른색에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무역으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보석을 갈아서 만든 안료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값은 엄청나게 높고 그림에서도 매우 제한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강조할 때 이 울트라마린을 사용하였는데 이 벨리니 그림에서의 주인공인 성모 마리아의 로브에 사용되었다. 베네치아에서는 해외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울트라마린의 공급이 가능해졌고 르네상스부터 성모에는 이 울트라마린을 사용한 푸른색의 로브가 입혀져 있다. 푸른색 로브를 입은 여성은 성모 마리아라고 보면 대부분 맞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그림 전체를 눈여겨보면 처음 언급한 것처럼 실제 기둥이 있고 그 안에 그림이 끼워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딱 들어맞게 그림이 끼워져 있어 더욱 그림이 실제 같고 진짜로 있는 창문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어색한 부분이 있다. 그림의 가장 윗부분 반원 부분과 바닥 부분이 연속적이지 않고 회색으로 처리가 되어 있다 (아래 그림 노란색 사각형). 

 정교하게 재단의 윤곽선에 맞춰 끼워 맞췄고 주변의 화려한 대리석들까지 완벽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그림의 끝부분이 엉성하게 마무리가 되어있는 게 영 어색하다. 죠반니 벨리니의 실수였을까? 물론 아니다. 이게 다 프랑스인들의 소행이다. 


베네치아의 천년에 가까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프랑스인인 나폴레옹 때였다. 베네치아를 지배한 프랑스는 그전까지 비잔틴제국에서 훔쳐 온 보물들을 포함,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들이 가득한 베네치아의 작품들을 많이 가져갔다. 지중해에 걸쳐서 보물들을 훔쳐 온 베네치아가 같은 방식으로 프랑스인들에게 자신들의 보물들을 빼앗기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슬픈 건 그러는 과정에서 인류의 보물들이 훼손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 죠반니 벨리니의 재단화도 재단에서 분리되어 프랑스로 옮겨졌다. 재단의 윤곽선에 꼭 맞게 끼워진 그림을 제거하다 보니 손상이 발생했고 프랑스 어떤 장소에 옮겨진 후 그 장소에 맞지 않아서 위의 노란 사각형으로 표시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잘라내 벼렸다. 그리고 이 그림은 아직 캔버스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대 이전의 작품이라 나무판 위에 그려졌는데 프랑스인들이 옮기면서 나무판 뒤에 액자 틀을 박아 고정했다. 이렇게 원본이 일부 손상된 상태에서 나중에 다시 베네치아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그림은 재단에 다시 끼워 맞추면 위아래가 비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대리석 회색으로 된 여백을 이어 붙여졌다. 

프랑스가 이런 식으로 가져간 베네치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들이 상당히 많아 이것 또한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좋게만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프랑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의뢰한 작품이라 합법적인 프랑스의 소유라 할 수 있다.


다음 편에는 그림의 구도와 작품 안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볼 예정이다.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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