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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Mar 14. 2023

유채꽃처럼 빠르게 장미꽃처럼 느리게

어른의 성장이란 더디고 어렵다.

 요즘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오은영 박사가 멘토로 나오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즐겨본다. 방송 초반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거나 떼를 쓰고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의 생활상이 비쳐진다. 부모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힘듦을 호소하고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안타까움이 시청자에게까지 전달된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 아이가 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드러난다. 아이들은 독특한 기질을 가졌거나 촉각에 예민하다거나 불안이 높다거나 하는 개별적 특성이 있어 스스로도 힘들어하고 있으며 부모가 알지 못했던 진지한 고민과 가족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오 박사가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명쾌한 해법으로 ‘은영매직’을 제시한다. 다행히 방법은 있고 또 그대로 실천하면 효과도 나타난다. 나는 안도하며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기도해 본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극적인 변화만큼 나의 삶에도 금쪽 처방이 내려져서 반전 있는 성장이 이루어지길 상상한다. 부모들이 자식을 생각하듯이 나를 생각하는 나의 심정은 생각보다 간절하다. 하지만, 어른은 그럴 수가 없다. 아이들은 성장기에 있지만 어른은 아니기 때문이다.

 꽃을 자라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체형적인 요인으로는 줄기가 필요하다. 줄기는 꽃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꽃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줄기가 자라 오르지 않으면 꽃은 피어날 수 없다.

 유채꽃은 성장 속도가 무척 빨라 꽃을 피우기까지 몇 개월도 걸리지 않는다. 4월쯤에 평평하게 고른 땅에 호미질을 하여 흙을 스펀지처럼 낮은 밀도로 일구어 내고 씨를 흩뿌린다. 씨가 자라날 땅의 테두리에는 일이 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둔탁한 막대기를 세우고 사이에는 가는 노끈으로 경계를 표시한다. 오가는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이다. 꽃씨를 뿌리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봄이 지났는데라고 걱정하지만  웬걸 6월이 되면 노란 꽃잎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자라난다. 특히 키가 급격하게 자라 오른다. 하룻밤만 지나면 쑤욱 솟아 올라서 놀랄 지경이다. 그 이후에 꽃이 피는 것은 순식간이다. 6월 말에서 7월까지는 눈이 즐거운 유채 축제가 펼쳐진다. 샛노랗고 자그마한 꽃들이 빼곡한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꽃을 넘나들며 비행을 즐기는 꿀벌 친구도 만날 수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하는 어린아이들처럼 혹은 유채꽃처럼 나는 고등학교 때 키가 많이 컸다. 방학을 지나면 선생님들이 ‘어머, 너 키가 컸구나.’ 하며 나의 성장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성인이 되어 성장이 더디고 느린 모습이 장미 덩굴과 같다.

 장미덩굴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해 봤다. 날이 따뜻해지는 봄에 커다란 아치 형태의 철근이 십여 미터 나란히 박힌 자리마다 장미의 묘목들이 심는다. 언제쯤이나 아치에 장미가 덮일 수 있을까 기다렸는데 결실을 보기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첫 번째 해에는 키가 거의 사람 키까지 자랐고 두 번째 해에는 머리보다 높이 자라 올랐다. 하늘을 향해 방향을 잃고 삐죽삐죽 나왔던 장미가 세 번째 해에는 아치 꼭대기에서 서로 만나 하나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른이 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아주 큰 슈퍼 컴퓨터가 있어서 지금 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이 상황에서 제일 좋은 선택을 가르쳐 주면 정말 좋겠다라고. 하지만, 당면한 인생의 과제는 스스로 고민하며 해결해야 하고 저절로 해결되는 부분은 신기할 정도로 하나도 없다.

 어른들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수많은 내적 갈등으로 성장이 가로막혀 있기에 어른의 성장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마다 아프게 더디게 진행된다. 신체적인 성장이 끝나면서 지적인 성장과 정서적인 성장도 동시에 멈춘 것 같다. 답답함 속에 자신의 한계에 갇혀 맴돌아 봤자 제자리걸음이다.

 선택한 직장에서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아끼는 인연이 끊어지는 것에 어쩔 도리가 없을 때, 차곡차곡 아껴 모아둔 돈이 사라져 갈 때 어른들은 흔들리며 성장한다. 어른의 성장은 나를 스스로 지키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문제에 부딪혀도 스스로 평온함을 견지한다면 커다란 문제들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소멸되어 간다는 것을 배운다. 평정심이란 사람에게 줄기와 같은 것이다. 줄기가 굵고 튼튼하면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듯이 평정심이라는 거대한 줄기가 있을 때 비로소 문제를 똑바로 바로 볼 수 있다.

 노랗게 피었던 유채꽃이 뜨거운 여름날이 지나가며 함께 사라졌다. 기온이 떨어지고 낙엽이 질 때면 수많던 유채꽃이 있던 자리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던 땅인 것처럼 메마르게 된다. 나는 나의 성장도 급하게 이루어지던 속도를 잃고 오랜 정체기를 가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제일 먼저 게을러졌고 책을 멀리했으며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반면에 장미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워낸다. 장미의 화려함 속에는 3년을 기다린 값이 들어 있다. 하지만, 노력과 성장 외에는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장미와 같이 묵직하게 시간을 견딜만한 자신이 없다.

 어른도 계속 성장해야 한다면 할 일이 많다고 투덜거릴 참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을 맞이할 즈음이 되자 장미꽃 마저 지고 여지없이 쓸쓸하다. 또다시 꽃이 필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적어 보는 이유는 나만의 꽃이 마법처럼 피어났으면 하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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