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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Mar 21. 2023

동백, 추워도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은 꽃이 있을까. 겨울에 피는 동백은 유난히 소설과 시 등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어 존재를 과시했다. 겨울에 피는 꽃이기 때문일까. 한 겨울 낮은 기온속에서 눈을 맞으면서도 동백꽃이 빨갛게 피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이질적인 계절감을 준다. 생명강인함을 깨닫게 하여 추위 속에도 활짝 핀 꽃이 보여준 자연의 섭리에 경탄을 뱉는다.


 동백꽃은 나무 몸체로부터 떨어질 때 한잎씩 흩어지지 않고 꽃 한송이 전체가 툭 던져지는 모습이라 떨어진 후에도 형체가 유지되어 아름답다. 게다가, 꽃, 잎, 열매 모두가 유용한 성분들로 약효가 있어 버릴 게 없다고 알려져있다. 씨에서 짠 기름은 동백기름으로 동백나무의 몸체는 목재로 사용되기도 하고 종자는 약용으로도 쓰인다.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샤넬은 동백꽃을 사랑하여 Camellia(카멜리아) 화장품 시리즈를 출시하였다.

 

사진출처 : 여행작가 신영철, 시사저널 기사 : 동백이 피네, 붉은잎이 지네, 2015-02-05


 눈 속에서도 꽃이 핀다는 낭만적인 사실과 빨간 동백꽃의 꽃말은 애타는 사랑이라고 하여 나의 첫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겨울이 되면 첫 사랑이 자주 연상되는데 그 아이가 첫눈을 뚫고 날 만나러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앞이 보지 않을 만큼 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었는데 집으로 가던 길을 되돌아 와서는 ‘눈이 와서, 같이 걷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단한 첫사랑의 뒷모습은 씁쓸했다. 나에게는 현실을 만나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내내 이어오던 연애 관계의 끝을 나는 결혼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은 헤어짐으로 결론내렸다. 나는 오랜 시간 믿었던 사랑이 그림자로 돌아서는 외로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고 이별을 인정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것이 배신이던지 집안 반대이던지 간에 괴롭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지금은 사랑에 대해 이상과 현실을 가리라고 한다면,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게 현실을 선택하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사랑이란 실현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누구를 탓할까. 내 맹목적이었던 믿음은 어리석었다.


 안타깝게도, 마흔 다섯을 넘어선 첫 번째 해인 작년은 나에게는 상당히 고난이 많았던 한 해였다. 때늦은 결혼으로 인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했고 스트레스가 높아져 집에서조차 맘 편한 쉼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직장은 기존 업무에 추가로 새로운 일을 더했고 먼거리로 이를 해서 출퇴근 길이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밀려 들어 시간이 부족하였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혀 고갈되고 있었다. 결혼 생활도 잘 하고 싶고,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고, 몸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둥둥 떠다니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에 반해 몸과 마음은 생각의 기준을 따라가지 못한 채 끌려 오고 있었다.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는 지쳐있는 직장인이었다. 저녁이건 주말이건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집안일을 해야 하는 주부였다. 나를 돌보는 것보다는 당장 해야 할 일 전화와 문자를 처리 하는 데에 급급한 마흔 중반의 아줌마였다.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이던지, 무엇에 의한, 누구에 의한 구원은 요원했다.


 동백꽃 처럼 추운 겨울날에 차가운 공기를 이겨낼 만한 아름다운 꽃 피울수 있을까. 만만치 않았던 한해가 저물어 가던 연말, 몸과 마음, 정신력과 체력이 소진되어져 가던 중에 코로나에 걸려 국가로부터 자택 대기 명령을 받게 되었다. 직장과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던 마음이 무색하게 나는 하루하루 건강을 회복하였고 오히려 휴가를 나온 사람처럼 홀가분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신이 주신 기회였다. 상황이 변한 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보려고 노력했을 때였다.     


 첫번째 나의 다짐은, 남과의 비교를 그만 두자는 것이다. 매체를 통해 만나는 젊고 성공한 사람들은 그만보자. 나는 미디어에 노출 된 사람들은 커녕 주위 사람들에 비해서도 가진 게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타인의 삶을 기준삼아 나를 재단 짓지 말자. 지금, 잘 살고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나를 인정하자라고. 개성을 가지고 알뜰하게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두 번째 다짐은, 미래에 대해 기왕이면 낙관하자는 것이었다. 현실이 변한 게 없다고 해도 내 예상을 바꿔 보자는 뜻이다. 앞서 말한 작년의 내 상황은 나 스스로 대한 질책으로 돌아왔다. 다 해낼 수도 없는 일들을 벌인 건 아닌가 라는 후회였다.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이다. 나는 스스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기로 했다. 이 시간을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라고 생각을 바꾸니 끝도 없이 펼쳐진 것 같은 가시밭길이 한결 수월한 텃밭으로 변했다. 눈앞의 것을 치우라고 저 멀리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던 것 같다.  

   

 세번째로 내가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을 보기로 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측면보다는 해야 되는 일들이 계속되어 반복되었고 끝이 있을까 싶은 기분에 빠졌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기로 한다. 내 가슴이 뛰는 일,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 자유를 갈구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쓰기로 했다. 사느라고 잊혔던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활동을 계속해 나가려고 한다. 가지고 있는 시간과 열정,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살아 보자는 작전이다.


 노란 꽃이 나는 왜 흰색이 아닌거야, 파란 꽃이 나는 왜 보랏빛이 아닌거야, 라고 불평해 봐야 소용없다. 각각의 타고난 매력과 주어진 환경이 있다. 그리고,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어떤 꽃이든지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어느 누구의 시간이라도 소중하지 않는 순간은 없다. 모든 고난을 거쳐 치열한 도금 후 정금 같이 나온다고는 하나 아, 시간이 아쉽지 않은가. 나는 오늘, 지금, 당장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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