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플 Feb 14. 2023

꽃잎 한 장, 떼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름다움이란 백퍼센트라는 뜻일까.

 이십 대 때 받은 편지 중에 기억에 남는 한통이 있다. 편지 봉투를 열었더니 꽃잎이 우수수 떨어져서 놀라면서도 너무 좋었다. 한 장 한 장 낱장으로 떨어지는 장미 꽃잎은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섬세한 우정 고백이었다. 꽃잎을 떼어 펴서 말렸을 정성, 조심스레 걷어 모아 담았을 손길, 꽃잎이 부서지지 않게 반듯하게 전달된 편지 봉투는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구를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 위치한 양재천에는 화단이 여러 개 있다. 양재천은 강남구와 서초구를 잇는 긴 산책로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잘 가꿔진 화단들이 명품이다. 산책로로 진입하는 입구에 있는 화단들은 방문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떤 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진을 찍거나, 예쁘다고 말하거나, 잠시 화단 앞에 머물러 서서 감상에 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산책되세요,라고 인사하는 듯이 꽃들은 화단에 곱게 자리 잡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철마다 새로운 꽃들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꾼다. 한 뼘 돼 되지 않는 작은 꽃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아담하고 앙증맞다.


 봄이면 제비꽃이 화단을 차지하는 1등 주자이다. 제비꽃은 이름처럼 날개만한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져 하늘거리는 모습을 갖고 있다. 제비꽃이 봄 화단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는 보라, 흰색, 노랑 등 여러 가지 색깔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보라색 제비꽃을 횡으로 줄 세우고 한 줄에 열 송이씩 열을 맞춘다. 그 뒤에는 노란색 꽃을 열 송이 나란히 심고, 마찬가지로 흰색 꽃을 나란히 심으면 질서 정연하고 보기 좋게 화단이 완성된다.

 

 화단의 꽃들은 대부분 키도 작고 몸집도 작다. 그래서, 많은 양의 꽃들을 줄지어 세우는 방식으로 화단을 꾸미게 된다. 그래서, 작은 꽃 한 송이에 집중하는 경우 많지 않다. 어느 날, 나는 한송이 제비꽃의 사진을 찍으려고 허리를 굽히고 카메라를 꽃 가까이에 비췄다. '아유, 예쁘다.'를 연발하며 꽃을 바라보고 바라보니 꽃잎 한 장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한송이가 아니라 꽃잎 하나라도 귀하게 보였다. 그래서, 내 눈에 담긴 만큼 예쁘게 남기를 바라면서 꽃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바라본 제비꽃잎이 가진 보라색이 신비로웠다. 제비꽃은 잎이 얇고 홑겹이어서 바람이 불면 꽃잎이 팔랑거리고, 햇볕이 비치면 빛을 투과한다. 연한 하늘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물결과 따뜻한 질감. 귀엽기만 하였던 꽃 하나가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인지, 몇 번이고 사진을 보고 또 봤다. 꽃잎의 오묘한 색감은 아름다움으로 들어가는 세상의 길목 같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물감으로 정의하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색. 24색에서도 48색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색깔을 보았다. 살아있는 색이었다. 심지어, 같은 제비꽃이라도 꽃마다 색깔이 다르고 잎마다 색깔이 다르다. 하나라도 똑같은 모양도 색도 찾을 수 없다. 해가 비칠 때의 꽃과 비 온 뒤의 꽃과 처음 났을 때의 꽃과 만개했을 때의 꽃, 저물어 갈 때의 꽃이 모두 다 다르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좋은 사진은 가까이서 찍은 사진이라고. 맞는 말이다. 애정이 있을수록 가까이 가게 된다. 사람과 사물과의 거리는 애정에 비례한다. 그런데, 애정은 값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서투른 편지 봉투꽃잎이 담았던 애정처럼 꽃은 한송이로도 충분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매주 화요일에 만나요! :)

매거진의 이전글 동백, 추워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