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당신을 집어 던지겠어요.
처음 이 회사에 들어섰을 때에,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계시던 공장장님은 인사하는 내게 '저한테까지는 인사 안해도 되요.' 하셨다. 어찌 보면 조금 민망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일화 인데 나는 두고 두고 회사 사람들하고 웃음을 나누는 이야기로 사용했다. 인간적이고 성실하고 외곬수이신 공장장님에게서 이 회사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허례 허식 도 낯간지러운 인사도 생략하고 오로지 일만 중심인 담백한 곳이다. 나는 이 매력적인 심플한 회사에 대해 굉장히 진심이었다. 큰 기대없이 부담없이 다니려고 들어간 회사였지만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좋았고 생산되는 작업물들도 흥미로웠다. 처음 회사에 면접 보러 갔을 때 마주한 광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그동안 일한 곳들과는 전혀 다른 분야이기에 흥미로웠다. 거대한 기계 소리와 작업대, 다양한 소재가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매주, 매일 새로운 작업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나는 그 과정이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거래처들도 점차 알아갔고 회사 사람들도 친해지고 허물 없어지게 되었다.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였었다. 배워 간다는 건 행복한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쩌면 나만의 기준을 갖게 되었던 것일까. 우리 회사는 이런 부분이 좋다, 이런 면이 나에게 중요하다, 라는 식의 착각들. 6년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불평이 늘어갔다. 회사가 점차 바빠지고 일이 많아지면서 부터, 동료 전체가 속한 우리에서 나는 점차 떨어져 나가는 듯한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 회사의 오너가 아니면서도 마치 어떤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이건 아니쟎어.’라는 판단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변해가는 환경에서 나는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을 쌓아왔다. 변한건 없었다. 일하는 사람들도 일하는 과정도 일의 결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의 불편감이 늘어났다.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요구 사항들을 세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만이 나를 뒤덮을 때 퇴사를 터트리게 되었다.
한때 나의 친구는 ‘힘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정말 힘든 사람한테는 그런 말이 부담만 되니까, 그런 문자는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차라리, ‘조금 쉬엄쉬엄해.’라는 말이 좋다고 했다. 나는 얘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 했었는데 그 당시, 친구가 문자 한자 한자에도 예민해 졌던 것처럼 나 역시 오늘은 예민하다. 상대의 친절을 강요하는 나의 요구가 정당하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는 않았을 게다. 그리고, 나의 상황을 직원분들과 회사에 소상히 설명해 본 적도 없으니까 나의 마음 속에 길러진 예민함들은 전달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퇴사를 앞두고 내가 회사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고생했어.’라는 말이다. 때로, 악수를 하면서 때로, 어깨를 툭 치며, 때로, 손을 잡고 고생했어, 라는 말을 내게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동안 말하지 못했지만 실제로 고생스러웠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까지 힘들게 일 할 때에는 모르고 지나가고, 원하는 자신의 주장만 볼멘소리 하기에 여념이 없던 입장에서 이제 와서 내가 퇴사 한다고 하니, ‘고생했다.’라 하는 것이 병주고 약주는가 라고 비꼬아서 받아들여진다. 상대는 순순히 정말, 진심으로 ‘고생했다.’라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 속 원망에는 내가 퇴사 하게 된 상황에 대해 당신의 책임을 묻는다, 라는 식의 착각이 들어있다. 그래서, 인사는 접어 두고 ‘예’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차라리,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수고하셨습니다 말에는 함께 했다는 기분이 들지만, 고생생했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 건가. 그도 아니면 다만, 내가 별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그랬듯이 나의 마음을 미처 돌보고 나누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꼬여버린 내 마음을 이제 내가 돌보아 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