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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Jun 06. 2023

퇴사후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없고 해야 할 일은 있다.

 퇴사하면 하고 싶은 일은 딱히 없었다. 나는 쉬고 싶다는 말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서 그저, 시간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자는 식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두 가지는 미리 계획을 세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미뤄둔 숙제 같은 것인데 그것은 운동과 독서이다.


[운동과 독서]


 아침에는 헬스장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헬스장은 일찌감치 1년 치를 끊어뒀다. 그동안 귀찮고 바쁘다고 해서 소홀했던 운동을 하는 건 나에게는 살짝 설레는 일이다. 항상 과체중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녔는데 가볍고 보기 좋은 체형을 만들면 새 인생 사는 듯한 기분이 될 거라 믿고 있다. 헬스장에서 땀도 빼고 근력도 키우면 나의 미래에 대한 준비도 되겠지. 그런, 좋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더불어 하려고 하는 일은 독서이다. 독서는 그리움 같은 거다. 책 속의 글자를 읽고 저자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순간을 나는 참 좋아했는데 어릴 때 이후로는 많이 갖지 못했다. 나이가 드니, 손쉬운 자극보다는 깊이 있는 논의가 더 즐겁다는 것에 마음의 추가 기운다. 좋은 책을 만나고 싶다. 



 퇴사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그 이후의 시간에 만나자는 약속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브런치와 북스테이]


 중학교 동창 친구가 퇴 기념으로 분위기 좋은 곳에서 브런치를 먹자고 하여 퇴직 후 이어지는 주말 낮에는 친구와 함께 보내고 저녁에는 1박 2일 북 스테이 여행을 가려고 한다. 파주에는 출판단지가 있는데 티브이조차 없이 조용하게 북스테이운영하는 숙소가 몇 군데 있다. 속 시끄럽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에 방문하면 좋을 만한 장소이다. 북스테이라는 특별한 숙박 때문인지 비용이 꽤 나가는 곳도 있지만 찾아보면 저렴한 곳도 있다. 책으로 둘러싸인 휴게실을 내 거실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침잠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월요일에는 감사하게도 동네 언니가 밥을 사주신다고 하여 점심 식사를 한다. 이 언니는 영어 교사로 퇴직하신 분인데 동네 반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동적이다. 글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직장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발 빠르게 글모임 식구들과의 점심 식사를 제안해 주셨다. 왠지 굉장히 챙김 받는 기분이 들었고 동네 사람들과의 낮 모임에 합류하게 된 것이 기뻤다. 매주 수요일에는 글쓰기 줌 모임이 있다. 줌 모임은 내가 소모되지 않고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혼자 글을 쓰는 행위도 여럿이 글을 읽는 시간도 뚜렷한 수확 없이 즐기는 좋아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청소는 나에게는 숙제하기 전 연필 깎는 정도인 삶의  필수요소이다. 인생에 대한 예의와 같은 청소는 쉬면서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왜 청소와 식사에 집착하는 것일까. 언제나 쉬려고 하면 먼저 청소를 해야지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청소를 해 둬야지 한다. 



[청소와 음식]


 화요일에는 밀린 집 청소와 빨래를 하려고 한다. 그동안 청소를 대충 했었다. 뭐든지 퇴사 이후로 밀어 넣어 뒀기 때문이다. 넓지 않지만 집안 구석구석 쓸고 닦으면 만족감을 얻는다. 청소를 마치고 집안 전체에서 풍겨오는 상쾌한 공기는 몸을 움직여서 땀으로 범벅이 된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청소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는 편이다. 청소하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얼른 해치운다는 생각으로 하지 않고 조금씩 치우고 싹싹 닦는다. 원하는 상태대로 청소가 마쳐졌을 때의 성취감 때문에 청소를 싫어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외에 시간이 나면 먹을 것을 만들어 두려 한다. 이제 매일 집에 있으니까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창한 요리가 필요한 게 아니고 끼니때마다 꺼내먹을 반찬 두서너 가지와 국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든지 손쉽게 먹을 간식거리로 냉동 만두, 과자, 우유, 과일을 냉장고에 비축하려고 한다.



 퇴사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에게는 가족에 대한 책임이 해야 할 일이다. 



[엄마집, 그리고 계속되어야 할 나의 일]


 주말에는 엄마집에 가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엄마는 가게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엄마 집에 가면 항상 청소를 한다. 원래 내가 살던 집이기도 해서 더 애정이 있는 탓에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쌓여 있는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연세가 있으시지만 일을 하시는 엄마를 향한 응원이다. 사실, 직장에 다니면서도 격주 주말마다 엄마 집에 갔다. 그리고, 몸살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아져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일이다. 나는 내 스케줄에서 엄마 집을 왔다 갔다 하고 집안일을 돌보는 건 힘에 부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다. 이는 퇴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할 나의 일이다. 



[디지털노매드가 되고 싶어]


 누군가 나의 이런 계획(일정)을 듣더니, 이게 쉬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스마트스토어(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어 수시로 주문을 해결하고 있기에 지인의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직장 생활의 한계를 느끼고 작게나마 서둘러 시작한 인터넷 사업은 활발하지는 않지만 띄엄띄엄 문의와 주문이 있다.  나는 ‘쉬는 건데?’라고 반문했다. 퇴사 하기 전에도 이 정도의 스케줄은 계속해 왔던 일이다. 이제 평일 낮 시간에 회사를 안 나가니 얼마든지 여유로운 일정이다. 


  '돈의 속성'을 쓴 김승호 회장은 '좋아하는 일이 우선이냐, 잘하는 일이 우선이냐'라는 질문에 '돈 되는 일을 해라'라고 답했다. 그 말은 진짜 맞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돈이 되어야 하는 거지, 밑도 끝도 없이 근거 없는 일들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나의 일상생활이 돈으로 연결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한다. 그러다 결국은 돈을 좇아 움직이게 될까,라는 현실이 두렵다. 나는 내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다. 내가 나를 벌여 먹인다는 것은, 직장이라는 구조를 벗어나서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시도해 본다는 뜻이다. 인터넷을 활용하여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디지털 노드'의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볼 참이다. 혹여,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되더라도 이런 과정이 내게 손해만 남길 시간은 아닐 테다.


 이십 년쯤 했으면 직장은 그만 다녀도 될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나같이 소속이 중요한 사람은 직장에 다니는 안정이 중요해서 다시 직장에 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아니면 의외로 디지털 노마드가 제격일지도.


 나는 퇴사 전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남들처럼 세계 일주는 못할 망정 제주도 여행 정도는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책은 밤을 새워서라도 읽고 싶고 글은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쓰고 싶었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직장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사를 기점으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퇴사 이후의 삶도 현실, 그 자체임을 명확히 남긴다. 그래도, 늦잠은 잘 수 있으니 참고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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