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니까 기분이 어때? 짜릿하니?" 미국에 떠나오기전 수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 미국에서 지내는 삶은 어떨까? 딱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미국 세계에 대한 별다른 환상도 없었다. 다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였다. 나의 초급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외국인과 어떻게 친구가 되는지 궁금했다. 견문을 넓힌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미국에 살면 얼마나 살이 찔지 궁금했다. 햄버거와 피자맛이 내가 알고 있는 맛과 다른지 궁금했다. 미제 간식의 새로운 맛이 궁금했다. 미국 할머니에게 인생을 배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미국 가정집이 궁금했다. 파티 문화가 궁금했다. 나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감정을 느낄까,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할까, 어떤 걸 꿈꿀까 궁금했다. 더불어 온전히 새로운 세상에 놓일 내 자신이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궁금증을 안고 새로운 해에 새로운 세상으로 떠났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남과 동시에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떨어져 살아본 경험이 고작 2주가 전부였던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을 나눴다. 가족이나 다름 없는 이웃들과 작별을 나눴다. 소중한 인연들과 작별을 나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난 뻥튀기 아저씨와 작별을 나눴다. 그러나 단순히 사람과의 작별만은 아니었다. 생각지 못한 것들과의 헤어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걸음마를 시작으로 매일 걸어왔던 그 길과 작별을 나눴다. 20년째 삼각 커피우유를 사먹던 슈퍼와 작별을 나눴다. 하루도 빠짐없이 봤던 남산과 작별을 나눴다. 밤이면 집 앞 쓰레기를 헤집어 놓는 도둑고양이와 작별을 나눴다. 터줏대감이 된 야채가게 강아지와 작별을 나눴다. 동네에 풍기는 정취와 작별을 나눴다.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동네의 모든 곳들과 작별을 나눴다. 그동안 얼마나 작별 인사를 안하고 살았는지 내가 있던 모든 공간이 헤어짐으로 다가왔다. 고작 1년 뒤에 돌아오면서 유별나게 왜저러나 싶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공간을 떠난다는 것은 나에게 분명 특별한 일이었다. 첫 작별 인사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이라는 단어는 무색해졌다. 떠나온지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분명히 실패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평탄하게 살아온 내 삶에서 무언가 그럴듯한 인생의 첫 실패였다. 미국 체류를 위해선 인턴십이라는 전제가 필요했다. 나는 주어진 구직 기간 내 인턴을 구하지 못했다. 선택의 순간에서 가능성을 놓쳤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운도 없었다. 말도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내 자신이었다. 뛰어난 글로벌 역량을 가졌더라면 혹은 내가 가진 잠재성을 잘 드러냈다면, 영어 실력이 유창했더라면 모든 상황을 뒤엎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시간을 기다렸다. 오랜시간을 도전했다.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목표했던 4월이 끝나가며 단호히 귀국 행으로 결정을 기울였다. 나약한 마음에 지배되고 싶지 않았다. 주어진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기에 결코 후회는 없었다. 미국으로 온 것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실패임은 틀림없지만 실패라고 칭하기엔 사실 얻은 것이 컸다.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다. 심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틈만나면 자괴감과 패배의식에 사로 잡히기 십상이었다. 여러가지 제약 상황으로 무작정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인정해야하는 현실이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강한 멘탈을 갖고 있었다. 때론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힘든 시간이 지속될 수록 나의 멘탈이 더욱 단단해짐을 느꼈다.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드렸고, 현재 상황을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파악했다. 하나 둘 생각이 정리되면서 마음도 정리되었다. 처한 상황은 더이상 힘든 상황으로 정의되지 않았다. 그저 귀하고 가치있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낯선 세상에서 나는 누구보다 강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나의 멘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일으켰다.
"엄마는 솔직히 돌아오는게 더 좋아. 아빠는 더더 좋다는데"
"주눅들 필요 없어. 좋은 경험을 기회삼아 다음 준비하면 돼."
"너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안봐도 아니까 스스로를 탓하거나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음 좋겠어."
"인턴 좀 못구하고 오면 어때. 좋은 경험했다."
"철없는 소리 같지만 너가와서 신나. 너가 오면 내 삶에 행복이 늘어나."
"언제와도 널 환영해."
"돌아오면 떡볶이 사줄게."
"사랑으로 품어줄 사람들 품으로 돌아오니 얼마나 행복하니!"
"이왕 이렇게 된거 더 빨리오면 안돼?"
주위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말에는 정말 힘이 있다. 무슨 애정테스트도 아니고 실패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애정까지(?) 확인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전까지 실패라는 단어는 두려운 존재였다. 만나면 안되는 것, 설사 만나더라도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실패를 경험하며 "뭐, 별거 없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온지 4개월. 앞서 말한 것 처럼, 실패라고 하기엔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 첫째로 나에 대해 배웠다. 구직 기간이 오래될 수록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생각의 중심은 나로 뻗어나갔다. 때론 낯선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합리화 없이, 비교대상 없이 객관적으로 나를 보았다.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게 중요한지 나는 나에 대해 배웠다.
둘째로 기본적인 삶의 중요성을 배웠다. 현지 친구들도 놀라는 열악한 숙소에 머물렀다. 그동안 단어로만 알았던 각종 생물체들과 만났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날보다 안나오는 날이 더 공포스러웠다. 밤이되면 벌레가 몸에 기어올까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잤다. 대부분의 날은 환하게 불은 켜고 잤다. 4개월 간, 이 곳에서 생활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꼈다. 집에서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는 감사함. 땅 바닥에 누워 대자로 뻗어있을 수 있는 감사함. 세탁과 건조를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감사함. 방 안에서 음식물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는 감사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전제인 부모님의 사랑까지. 참 늦게도 배웠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았고, 기본적이지만 삶의 질을 움직이는 의식주의 중요성을 완벽하게 깨우쳤다.
셋째는 사람이다. 한국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들에게 받은 힘 보다 더 큰 힘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이들과 함께하며 어려운 순간도 즐겁게 이겨냈다.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 정도로 그들의 존재는 강력했다.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참 귀하다. 혼자 사는 세상은 없다. 진짜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매일 밤 일기를 썼다. 딱히 엄청난 것도,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없었다. 다만, 4개월 간 미국에서의 삶은 매 순간이 도전이고, 배움이었다. 특히나 기쁜일 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았던 환경이었기에 그 안에서 배우는 정도가 컸다. 이제 한국에 가서는 못해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4월의 마지막날. 남은 구직기간을 포기하고 귀국하겠다는 의견을 정리하고 있었다. 임시보관함에 넣어놓고 개인적으로 목표한 시간을 담담하게 준비했다. 그 중 하나가 브런치였다. 그럴듯한 실패의 순간과 이 때의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곧 새로운 전개가 펼쳐졌다. 목표했던 시간까지 2시간을 남겨두고 새로운 구직 기회를 얻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나는 한국이 아닌 시카고로 떠나게 되었다. 기다림으로 가득했던 지난 날이 생각을 스쳤다. 그렇게 끝을 준비하자 새로운 시작이 찾아왔다. 참 신기했다. 모든 상황에 뜻이 있고,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예상치 못한 결말에 브런치 글을 지울까 말까 고민을 반복하다 이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글을 올린다. 다음 실패를 기대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