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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글이드 Apr 26. 2020

주니어인 나는 조직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나

(2018.6~) 그럴듯한 주니어 매니저 경험기

그렇게 주니어 매니저로 전환된 후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문제와 마주했는데, 대부분은 내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 업계에서 조직은 이미 유명했고, 구성원 모두 뛰어났다. 그리고 조직의 첫 주니어로 입사한 나는 작은 서포트 외에는 크게 기여하는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조직 특성상 개인의 역량이 중요해지는 순간마다 나는 작아짐을 느꼈다. 모두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었으나, 자신에게 혹독한 나는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뛰어난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러나 반대로 나는 상대에게 그만한 존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공존했다. 이런 찌질한 마음을 갖는 것도 싫었다. 추락하는 자존감에 자신감은 더욱 흐릿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팀장은 주니어 매니저로 전환을 축하한다며 내게 작은 선물을 건넸다. 그 안에는 카드 한 통이 들어있었는데, 굵게 적힌 시구절이 눈에 띄었다. 


"너는 두려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안미옥, 생일편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의든 타의든 언제 이 조직을 떠날지 모르지만, 적어도 후회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PM마다 담당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당장 담당하는 프로그램이 없던 나는 이 조직에서 애정을 쏟을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분명 모두의 손이 닿지 않는 일,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 믿었다. 고민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내가 할 일이 보였다. 바로 스타트업 맵과 디자인 업무였다. 


스타트업 맵은 보통 인턴 분들이 담당했는데, 아무래도 주기별로 담당자가 바뀌어 기준이 모호해 보였다. 카테고리를 재점검해서 기준점을 잡는 것이 필요했다. 로고를 식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뒤죽박죽 한 로고 사이즈와 정렬되지 않은 로고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좋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맵 시각화에 필요한 로우데이터의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했고, 이 과정을 개선하면 맵에 포함될 팀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선순위를 세워 스타트업 맵 개편을 시작했다. 약 380여 곳의 스타트업을 다시 살피고, 시각화해나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불가능했던) 기술적인 방법보다는 키노트로 하나하나 수정해나갔다. 다소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 덕분에 자연스레 국내 스타트업을 익혔다. 


키노트로 맵을 작업하던 당시, 로고 사이즈를 하나씩 수정하던 장면


특히 맵의 바탕이 되는 스타트업 투자 뉴스를 매일 찾아보는 과정이 많은 공부가 됐다. 관련 정보가 쌓이다 보니, 초기 스타트업을 모시는 커피클럽에도 아이디어를 활발히 낼 수 있었다. 업무 참여도가 올라갈수록 자존감도 회복되었고, 차분하게 과거의 경험들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단계별로 행사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매월 맵이 발행될 때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다. 적어도 내가 조직의 성장에 조금은 기여한 것 같아 기뻤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새 2년이 됐다. 그 사이 나는 다양한 일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장 애정 하는 일로 스타트업 맵을 꼽는다. 2년 전 맵에 포함된 스타트업 380여 곳은 어느새 약 700여 곳이 되었다. 감사한 개발자 분의 도움으로 작업 과정은 또 한 번 대대적인 개편을 진행했고, 이제는 익숙해진 맵 작업에 더해 관련된 빅 투자 콘텐츠 작업을 새로 기획했다2년 동안 꾸준히 맵 작업을 하며 직무에 필요한 지식적인 부분을 쌓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조직에 기여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이는 부족했던 성취감을 회복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디자인 업무의 경우, 해당 직무를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적은 없었으나 평소 관심이 컸던 터라 자청해서 커피클럽 홍보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했다. 외부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것이 행사 이미지인 만큼 기왕이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디자인 업무에 서툴어 여러 한계가 있었지만, 구글과 유튜브를 찾아보며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초반 3~5회까지는 기존 방식대로 사진 중심에 텍스트 나열 방식을 활용했고, 이후에는 커피클럽 특징인 '주제'에 착안해 주제별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컨셉을 잡았다. 오히려 어딘가 부족한 그림에 좋은 반응을 받았다. 외부 미팅 시 행사 이미지로 관심을 받을 때마다 지금이 부끄럽지 않게 앞으로 더 잘하자고 되뇌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행사 관련 대부분의 디자인을 담당할 수 있었다. 디자인의 세상을 경험하며 새로운 스킬셋도 키워나갈 수 있었다. 해보고 싶으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직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앞선 두 가지 일을 찾아 나섰다면, 기존 구성원은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으로 도움을 줬다. 그 중심엔 팀장님이 있었다. 외부 일정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적 일정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대화 도중 내가 모르는 용어나 정보가 나오면, 자리가 끝나고 하나씩 설명해줬다. 나를 위해 할애한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집에 가서 기록하고, 찾아보며 공부했다. (세상에 이런 사수가 어딨나 싶다.)


컨셉을 적용했던 초반 행사 이미지


사실 이제 와 돌아보면, 입사 초기에는 조급함이 앞섰던 것 같다. 조직마다, 상황마다 적응의 시간이 다 다른 터인데, 그저 나는 과거의 나와 비교하기 급급했다. 개인적으로 적응력이 큰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는지. 도대체 언제 적응해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지. 꽤 오랜 시간 스스로를 탓했다. 인턴 초반에 떨쳐내지 못했던 그 좌절감이 번져서일까. 어쩌면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에 둘러싸여 내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주니어 매니저로서 한 해를 보내는 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새로운 분야를 배워나갔고,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나갔다. 분명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새 새해가 찾아왔고, 조직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 나는 주니어를 떼고 매니저가 됐다. 


-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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