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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Apr 23. 2024

나는 당신의 안온한 이웃인가요

장애인의 날

  새로 이사  동네는 지방 소도시 중에서도 외곽에 있는 한적한 동네다. 여기서 아이가 걸음마를 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여 이제는 어엿한 여섯살 꼬맹이로 성장했다. “이건 뭐야?”라는 사소한 궁금증부터 “ 할머니는  나에게 귀엽다고 ?”라며 벌써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까지,  소리로 묻는 아이는 내겐 귀엽지만 어떤 때는 상대를 앞에 두고 물어 기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쨋든  아이는 세상에 대한 질문도 많아지고 성장하는 중이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은 아이의 표현대로 아파트 문을 나와 초록 나무들을 지나 거미줄을 지나 동백꽃을 지나 길을 한번 건너면 된다. 길을 건너는 단계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스무살  되어 보이는 청년이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어째 자연스럽지 않다.  걸음 떼는데  몸을 비틀어 내딛는다. 당연히 걷는 속도도 느렸다. 그는 말도 어눌했다. 동행한 가족과 대화할 ,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내뱉고는 해맑게 웃었다. 그러면 그의 엄마는 손을 잡아주거나 마주보고 같이 웃었다.


  그런 모습을 나만 보고 있는  아니었다. 아이도 아침마다 마주치는 청년을 보고 있었다. 어쩌다 좁은 인도에서 마주치면 나와 아이는  줄로 비켜  주었다가 그들이 먼저  지나가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옆을 지나치는  시간에는 오히려  가슴이 쿵쾅거렸다. 호기심 많은 아이가 “ 사람은  저렇게 걸어?”라고 물을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을 마주칠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곳으로 아이의 주의를 돌리곤 했다. 빤히 쳐다보는 것도 어쩌면 실례가   있지 않을까? 나도 애써 모른   곳을 보곤 했다. 아이는 다행히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위에서 마주쳐 비켜주려 하는데  청년이 아이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 나는 바로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아이도 청년과 눈을 마주치고 웃는  아닌가? 내가 알던 아주 예쁜 미소를 지으며. 아이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와 비교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아니라 그냥 이웃의 하나로. 마주치면 미소로 인사하는 그런 사이라는 .


 이제와 보니  청년은 종종 슈퍼 앞에서도 마주쳤다. 가족들과 다녔지만 혼자 다니기도 했다. 어떤 이웃은 그와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웃은 안부를 물으며 대화도 했다. 길과  사이에 턱이 있어 돌아가는 청년의 손을 잡아준 아저씨도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이웃들은 뒤에  오는  알려주며 주의를 주기도 하고 청년을 귀여워하기도 했다. 청년은  동네에서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이웃이구나.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게 무심히 도움을 주는 , 그저  모습 그대로 지켜봐 주는 , 익숙한 얼굴들이 서로 눈인사를 하는 , 상대를 탓하거나 안타까워할 필요 없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정선을 지키면서 그렇게 서로의 안전을 담보하는 사이가 바로 이웃이구나. 우리 사이는 어쩌면 마음속에는 있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라 어색해지는 것만 같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나의 말과 행동이 상처를 줄까봐 머뭇거린다. 청년과 마주할   산을 바라보던 나처럼 말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었다. 나는 그처럼 안온한 이웃이었나 생각해본다. 아이는 자연스레 청년과 눈인사를 하고 슈퍼 아주머니와 흘낏 말 없는 장난을 치기도 하고, 아저씨가 가게 창문을 닦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면 이웃들은 따스하게 바라봐 준다. 그 청년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와 노인, 청소년과 성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자와 여자 가르지 않고 그냥 한 존재의 온기 가득한 이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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