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노란 Dec 22. 2016

심플하게 산다 2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먹는 법


심플하게 산다 2는 정말 오래전에 구입해 놓은 책인데 이제야 독서를 마쳤습니다. 둘째 임신을 하고 최근 4개월 간 제대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책들보다 '음식'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이 책이 무척이나 술술 읽혔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나도 이렇게 먹어보리라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사진이 들어있지 않은 책이라 울렁거림도 느끼지 않았고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심플하게 먹는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며 실천하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우리 주변에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고 새로운 먹거리가 넘쳐 납니다. TV에서는 채널마다 맛있게 먹고 맛있게 요리하고 맛있게 먹었던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포털 메인에는 매일 새로운 제철음식, 새로운 음식, 멋진 레스토랑과 디저트 가게를 소개하는 글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세상에 살면서도 먹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낙으로 먹는 즐거움을 꼽지만 저는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은 알약이 개발된다면 기꺼이 먹는 즐거움을 버리고 알약을 택할 사람입니다. 먹는 것을 즐기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탐도 없고, 배부르게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뷔페에 가면 샐러드 한 주먹과 볶음밥, 과일 등 디저트 한 접시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돈 아까운 식사를 합니다. 두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을 하는 동안 가장 저를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 공세였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덕분에 저는 평생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깡 마른 체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 2는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처럼 음식 자체를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소량만 먹는 삶이 아니라 음식이 너무 좋아서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소식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미니크 로로 특유의 미사여구가 섞여서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적게 먹는 대신 훌륭하게 먹는 것이 얼마나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은 왜 먹는가? 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예찬, 준비한 요리를 어떻게 차리고 어떻게 먹는 것이 더 좋은 가에 대한 이야기들, 또 음식을 먹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까지 먹고 마시는 행위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것을 정성껏 준비해서 즐겁게 먹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과정 속에 "미니멀리즘", 즉 보다 "적게 준비하고 적게 먹는 것"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 보니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일주일마다 장보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기본 재료를 갖춰놓은 뒤, 딱 일주일 동안 먹을 분량의 장을 봐서 일주일 동안 모두 소비한 뒤 다시 일주일 치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식단 계획과 장보기가 필요하겠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수백 리터짜리 거대 양문형 냉장고가 필요하지 않은 진정한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둘째를 낳고 나서 한 번쯤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에서 엄마, 그리고 아내가 되면서 요리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여러 음식 관련 책을 읽었지만(http://blog.naver.com/memonade/220719689847) 대부분의 책이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철 음식, 좋은 재료, 천천히 요리해서, 즐겁게 식사하라" 도미니크 로로의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식, 즉 먹지 않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이 다른 책들과의 차별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도미니크 로로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문화에 푹 젖어있는 서양인의 시선이라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나라이기도하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자까야 등의 영향으로 익숙한 일본 음식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식은 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하는데 그 수나 양을 좀 줄인다면 일본식 상차림, 도미니크 로로가 주장하는 심플한 상차림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심플하게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우아한 일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책인 것 같습니다.


얼른 둘째 낳고 몸 회복해서 가족들에게 건강하고 심플한 상차림 대접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또 싫어서 적게 먹는 삶이 아니라 즐겁게 적게 먹는 삶이라는 것을 실천해 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제 인생이 가벼워졌듯, 제 삶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극히 적게 / 도미니크 로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