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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Jan 28. 2021

 다 소용 없다는 말

그럼에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얼마 전 SNS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나 혼자 재활용 열심히 하고 쓰레기 줄이면 뭐해? 세상엔 이런 거 안하고 관심 없는 사람이 더 많잖아. 내가 뭐 한다고 나아지겠어? 하기 싫다, 정말.


맞습니다. 세상엔 재활용을 하지 않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고 그렇게 산 물건이 쓸모 없다며 버리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알면서도 저는 SNS에 올라온 저 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내가 뭐 한다고 나아지는 곳이더라고요.




미니멀리즘과 제로 웨이스트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슷합니다. 적게 소유하면 쓰레기를 만들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되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려면 뭘 사거나 버리지 않아야 하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게 되고요. 제가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다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주부가 되었듯이요. 오늘은 다른 듯 비슷한 두 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해볼게요.


제가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삶에 관심을 가진 건 2010년 여름이었어요.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삼성동에서 일할 때라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 매대에 회색빛 책이 쭉 놓여 있었어요. 콜린 베번의 <노 임팩트 맨>이었습니다.


'뉴욕에서 살면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고?'


흥미로운 마음에 바로 책을 집어들었죠. 다른 책과 달리 재생지로 만들어져 얇고, 도톰하지만 거친 책장의 감촉이 무척 낯설었어요. 엘리베이터 쓰지 않기, 전기는 태양열 이용하기, 옷은 구제로 구입하기 등등 저게 가능하구나, 싶은 것들을 직접 실천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부터 계단이 보이면 걸어 올라가고(깜빡할 때가 더 많았지만), 음료는 종이팩에 든 딸기 우유만 마시고,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았습니다. 참 사소하죠.


그것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제 미니멀리즘과 제로 웨이스트의 시작이었습니다.

<노 임팩트 맨>을 읽은 뒤 환경을 보호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서점을 뒤적였습니다. 하지만 빨대를 쓰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닌다, 분리수거를 잘하자, 정도의 교과서적인 얘기가 적힌 얇은 책 한 권 외에는 찾지 못햇습니다. 그때는 미니멀리즘도, 제로 웨이스트라는 말도 없었어요.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있었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건 스님이니까 할 수 있는 생각과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임신 중에 가네코 유키코의 <적게 소유하며 살기>를 만났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심플하고 단정한 표지에 끌려 충동적으로 구입한 책이었어요. <무소유>와 마찬가지로 적게 소유하고 좋은 것을 소유하고 정갈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시작으로 저는 미니멀리즘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비 존슨의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등의 책이 쏟아졌고 저는 이 책들을 읽으며 적당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살림이 어느정도 정돈된 뒤에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도 멀어졌죠.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책을 발견하면서 오랜만에 미니멀리즘과 환경에 대한 관심에 다시 눈을 떴습니다. 일회용 기저귀와 생리대 대신 면 기저귀와 생리대를 쓰고, 화학 세제 대신 베이킹 소다와 구연산으로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물티슈 대신 손수건과 행주를 사용하고, 나무 칫솔을 사용하고, 비닐을 사용하지 않던, 이제는 익숙해진 제 매일의 살림이 뿌듯해졌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잘 하지 않는 인스타그램을 켜서 '살림'을 검색했습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진이 함께 검색되더라고요. '미니멀리즘'을 검색하니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게시물이 추천 게시물로 올라옵니다. 제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이 살림, 미니멀리즘, 제로 웨이스트가 이렇게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더라고요. 이런 게시물 속에서 저는 별로 미니멀리즘이나 제로 웨이스트를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즐겁고 반가웠는지 상상이 되시나요?


덕분에 요즘은 새로운 미니멀리즘과 제로 웨이스트 실천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때보다 더 쉽게 더 다양한 방법으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분들이 늘어났더라고요. 그때보다 더 쉽게 친환경 제품을 구할 수 있도 있었습니다. 마트에서 사다 쓰던 샤워 타월을 삶아 쓰는 삼베 샤워 타월로 바꿨어요.(아예 없앴다가 불편해서 마트에서 서너 개를 사다두고 썼거든요.) 빨아 쓰는 화장솜도 샀고요. 제가 처음 미니멀리즘을 시작할 때는 구하기 어려웠던 것들인데 몇 년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어요.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이 가까운 곳은 걸어가기, 분리수거 잘하기 뿐이었던 세상에 이토록 제로 웨이스트가 널리 퍼지고, 적게 소유하는 말끔한 주방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기업과 개인이 환경을 덜 파괴하는 물건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처음 나무 칫솔을 살 때 파는 곳이 없어서 칫솔을 개 당 5천원 씩 주고 샀어요. 한 번 칫솔을 구입하면 10만원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였지요. 남편 눈치를 얼마나 봤는지 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 칫솔을 몇백 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이 많아지고,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가는 이토록 명확한 경제 법칙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네, 세상에는 아직 환경이니 단정한 생활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관심 있는 사람보다 훨씬 많아요.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장은 아직도 씻지 않은 플라스틱을 내놓는 사람이 많고, 매주 쓰레기차는 산더미처럼 많은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제 주변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예쁜 쓰레기'를 사모으는 사람이 많아요. 친정 엄마는 제 옷장에 바지가 두 벌 밖에 없는 걸 보시곤 '돈이 없냐'고 물으셨어요. (저 돈 잘 벌어요 엄마ㅜㅜ)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당장 오늘과 내일은 차이가 없어보이겠지만, 지난 달과 이번 달, 작년과 올해는 변하는 게 없어보이겠지만 멀리 길게 보면 확실히 세상은 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내가 겨우 이거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하며 조급해하지 말아요.


내가 오늘 하루 미니멀리즘을 생각했다면, 제로 웨이스트를 생각하며 다 마신 페트병을 깨끗하게 씻었다면, 불필요한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한 번 더 생각해보자'며 결제를 미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10년 전, 20년 전의 '나'는 하지 않았을 생각과 행동이니까요. 일단 내 세상의 중심인 '나'는 확실히 변화했잖아요. 안 그런가요?


마지막으로 환경을 지키고 싶어서 아지트(숲) 나무에 묶인 줄을 풀어주었다는 딸의 동시를 첨부하며 글을 마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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