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당신은 잊으려하면 나타나고, 떠올릴까하면 사라진다. 당신의 말 한 마디엔 사려깊은 배려와, 쉽게 물러나지 않는 자존심과, 상대에 대한 비수와 같은 지적이 모두 담겨있다. 나는 맑은 눈으로 응대하는 당신의 예의바름에 답해야 하지, 아니면 그것이 모두에게 보편적일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려운 문제들을 풀게 도와줄 당신의 해결책에 고마워해야 할 지, 아니면 저 옷장 밑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양말 한짝을 건져올리는 당신의 예리함에 치를 떨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당신이 내게 말을 건낼 때, 나는 당신이 말을 건냈다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할 지, 아니면 그 말이 혹시라도 예쁘게 보일까 굳이 삐죽삐죽 잘라낸 당신의 치밀함을 아파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당신에게 특별한 것인지 보편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특별한 쪽이라면 그게 긍정적인 쪽인지 부정적인 쪽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당신이 뒤돌아 나갈 때, 나는 당신의 등을 껴안고 싶은 것인지, 혹은 당신의 뒷통수를 흘겨보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날 나는 그렇게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하는 이중적인 당신의 태도에 화가 나, 제법 표리부동하게 불만을 표출하였다. 당황한 당신은 부드럽게 달래는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찬찬한 말투에 가라앉기 시작했으나, 방금 전 당신의 말을 생각하며 다시 둥둥 올라온다. 화 나는 게 당신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다만 이렇게 이율배반적이며, 당신은 나의 그런 표리부동함을 어쩜 그리도 의심하지 못한다.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당신이 기대어 앉은 의자와 그 위로 솟아오른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점점 우측으로 기울어지더니 이내 까딱까딱 리듬을 탄다. 팔짱 낀 당신의 웃옷이 추워보인다. 당신을 흔들어선 움직이던 머리를 똑바로 해주고 싶어졌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바꾸어선 당신의 무릎을 덮어주고 싶어졌다. 가만히 흔들리는 팔을 잡아주고도 싶어졌다.
당신이 무심하게 문을 나서고, 나는 또 다시 생각했다. 이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고. 아니 이건 불공평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