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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를 나는 새 Oct 14. 2023

감성따윈 팔아치웠어

솟아날 구멍 없는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에겐 그저 사치

지금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며 첫 문장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이 글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게 될 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글을 너무 오랜만에 쓰게 되었다. 머리속과 마음은 복잡하고 심란한데 그걸 글로 딱 정리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걸 잘 풀어놓아봐야 나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다. 대놓고 자기계발 컨텐츠는 아니더라도 교훈도 없고 재미도 없을 이야기를 쓰는 건 나나 읽는 사람이나 시간 낭비가 될까봐.


어렸을 때, 특히 대학 시절엔 그런 복잡 다단하거나 서글프거나 외롭거나한 모든 감정들을 글로 쓰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고나면 마음 한켠에 응어리진 게 풀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밤마다 몇 시간씩 글쓰기에 빠져있었고, 어떤 분들의 권유대로 과감한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글쓰는 게 주업인 일로 밥 먹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던 때였다. 그렇지만 현재 내 직업은 테크쪽이고, 어쩌면 오히려 비주얼한 감성이 문학적인 감성보다는 중요할만한 일을 하고 있다. (아, 카피문구를 아예 안 쓰는 건 아니니 글쓰기가 아주 상관 없는 일은 아닌가?)


나는 앱을 만든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앱 구조를 뜯어보며, 사소한 케이스 처리 하나에도 여러 사람이 매달려 전전긍긍하는 것을 본다. 그 사람들에 나도 해당된다. 이런다고 회사 매출 올라갈까 반신반의한다. 그래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구조인채 내버려두는 건 마치 이도 안닦고 잠자리에 드는 기분이라 그냥 이런 성격대로 일하는 중이다. 이 업을 정말 오래하다보니, 이제는 아무리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처음에는 분노가, 나중엔 회의감과 허탈함이 들었지만, 이젠 별 느낌조차 없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작은 것보다는 주택시장, 주식시장의 추이가 중요하고, 금리가 중요하고, 인류가 기후변화에 살아남는 일이 중요하며, 이 와중에 내가 미래에 어떻게 먹고 살 지의 문제는 또 얼마나 절박한데. 이런거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며 일해봐야 정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거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며 일해봐야 정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그래도 내 경우는 물리적인 상황으로 보았을 땐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주변 지인들 중 직장에서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심각한 병을 갖게된 사람들, 아마 다들 몇몇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게 본인일 수도 있고. 유독 야근이 많았던 예전 직장의 동기들 중 빠르게 직책자가 된 사람들은 상당 비율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잠깐 한국에 놀러온 한국계 미국인 아이의 고민을 듣게 되었다. Pre-med 인데 의대는 적성에 맞지 않아 일반 생명공학이나 컴퓨터 공학쪽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상태에서 어찌할 지 고민중이었다. 내게 이것저것 묻기에 내가 아는 선에서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많은 한국 학생들에겐 어쩌면 사치라고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지금 다들 그냥 성적만 된다면 의대 못가서 난리고, 더 이상의 고민 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그리고 한국에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 좋니? 음식점도 다양하고 다 맛있고, 카페들도 다들 너무 예쁘고 컨셉도 독특하고 커피도 맛있다고? 왜 그러겠어. 그들끼리 경쟁이 심하니까. 평균 49세만 되면 회사 더 못 다니고 나와야 하는데, 직장 생활 하는 동안 다른 획기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테스트할 시간도 없고 허용되지도 않으니 갑자기 할 수 있는 건 그런 자영업들 뿐이니까. 


왜 요즘 한국 청년들은 본인 적성에 대한 고민 1도 없이 다들 의대로 가려고 하는가. 우선 학창시절의 어느 순간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해볼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없다. 모든 일상은 향후 안정된 높은 소득이 보장된 직업을 갖기 위한 테크트리로서 부모님들이 골라놓은 그대로, 시간표에 맞춰 착착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는 그냥 아주아주 안전하다고 보이는 길로 한눈팔지 않고 직진하는 것 외에 다른 곳에서 성공을 찾은 사람들을 별로 본 일이 없으며, 괜히 다른 트랙으로 빠졌다가 폭삭 망했다는 이야기만 도시괴담처럼 들리는 곳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 교육제도 아무리 뜯어고쳐봐야 소용 없다. 어차피 한국의 교육기관들은 "선발"이 목적이지 "교육"이 목적은 아니게 된지 오래니까. 어차피 근본적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구조 자체가 불안하니 그나마 성공율이 높아보이는 외길로 다들 몰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외길에 들어설 수 있는 선발권을 교육기관들이 갖고 있을 뿐이다. 


한국 교육제도 아무리 뜯어고쳐봐야 소용 없다. 어차피 한국의 교육기관들은 "선발"이 목적이지 "교육"이 목적은 아니게 된지 오래니까.


한국이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자기자본비율은 다른 국가들보다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투자를 받기 보다는 사업가 개인이 직접 조달해야하는 자본금의 비율이 높다.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사업계획의 성공가능성 보다는 담보물의 가치에 의존해서 투자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사업하다 망하면 그냥 투자자들이 돈을 날리는 거지만(어차피 투자란 그 사업이 성공할 것이란 추측과 기대로 하는 것이므로), 한국에서 사업하다 망하면 사업가는 담보로 했던 집 잃고, 가족 뿔뿔이 흩어지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매우매우 흔하다. 투자자는 그냥 담보를 가져가면 된다. 게다 미국에서 사업하다 망하면 다시 다른 직장에 취직하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에선 그런 경우 어림도 없다(뭐 서른 전 어린 나이에 잠깐 스타트업하다가 망해서 다시 신입으로 취직하는 것은 예외다). 그러니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돈 많은 사람들이거나 대기업일수밖에 없다. 그래도 요즘 디지털 세상에는 매우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할 수있는 기회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졌다. 그럼에도 전쟁터에 나갔다 트라우마에 걸린 사람들처럼, 이 나라 사람들은 이제 조금 큰 소리만 들려도 움츠러든다. 옆에서 사람들 죽어나가는 거 뻔히 봤는데 어떻게 전쟁터로 다시 한 발 내디디는 용기가 생겨날까.


물론 어느 나라도 그 나라들 나름의 심각한 단점들이 없는 곳이 없다. 미국도 총기에, 마약에, 높은 의료비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일찍부터 대학갈 사람과 아닐 사람을 구분하여 직업교육을 받게 하는 독일 교육제도가 좋다고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또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신분이 대대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에 불만이 있다. 호주, 캐나다는 천연자원 의존적인 경제라, 첨단 산업이 별로 발전하질 못했다. 특히 캐나다 인구는 우리보다도 적은 3천만이어서, 인구 의존적인 내수경제도 별로고 취업하기도 어렵고 매우 인맥 의존적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나라도, 한국처럼 이렇게 자살율이 높지 않다. 한국처럼 이렇게 국가절멸에 이를 수 있는 낮은 출산율을 갖고 있는 나라도 거의 없다.  


이런 한국 사회 속 획일적인 인생의 직장인 버전을 살고 있다보니 어쩔땐 천천히 소설책을 음미하며 읽기조차 힘이 든다. 배경과 등장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한줄 한줄 정성들여 묘사하는 것을 참고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 이런 이야기 하나를 한 달에 걸쳐 글로 읽느니, 차라리 두어 시간짜리 영화로 후딱 보고 치워버리는게 낫겠다. 그래서 그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었냐고. 그것만 알면 되었다. 


무슨 고민을 해보아도, 궁극적으로 돈 버는 것, 좀더 잘 살게되는 것과 직결되지 않는 다면 다 무용지물이라는 생각도 자주 든다. 그러다보니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무슨 낭만이나 무슨 성찰이나 무슨 지식이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실 글을 제대로 쓰려면 매우 많은 시간이 든다. 그러니 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돈을 더 벌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면 차라리 그게 맞을 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지금 왜 이런 글을 또 쓰고 있을까. 왠지 자꾸 그렇게만 사는 건 사는 게 아닐 것 같아서다. 그래서 이렇게 짬을 내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괴로우니까 괴롭다는 글이라도 써보겠다고, 아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몇 해전 밴쿠버로 여행을 갔다가 에어비엔비 주인 백인 할머니와 친해지게 되어 저녁시간마다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학원 영어 교사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어느날 내게 이런 걸 물어보셨다. 한국은 삼성, LG같은 회사들도 있고 기술적으로 매우 발달한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한국인 학생들은 자꾸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며, 그리고 한국이 왜 그렇게 자살율이 높은지를 말이다. 그 한국 학생들 대부분은 아직 어린 대학생들이라, 직장생활을 꽤 오래한 사회인인 나의 생각이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그냥 내가 아는 선에서 성의껏 설명해드렸다. 그런데 설명을 다 듣고난 할머니의 반응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 아니, 그런데 그걸 아는 너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그렇게 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사업하기도 힘든 나라에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네 나이가 지금 몇 살이니. 네 말대로라면 대체 얼마나 남은 거니. 당장 이민 준비 안하고 뭐하냐. 이건 심각한 문제다. 네가 지금 여행이나 오고 이럴 때가 아니야. 


나를 포함하여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들,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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