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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를 나는 새 Jul 21. 2024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순수하게 살아보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보고 얻은 뜻밖의 수확

인구위기, 경제 위기, 환경 위기 같은 거창한 단어들은, 내 개인적 삶의 위기들을 매우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단어들에 집중하는 것은 나 자신의 꺼내보고 싶지 않은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는데 특효약이다. 어쩌면 나는 내 문제를 잊어버리려고, 이런저런 타인의 문제들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큰 문제들을 고민하며 뉴스를 소비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또 가능한 무엇에도 동요하지 않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을 원했다. 한동안 내 Spotify 플레이리스트는 바흐나 헨델 같은 고전 클래식 작곡가들이나 '집중을 위한 플레이리스트' 같은 것들로만 도배되었다. 짙고 굴곡 강한 음악들이 주는 감정과잉이 싫었다. 책도 논픽션, 지식을 주는 콘텐츠 위주로만 찾게 되었다.


언제나 열심히지만 별다른 보상이 기대되지 않는 삶. 정치와, 사회와, 산업과, 일상과, 사람들과, 이야기들과, 나 자신의 기대와, 이상과, 또한 그에 맞지 않는 모든 현실들을 바라보고 반추하는데 이력이 나고 지쳐버렸다.  이봐, 그 어떤 감상에 젖는다 한들, 나아질 리 없잖아? 나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그래서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멈추어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드라마는 계속 보았는데, 퇴근하고 돌아와 온갖 기억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한국드라마의 강렬한 서사로 깔끔하게 리셋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함이었다. 그날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tvN에서 어떤 드라마를 보았다. 아이돌 팬인 어떤 여자가 죽은 자신의 최애를 살리려고, 거듭거듭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슬립 드라마였다. 제목은 참 하이틴스럽게도 <선재 업고 튀어> 란다.


게다 글쎄 그 타임머신이라는게, 여자 주인공이 경매에서 300만 원 주고 구입한 최애의 손목시계다. 그냥 만화처럼 가벼운 학원물인가? 내 예상은 여자 주인공 '솔이'가 하얀 병실에 앉아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며, 어쩌다 걸려온 라디오 방송 시청자 전화에 역정을 내는 장면에서 가뿐히 빗나가버렸다. 화창한 날씨와 자전거 사은품 따위를 저주하는 그녀의 날카로운 외침에, 남자 주인공 아이돌 가수 '선재'의 목소리가 조용히 답하며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오늘은 살아봐요. 날이 너무 좋으니까.
내일은 비가 온대요. 그럼 그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또 살아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간 사는 게 괜찮아질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솔이가 선재에게 꽂혀 덕질을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어쩌면 나도 이때부터 이 드라마에 꽂혔던 것 같다.


선재는 삶의 의미에 대해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노력하면 버틸 수 있다는 말도 아니고, 뭔가 용기를 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관조하다 보면, 아픔이 신경 쓰이지 않을 때가 올 거라는 말. 그게 참 맘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드라마의 감정선은 무척 짙고, 대사 하나하나가 매우 진중했다.

중간중간 코믹한 요소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이상주의에 가까우리만치 순수하게 응축시킨 감정들로 인해 긴장감이 지나치게 고조되지 않도록 해주는, 딱 그 정도로만 쓰인다.


주인공들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보통의 한국 드라마에서라면 전체 분량에서 한 두 번이 다였을 키스신이 어쩌다 매회마다 등장하며,

심지어 앳되고 귀여운 부리뽀뽀에서부터 성인의 농염한 깊은 키스까지, 모든 타입이 다 들어있다.


20대의 자그마한 솔이가 현관문을 열고 병아리처럼 계단을 총총 내려가 장신의 선재에게 포옥 안기는 모습은 동화 같이 예쁘기만 하다. 누군가의 짝사랑 대상이기만 했을 것 같은 선재가 실은 솔이를 먼저 마음에 품고 15년 동안이나 그 마음을 간직했다는 것도 그렇다.


그들의 사랑이 시간여행에 갇힌 시한부라는 사실은 그 사랑을 더욱더 애타고 간절하고 소중하게 만든다. 1분 1초도 아까운 어린 연인은, 주변을 신경 쓰기보다는 "마음 숨기지 말고, 숨지 말고, 맘껏 좋아만 하자”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10대, 20대, 30대의 시간들을 넘나들며, 그때마다 서로를 구원해 내려 안간힘이다.

좌절된 꿈의 상처로부터, 끔찍한 악인으로부터, 그리고 사랑의 상실로부터.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멱살을 잡힌 채, 회차마다 몰아치는 이들의 지독한 사랑에 깊게 깊게 빨려 들어간다.



내가 혹시 너 때문에 죽나? 너 구하다가?
그 이유 때문이라면 솔아. 이제 도망치지 말고 그냥 나 좋아해라.
너 구하고 죽는 거면 난 괜찮아. 상관없어



사랑하는 사람 하나 살리겠다고 저 목숨을 포기하거나, 마음이 산산조각 난 채 살아가는 평생을 감수하며 질척였던 인생 둘에, 사람들은 단체로 단단히 미쳐버렸다. 차도녀, 차도남의 세련되고 감각적이며 도회적인 만남, 뭐 이런 이야기는 이제 시시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자격이 필요하고 조건이 붙는 시대에,

또 누군가는 그런 자격과 조건이 되지 않아 사랑이란 다짐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에,

모두가 이 드라마에 빠져선 OTT와 유튜브 다시 보기로 월요일까지 버텨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어쩌면 내 모든 것을 걸어 사랑할 만한 누구도 찾지 못한, 또는 나에게 그렇게 해줄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결핍, 그리고 그렇게 결기를 보이며 인생을 걸만한 그 어떤 가치도 찾지 못한 마음의 공허함이, 이런 이상화된 사랑에 열광하는 것으로 투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의 결핍과 공허함이 이 드라마를 통해 발견되고 어루만져진다.


실은 순수하지 못하며, 순수해서도 안될 것 같은 세상이다. 영수는 넘쳐나지만, 선재와 솔이는 내 주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태 내가 보고 있던 세상이 더 거짓말 같은 가상현실이고, 원래는 이래야만 되는 거였고, 사실은 이게 맞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오히려 선재와 솔이 살고 있는 세상이 진짜다.


그래서 한 번도 삶의 가시에 찔려보지 않은 것처럼, 무엇에도 질려보지 않은 처음인 것처럼,

매 순간 솔직하게 마음을 열어 보이고 진심을 다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에게서

치기 어린 미숙함이 아닌, 용기와 대담함을 발견하게 될 차례다.

지금은 너무 희소해져 버려 비로소 가치 있게 된 것.

이제는 청순함이 대세고, 순수함이 무기고, 진정성이 종교다



덕분에 오랜만에 시집을 샀다. 바닥까지 파고 내려가거나 설렘으로 온 하늘이 무지갯빛인, 주체 못 할 감성에 휘청이는 음악들도 찾아보았다. 희망에도 사랑에도 개연성을 추구하던 것을 잠시 접고, 그저 순수하게 마음을 따라가며 느껴보려 한다. 드라마 한 편 열심히 보며 얻은 것치고는 꽤 대단한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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