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본 포스팅은 디즈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영화 그 사람 영화 맞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포스터를 본 이들이라면, 이 작품의 크레딧을 굳이 보지 않아도 이 영화가 웨스 앤더슨의 영화임을 알 수 있을 거다. 어떻게 이런 배우들이 한 작품에 나왔을까 싶을 만큼 화려한 캐스팅 목록과 각 인물의 특징을 단숨에 요약해서 보여주는 의상과 헤어,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공을 들인 게 느껴지는 포스터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요약판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기 전에 포스터를 보며 영화의 분위기와 서사를 유추하는 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단서가 되어준다.
10번째 웨스 앤더슨 월드
웨스 앤더슨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가장 뚜렷한 감독 중 한 명이다. 포스터나 스틸컷만으로도 어떤 감독의 영화일 거라고 추측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웨스 앤더슨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의 작품이 주는 인상은 강렬하다. 웨스 앤더슨이 구축한 세계에 진입해서 형형색색으로 구축된 프로덕션 디자인, 진중함과 위트를 수시로 오가는 분위기, 특이점으로 가득한 인물들과 함께 이야기를 온몸으로 느껴본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 영화 특유의 화려한 색감 외에도 애니메이션과 흑백 연출을 과감하게 사용한 작품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이고, 애니메이션으로 연출이 바뀌는 순간 잡지 속 카툰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면이 흑백과 컬러를 오갈 때 웨스 앤더슨의 풍부한 색감은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흑백으로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에는, 그의 영화가 화려한 화면 때문이 아니라 인물의 서정을 잘 다루기 때문에 많은 관객에게 환영받는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단 하나의 헌사를 위한 네 개의 이야기
<프렌치 디스패치>는 크게 네 가지 이야기로 전개된다. 각 소제목은 실제 잡지처럼 페이지 수와 섹션이 구분되어 설명된다. 각 챕터별로 기자가 중심이 되어 기사에 대해 서술하기에, <프렌치 디스패치>는 형식과 구성에 있어서 잡지를 연상시킨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는 미국의 저널리즘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뉴요커'의 공동 창간인 해롤드 로스를 모델로 하고 있고, 첫 번째 챕터를 이끌어나가는 여행 기자 허브세인트 새저랙은 '뉴요커'의 작가 조셉 미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즉, <프렌치 디스패치>는 저널리즘에 대한 헌사이다. 웨스 앤더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에 대해 다룬 기자들과 기사를 통해 조명된 사람들에 대한 헌사를 보낸다.
보고 싶은 배우들을 한 편의 영화로 다 보는 방법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그것도 모든 감독들이 선호할 만한 배우들이 분량과 상관없이 출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른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게 당연한 배우들이 몇 컷만 등장하고 사라지고, 웨스 앤더슨과 한번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 이후 그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것은 그의 연출이 가진 매력을 증명한다.
각 챕터별로 등장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한 영화 안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챕터 1. 자전거 타는 기자(The Cycling Reporter)
자전거를 탄 기자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도시가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한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에 속한 이들 중 편집장 역할을 맡은 빌 머레이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이다. 영화 소제목에 해당하는 자전거 타는 기자 역할은 오웬 윌슨이 맡았고, 오웬 윌슨은 웨스 앤더슨 영화에 자주 출연할 뿐만 아니라 <바틀 로켓>,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넌바움>에 각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드라마 <매드맨> 시리즈와 영화 <인비저블맨>의 엘리자베스 모스가 편집자 역할로 웨스 앤더슨 영화에 처음으로 출연했고, 웨스 앤더슨의 페르소나 중 한 명인 제이슨 슈왈츠먼은 <다즐링 주식회사>, <개들의 섬>에 이어 <프렌치 디스패치>에도 각본으로 참여했으며 삽화가 역할을 맡았다.
챕터 2. 콘트리트 걸작(The Concrete Masterpiece)
감옥에 갇힌 천재 화가가 교도관을 뮤즈 삼아 그림을 그리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콘크리트 감옥뿐.
챕터 시작과 동시에 등장하는 베네시오 델 토로와 레아 세이두를 보면 둘의 관계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베네시오 델 토로와 레아 세이두는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배우 모두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에도 출연하는 동시에 아트필름으로 분류된 영화에도 부지런히 등장하며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베네시오 델 토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로 마블과 스타워즈 시리즈에 출연하는 동시에, <트래픽>과 <체 게바라>로 각각 베니스영화제와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다. 레아 세이두는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007 스펙터>, <007 노 타임 투 다이>로 미션 임파서블과 007 시리즈에 출연했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자비에 돌란, 토마스 빈터베르그 등 다양한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며 <가장 따뜻한 색, 블루>로 칸 영화제에서 이례적으로 배우로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천재 화가 베네시오 델 토로와 교도관이자 뮤즈 레아 세이두 외에도 웨스 앤더슨 팬이라면 당연히 출연을 기대했을 애드리언 브로디와 틸다 스윈튼이 등장한다. <빵과 장미>, <피아니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는 감옥에서 베네시오 델 토로의 재능을 알아보는 예술품 딜러로 출연하고, <아이 엠 러브>, <케빈에 대하여>의 틸다 스윈튼은 해당 챕터를 취재하는 기자로 출연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의 은총으로> 등 출연작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프랑스 배우 드니 메노셰도 교도관으로 출연한다.
챕터 3. 선언문 개정(Revisions to a Manifesto)
학생 혁명이 일어나고,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는 학생 혁명 주요 인물의 선언문 개정을 돕게 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부터 <듄>까지, 티모시 샬라메의 존재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티모시 샬라메는 '체스 혁명'이라는 학생 혁명에서 체스를 담당하는 학생으로 등장한다. 티모시 샬라메와 호흡을 맞춘 리나 쿠드리는 <루나>, <파피차> 등으로 주목받는 배우로,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각인시킨다.
<파고>, <쓰리 빌보드>, <노매드랜드>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3번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문라이즈 킹덤>, <개들의 섬>에 이어서 이번에도 웨스 앤더슨과 호흡을 맞췄고, 학생 혁명을 취재하다가 티모시 샬라메의 선언문 개정을 돕는 기자를 연기한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로 유명한데, 코엔 형제와 웨스 앤더슨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거대한 농담을 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짧게 등장하는 배우들조차 인상적인데, <이브 생 로랑>,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기욤 갈리엔과 <히어애프터>, <자전거 탄 소년>의 세실 드 프랑스가 티모시 샬라메의 부모님으로 등장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장고 : 분노의 추적자>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크리스토프 왈츠는 티모시 샬라메의 부모가 프란시스 맥도맨드에게 연애를 권하며 소개해주는 예술품 수집가로 등장한다.
챕터 4. 경찰서장 전용 식당(The Private Dining Room of the Police Commissioner)
경찰서장 전용 식당의 셰프는 경찰들이 범죄와 싸우는 동안 요리로 세상에 기여한다.
<바스키아> 속 화가 바스키아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이후로 <알리>, <시리아나>, <브로큰 플라워>와 007과 헝거게임 시리즈에 출연했던 제프리 라이트가 취재를 맡은 기자를 연기하는데, 미국의 작가 제임스 볼드윈과 뉴요커의 기자 A.J. 리블링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캐릭터다. 제프리 라이트는 토크쇼에서 자신이 경찰서장 전용 식당의 셰프에 대해 취재한 경험을 말하고, 토크쇼 진행자로는 <엑스맨 탄생 : 울버린>, <솔트>, <스포트라이트>의 리브 슈라이버가 출연한다.
경찰서장 전용 식당의 셰프가 핵심인 챕터인데, 셰프 역할을 맡은 배우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브 박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배우로 전향한 스티브 박은 <파고>, <시리어스 맨>, <설국열차>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로, <프렌치 디스패치>를 통해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잠수종과 나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의 주연 배우이자 <온 투어>, <바르바라>의 감독으로 칸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주목할 만한 시선 각본상을 받은 마티유 아말릭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어 <프렌치 디스패치>에도 출연했다. 경찰 서장을 맡은 마티유 아말릭 외에도 경찰서에 잡혀있는 범죄 조직의 회계사로 <안티크라이스트>,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윌렘 데포, 경찰과 대립하는 납치범으로 <프라미얼 피어>,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 납치범 일당 중 한 명으로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의 시얼샤 로넌 등 웨스 앤더슨과 한 번 이상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웨스 앤더슨 세계의 든든한 구성원들
웨스 앤더슨의 세계는 화려한 배우들 만큼이나 쟁쟁한 실력의 스텝들로 인해 탄생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음악, 미술, 의상상을 받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애덤 스톡하우젠, 밀레나 카노레노가 <프렌치 디스패치>에 다시 합류했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킹스 스피치>,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등 100편이 넘는 영화의 음악을 맡은 베테랑이고, 애덤 스톡하우젠은 <노예 12년>, <스파이 브릿지>, <레디 플레이어 원> 등에서 미술을 담당했고, 밀레나 카노네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샤이닝>부터 미국 아카데미 의상상 수상작인 <불의 전차>,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영화사에 가장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의상감독이다.
촬영을 맡은 로버트 D. 예먼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까지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촬영을 맡아, 웨스 앤더슨의 눈이 되어주는 촬영감독이다. 편집을 맡은 앤드류 웨이스브럼은 웨스 앤더슨과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작품을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스텝으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 <블랙 스완>, <노아>, <마더!>, 웨스 앤더슨의 <다즐링 주식회사>, <판타스틱 Mr.폭스>, <문라이즈 킹덤>, <개들의 섬>의 편집을 맡았다.
예쁘고 거창하게 말하기, 사람에 대해서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가장 인상적인 챕터는 마지막 챕터인 '경찰서장 전용 식당'이다. 경찰서장 전용 식당 셰프와 취재를 맡은 기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방인'으로 정의한다는 거다. 분명 두 발을 붙이고 타인과 함께 이 세계를 살고 있음에도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세상은 그들에게 이방인의 시선을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이방인이기에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덕에 기자는 셰프에 대한 기사를 더 잘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나간다. 경찰서장을 위해 좋은 요리를 만들고, 세상에 알려지면 좋을 내용을 기사로 쓴다. 셰프의 요리가 경찰의 사건 해결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게 되므로, 셰프는 요리로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세상에서 조명받지 못한 이를 세상에 드러내면서, 독자들에게 사소한 일상도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특별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앞 챕터의 쟁쟁한 배우들과 달리, '경찰서장 전용 식당'의 셰프 스티브 박은 다른 작품에 비중 있게 등장했던 배우도 아니고, <프렌치 디스패치>의 유일한 아시안 주연 배우다. 웨스 앤더슨은 어쩌면 스티브 박이 할리우드에서 느꼈을 감정이 연기에 녹아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를 캐스팅한 게 아닐까.
웨스 앤더슨 감독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거대한 농담을 하는 감독'이라고 답한다. 아름다운 동시에 강박적으로 느껴지는 화면에다가, 인물들은 분명 어른임에도 유치함과 서툰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고, 오히려 등장하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성숙하다.
웨스 앤더슨은 사소해 보이는 부분을 숭고하고 거대하게 그려내고, 특별하고 거창할 수 있는 부분을 소박하게 그려내는데 능한 감독이다. 그러므로 웨스 앤더슨이 그려낸 세계는 관객이자 사람으로서 속하고 싶은 세계다. 나는 서툰 어른이고, 그런 부족함을 맘껏 들켜도 괜찮은 세상을 꿈꾸니까. 무엇이든 능숙해 보이는 어른의 세계에서, 모자람으로 가득한 어른이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 같은 기분이라 웨스 앤더슨 영화를 챙겨보게 된다.
잡지나 신문 기사에 자신이 한 줄이라도 언급되면 가보처럼 그것을 자랑하는 어른을 본 적이 있다. 남들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였던 삶도 그렇게 조명되는 순간 가치 있어 보인다. 그것은 저널리즘의 명이자 암이다. 그러므로 어떤 부분을 비추고 어떤 부분을 감출지 아는 게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굳이 저널리즘이 아니어도, 삶에서도 이러한 선택은 늘 필요하다. 나라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을 생략할 것인가. 내 주변의 어떤 사건을 알리고, 어떤 일에서 시선을 거둘 것인가.
웨스 앤더슨은 영화를 통해 답한다. 발전, 예술, 사랑, 정체성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 앞에서 자신의 기준은 사람이라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웨스 앤더슨 세계를 구축한 웨스 앤더슨은 앞으로도 사람에 대해 말할 거다. 다들 입에 달고 살지만, 쉽게 잊게 되는 '사람'에 대해서.
*본 포스팅은 디즈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