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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Feb 20. 2017

시작하는 글

안녕하세요, 썸머입니다.


스물 여섯 해를 사는 동안, 나는 몇 번의 첫인사를 했을까. 


2013년 가을, 블로그를 시작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고, 단지 내가 사춘기였기 때문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악녀(이자 히로인)인 '썸머'를 필명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썼다. 필명을 쓰는 많은 글쟁이들이 그렇듯, 나는 언제나 내 글을 부끄러워했다.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사랑이라 쓰는 데 익숙했는데, 이제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이런 나의 소일거리를 좋아했던 친구는 브런치를 추천했다. 이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글을 읽는다는 그녀의 말에 혹하여 아이디를 만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혹시라도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까 두려워 시작하지 않은 채로 1년을 보냈다. 이리 저리 치이며 1년 사이에 얼굴이 많이 두꺼워지 탓인지 이젠 모든 것이 무심하다. 그 견딜 수 없는 무심함이 왠지 나를 이 곳으로 불렀다. 


학창시절 나는 전학이 잦았다. 신비롭게도 새로운 학교에서의 첫날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끔찍하다. 공직자들은 으레 공식적인 자리를 좋아하기 마련인데, 그 탓에 나는 항상 아이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나를 소개해야만 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를 수 밖에 없는 나이였고, 당연하게도 나의 첫인사는 한 물 간 청소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리타분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썸머야, 그리고 기린을 좋아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내가 왜 이 곳에 왔는지 정도는 설명할 수 있게 된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에게 어떤 첫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지만, 합리적 인간과는 거리가 멉니다. 걷는 일은 싫어하지만 산책을 좋아하며, 친절하지만 이기적입니다. 기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스무 살 이후로 기린을 보러 간 적은 없습니다. 여름을 좋아하고 겨울을 미워합니다. 비록 모순덩어리인 사람이지만, 언제나 한결같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썸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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