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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hdainy Jan 03. 2024

직장인 8년차, (잠시) 백수가 되다

슈퍼 일개미 시절 돌아보기

회사의 행정상 퇴사일인 12월 31일이 지나, 드디어 공식 백수 1일차가 되었다. 짝짝짝!


실제 마지막 출근일은 22일 금요일, 매년 마지막 주를 쉬는 회사의 연말 방학식이었고 12월 마지막 주를 발리에서 보낸 후 새해를 맞이하여 진짜 백수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생 때부터 유독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용돈벌이 차원의 자잘한 과외 알바, 카페 알바를 했던 20대 초반을 지나고 나서는 뭐라도 취업 스펙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녔다. 학교를 다니며 오전, 주말에 시간을 내서 1년 넘게 근무했던 영국문화원 행정/TA 알바, 3학년이 끝난 후 휴학하고 6개월 동안 근무했던 덴마크 대사관 인턴, 그 뒤에는 복학 후 졸업 전까지 방학을 이용해서 summer intern, winter intern 으로 외국계 대기업 2곳에서 각 2개월 씩 인턴을 더 했다. 그 때는 사실 힘든 감정도 없었다. 불과 몇 년전까지 교복 입고 다니던 내가 성인이 되어서 이렇게 어딘가에 적을 두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고, 다들 구하기 어렵다는 외국계 인턴에 여러번 붙어서 인턴 치고는 많은 월급을 받으며 일했던 것도 당시에는 우쭐해지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나에게 대학 시절은 학교에서는 공부하고, 학교 외에는 계속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한번도 공부만 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대학생 때 했던 일 경험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따로 글을 써보고 싶다.)


그랬던 내가, 정작 정규직 취업을 확정 짓지 않고 덜컥 졸업을 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겁도 없었는데, 지금도 그렇겠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는 정규직 취업 자리가 정해질 때까지 졸업을 유예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갓 26살이 된 그 때의 나는 학부 내내 사회학을 공부했던 정의의 (!) 사회학도로서 '기업에 취업하려고 대학에 왔던 것도 아닌데 취업이 안 되었다고 학점 다 채우고 학부에서 배울 거 다 배운 상황에서 유예를 하는 것은 그동안 내 배움에 대한 기만이다!' 라는 생각을 품고 그냥 졸업을 해버린 것이다. 마음이야 조급했지만 그간 다수의 인턴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어디든 지원하면 되리라 생각했었고, 졸업 후 1달 만에 전혀 예상치 못한 회사인 SM ENT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 때가 2016년 4월이니 최근에 퇴사한 2023년 12월까지, 중간에 몇 번 이직할 때도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약 8년간 슈퍼 일개미로 지내왔다.


이렇게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쉰 적 없이 일했는데, 그 연속성을 차치하더라도 농도면에서도 아주 진-하게 일했다. 천성적으로 책임감이 강한데다가 (티를 안내려고 하지만) 경쟁심도 있고, 새로운 환경을 좋아해서 이직 할 때마다 새로운 산업군으로 옮겨갔고 거의 입사한 후 3-6개월 안에 성과를 내서 조직에서 높은 평가를 받곤 했다. 내 노력으로 얻어내는 좋은 평판, 성공적인 이미지, 그 속에서 만나는 나와 같이 욕심 많은 사람들과의 자극이 되는 교류,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달콤했다. 그리고 지금도 좋다. 지금 내가 잠시 백수를 택했다고 해서 그 달콤함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이제 그런 경쟁, 사회의 평가가 모두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류의 멘트를 하며 치열하고도 사랑했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어찌 보면 지금 잠시 쉬는 것도 그 치열함에 새로운 동력을 가하기 위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치열함을 사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잘 뛰고, 다양한 몸짓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쉬어보려고 한다. 원하는 타임라인은 이번 24년도 1분기 말까지 새로운 행선지를 정하고 2분기부터 신나게 달려보고 싶다. 오늘부터 Linkedin, Indeed 에서 job posting을 둘러 보고 있는데 '아, 정말 이거 해보고 싶다.' 하는 롤이 보이진 않는다. 지금까지는 다양한 도메인에서 '맡겨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잘합니다.' 라는 모토로 공백 없이 일해왔다면 이번에는 마음이 동하는 일을 찾고 싶다. 그런 일을 찾기 어렵다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 지난 8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B2B software 를 다루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요즘 헤드헌터나 리쿠르터들에게 오는 제안들은 대부분 그 쪽이긴 하다.


내가 결국엔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될지, 아니면 이번 쉼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다음 동력을 얻게 될지 실제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제대로 즐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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