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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e Dec 11. 2021

업무로서의 엄마

프롤로그

인생 처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으나, 내가 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각별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2만 배는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아이와 함께하는 나의 인생을 기록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 역시 차올랐다. 그래서 사진도 수백만 컷 찍고, 그림일기도 쓰고, 그냥 일기도 쓰고…한 줄 일기도 쓰고… 인상적인 만큼 남기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해서 조금은 더 상세하게 기록하여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도 생겨났다. 그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하려고 한다.


친구를 하나 사귀어도 세상이 변한다.

학교에 입학하거나, 새로운 직장을 다녀도 세상이 변한다.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해도 세상이 변한다.

아이를 출산한다?

당연히 세상은 변한다.


나의 세계가 변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나의 세계가 변하면서 충돌과 혼란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너무 힘든데 설명할 방법이 없고, 너무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런 나의 세계를 마구 침범해 들어오는 충돌과 혼란 속에서, 조금이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 전에는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타인' 과의 삶을 특별한 이벤트에서 점점 당연한 일상으로 만들어가는 방법을 지금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남기고 싶다.


흔히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찾아오는 기존의 업무 경력의 공백을 '경력단절'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만, 오히려 나의 경우는 '단절'이라는 드라마틱한 상황에 직면했다기보다는, 직장인으로서의 자아가 출산, 육아라는 새로운 업무에 배치되었다는 식으로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태도를 생활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평소에도 남편과 나는 가정을 그 어떤 것 보다 유지, 관리, 성장해야 할 운영의 대상으로 대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한 것 같다.


물론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인간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집단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애정으로 형성된 관계이기 때문에 운영에 더욱 안정적인 기반이 필요하며, 구성원들의 성장(신체적인, 정신적인, 업무적인)을 통한 새로운 변화들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인가 자꾸만 생각보다 더 큰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는 마음을 정돈하고 행동을 수정해 나가는 것에 출산과 육아를 업무로서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출산 자체에서 오는 신체의 타격에 대한 당사자와 배우자 간 실감의 차이. 출산 후 생리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우울감. 주양육자인가 부양육자인가에 따라 다른 아이 돌봄과 관련된 크고 작은 테스크에 대한 인식 차이. 그로 인한 불만과 갈등 같은 것들을 실질적으로 '관리(정리? 처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회사에서도 어떤 상황으로 인해 흘러 흘러 자연스럽게 업무를 맡게 되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잘 해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또한 예상보다 너무나 과중한 업무인데, 당사자 외에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팀 내에서 일이 불합리하게 이루어지는 채로 방치되고, 업무량의 불균형이나 구성원의 불만이 생겨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일은 잘 흘러가지 않는다. 잘 흘러가는 듯 보이나 속으로 곪아가는 경우도 많다.


문제 상황을 알게 되었다면, 첫 번째로 팀을 이끄는 리더가 할 일은 그 원인을 파악해 일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관리만이 아닌 실무를 겸하는 리더라면 우선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할 줄 모르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인정하고 오픈해야 한다. 그리고 일을 원활히 진행시키기 위해 구성원을 적합한 업무에 배치하고 업무배분을 해야 한다. 내부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비용을 들여 외부 인력을 보충해야 한다(물론 예산을 고려하여). 그리고 의외로 간과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팀 리더의 의무는 업무의 큰 그림과 목표를 언어로 정리하여 구성원들에게 정확하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진행 계획을 설명하고 그중에서 해당 구성원이 맡게 되는 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책임이 있는지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중간중간 리마인드를 하여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것 역시 필요하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미 가정에서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주양육자는 '팀, 리더, 구성원, 업무, 비용, 외부인력'이라는 단어들에 자신이 처한 양육의 다양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대입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충만하다 못해 흘러넘쳐서 남기는 아기 사랑에 대한 기록이자,

아기 0~20개월 무렵 출산-육아 책임자 위치에서의 업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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