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일 아기와 함께라면
아기를 어디서든 많이 봤는데…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예능에서도.
그림으로도, 글로도, 실제로도.
분명 살면서 아기를 많이 봤는데…
내가 본 것은 신생아가 아니었다.
돌 즈음의 아기를 보고, 혹은 최소한 100일은 지난 아이를 보고
아주 어린 아기를 보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출산하면서 신생아를 마주했을 때, 그 감정은 뭐랄까...
아기가 예쁜가 아닌가, 귀여운가 아닌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신생아는 너무 작고, 속살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처럼 축축하고 빨갛게 야들야들했다. 10달을 가득 채우고 4일을 더 지나 태어났는데도 아직 인간으로서 기능이 완전히 발달한 상태가 아니었고, 먹고 소화해서 배설하고 자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생존에 매우 취약한 존재였다.
출산을 앞두고 나름대로 알아보고 아기용품을 준비해 놓았는데, 막상 갓난아이를 접하니... 해보고 안 맞으면 바꾸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준비한 물건들은 죄책감과 함께 죄다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할 것 같았다. 눈앞의 존재가 테스트를 해봐도 될 것 같은 대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호들갑을 좀 더 떨자면, 이런 혼란하고 오염된 세상에 태어나게 하다니,
여기 지구의 공기! 이거 너무 더러운 것은 아닌가?! 무균의 세계로 가야 해!!!
라는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게 바로 호구 포인트겠지...)
뜬금없지만, 아주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는 출근길에 눈앞에서 누군가 쓰러지거나 큰 사고를 당했다고 상상해보자. 그 순간 나의 일상에서 중요했던 일들이 무의미해지고, 우선은 그 사람의 구조를 우선으로 할 것이다. 일단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긴급상황…. 같은 것이었다; 아이를 일단 살려는 놓아야 했다. 그래서인가 한동안은 양육자는 자신의 신체를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존엄보다는 가슴팍을 까든 뭘 까든, 당장 아이를 살리기 위한... 식량 디스펜서 같은 것으로 쓰게 되는 것이다. (하..)
이런 응급 상황에 왜 전문 의료기관은 손을 떼는가.
왜 갑자기! 자 이제 다음은 알지? 잘해봐~하고 떠나가버리는가.
참으로 야속하고 막막하기 그지없다.
사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때 양육자가 하는 일은 젖을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고... 하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아기 돌보기 루틴이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이 루틴의 뒤에는 뒷골이 쭈뼛 서는 긴장감이 bgm처럼 늘 흐르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실수하면 뭔가가 크게 잘못될 수도 있는 불법 의료행위 같기도 했다.
(자, 이제 호들갑 그만... 많은 경우 별다른 일이 안 벌어진다.)
나 때문에, 내가 뭔가 잘못해서, 뭔가를 눈치채지 못해서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움이
출산 직후부터 약 100일에서 200일 정도까지 지속되는 것이 그 시절의 어려움이라면,
생활의 리듬을 잘 찾고 업무적으로 일하고 그런 거 좋은데, 최소 100일까지는 안되더라.... 포기하자.
그런 얘기다 ㅎㅎ
아이가 커가는 것이 예쁘고 귀한 것은 아이가 정말 예쁘고 예뻐서만은 아니다.
하루하루 별 일 없이 성장하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기 때문이다.
무사한 것은 당연하지 않고, 사실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