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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e Feb 11. 2022

양육에는 '주'와 '부'가 있다.

보통 다른 일이 그렇듯이.

양육에는 주와 부가 있다.

보통 다른 일이 그렇듯이...


제대로 글을 써 본 경험도 거의 없으면서, 굳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굳이 '팀장'이니 '책임자'니 하며 육아를 업무 상황과 대응을 시키는 것도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모든 일이 치밀한 계획과 예측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또 계획을 세웠다면 그 계획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순간순간의 결정과 작은 이벤트들이 어떤 상황을 흘러가도록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각각의 개인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태도와 경험들이 어떠한 방향성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 각자가 지닌 방향성을 바탕으로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많은 경우 더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지는 업무들이 결정된다. 이런 방향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할 일 목록을 나열해 놓고 '너는 이것, 나는 이것' 이렇게 업무 배정을 한다고 한들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사람이 모여있는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 가정이라는 조직도 한 사람이 지닌 방향성이 중요하다.

각자 성인으로 성장하다 보면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습득하게 된다. 같은 일이라도 처리하는 방법이나 생활에서 무게를 두고 있는 부분이 다르게 자리 잡는다. 그렇게 다른 두 성인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조직으로 묶이면 우선 서로 능숙도가 높은 스킬을 존중하며 책임을 나눠 갖게 된다.


나와 남편이 이루는 ‘우리 가족’이라는 조직 안에서 어떤 일의 책임을 맡는 경우 , '주무관' '팀장' '대장' 'chief OO Officer' '에이스' '왕' 같은 유난스러운 호칭으로 부르며 대우를 해 주는 편이다. 이 제도는 "가사 vs 경제활동"과 같이 큼직한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하찮고 세세하게, 혹은 미묘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침대관리 주무관

휴가 및 여행 관리자

물때 프루프 매니저

Chief Financial Officer

홈메이킹 팀장

톤앤매너 유지

수납 왕

주말 청소 리더

육아 팀장

셰프

식자재 재고관리 주무관

벌레퇴치 반장

음식물쓰레기 처리대장

식물관리

소모품 재고 매니저

연구개발 소장

주워오는 애

버리는 애


업무 분류가 일반적인 기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업무 위계의 상하관계가 엄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일의 경중을 매출과 이익에 따라서만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는 점 정도 되겠다. 오히려 가정에서는 유지 보수와 관련된 일견 사소한 듯한 디테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럼 책임자라고 하는 사람이 다 하냐? 책임자가 관련된 실무를 도맡아 다 해내거나 반대로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자는 자신이 그리는 방향성과 큰 그림, 능력과 한계 등을 파악하고 팀원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계획 및 운영할 책임을 갖는 것이다. 일단 일을 맡고 있는 동안은 가계 전체의 경영방침 및 예산을 고려하여 유관부서와의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그리고 구성원은 그러한 팀장의 계획을 인정했다면 잘 굴러가도록 배정된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근데 혹시 궁금해할까 봐 그러는데, 우리 가족은 남편과 나 그리고 아기. 이렇게 셋이다.)


가정은 감정이 얽혀있는 조직이고, 엄연한 경제주체이다. 그 안에서 구성원이 몇 명이든, 어떤 기술과 재능이 있고, 비용이 어떻게 들어오고, 주된 수익은 어디서 발생하고, 비용이 어떻게 나가고, 공유하는 큰 비전이 무엇이며, 성장을 위한 연구 개발은 어떻게 할 것이고, 구성원의 복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상호 협의 하에 운영해야 한다.


이러한 운영의 중요한 포인트는 책임자의 역할에 대한 존중과 책임자가 이행해야만 하는 의무이다. 책임자는 맡은 분야에 대한 팀원의 적절한 업무 배치와 업무지시, 그리고 큰 그림과 방향성 설정, 정확한 설명의 의무를 가진다. 일을 기획하여 의사결정하는 책임자는 다양한 관점과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만, 반대로 단편적으로 업무 지시를 받는 이는 이해도가 떨어진다. 이해도가 달라지는 만큼 애정도도 달라진다. 이해도를 얼마나 끌어올려, 애정과 능동성을 만들 것인지는 책임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육아에 있어서 책임자는 흔히 이야기하는 주양육자이다.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주’ 양육자가 그리는 큰 그림과 ‘주’ 양육자가 신경 쓰는 디테일을 ‘부’ 양육자가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말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알아내야 할 것이라거나, 혹은 그래야 한다는 믿음은 스스로를 ‘요즘 애들은 주인의식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장이나 부장.. 혹은 과장 같은 불통의 꼰대로 만들어버린다. 내가 어떤 이유에서건 '주'양육자가 되었다면 책임자로서의 의무도 가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아이의 영아시절 주양육자는 엄마가 되는 일이 많은데, 출산 후의 신체 회복과 수유 등의 이유로 아이와 밀착되어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체득된 사회적인 인식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경우도 어떤 판단의 겨를도 없이 사회적인 통념대로 흘러갔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 동안 아이와의 아주 미묘하고 사소한 24시간 우리 이쁜 아가랑 안 붙어있는 너네들은 절대 알 수 없는!!??호호 인터렉션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불만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이 애착을 나만 독점하고 싶기도 했다. 이 시간 동안의 아이와의 상호작용으로 얻는 기술과 애착 등에서 부양육자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니 부양육자가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업무만을 지시받아 이행하는 것이 고정되면 이후의 애정 관계 형성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돌봐야 하는 아이가 아주 어린 시절에는 책임자가 실무의 많은 부분을 이행한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고 일이 커지면 업무를 나누어야 한다. 비용과 함께 고민도 커지고, 아이도 한 명의 어엿한 가족 일원이 되면서 그 역시 의견 제시권을 갖게 된다. 의사결정자 한 명의 머릿속에서 판단하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되는 만큼 일이 복잡하고 커질 예정이기 때문에 현재의 책임자는 늘 팀원에게 상황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자가 판단과 진행계획에  '사정' 필요는 없지만, '이해' 시켜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에게 역할과 권한을 주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가담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후에는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이기를 바란다. 아이가 더 자라 사고와 신체가 발달함에 따라 가정 내 담당 업무가 생겨서 함께 가정을 운영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 도대체 그게 언제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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