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tail Blues
기억이 자꾸 뒤섞인다.
기억 속 나비는 그저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뿐인데 기억 바깥의 나는 저 나비가 언제부터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는지, 나비가 맞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든,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이 나비든 제비든 상관없다. 그저 내가, 지금, 여기,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아름다웠던 기억이 없어 황망하다. 자꾸 발을 헛디디고 길바닥 위에 나뒹굴게 되는 것이 그 때문인 것 같아 헛헛하다. 더럽고 아픈 기억에 젯소를 바르고, 또 바르고, 다시 바른 뒤에 다른 기억을 덧칠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딱히 그릴 것이 없어 젯소를 바르고, 또 바르고, 다시 바르면서 부디 천천히 마르기를 빌고 또 비는 수밖에.
약을 처방해 주는 의사는 다정하지만 나보다 한 발 앞서간다.
미술치료 상담사는 다정하지만 나보다 한 걸음 뒤에 있다.
공방 강사는 다정한 데다 나와 함께 서 있다.
마사지사는 다정하고 나보다 더 내 몸을 걱정한다.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내 조각을 들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나를 보며 미소짓는다.
각기 다른 색깔의 미소가 참으로 고맙고 예쁘다.
나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믿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돌보지 않음으로 나를 돌본다.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는 것의 무게, 하늘보다 무겁고 땅보다 깊은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온 힘을 다해 생존 중이다. 살아 존재하는 것,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허망함을 견디는 것. 그에 대한 기록이다. 더럽고 아픈 기억에 젯소 바르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다. 거친 붓자국이 남더라도 기록하고 볼 일이다. 그만큼 생존은 지난하고 초라하고 부끄러우나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기억을 자꾸 덮는다. 어쩌다 바위에 뿌리내려 잎을 틔워 끝내 버틴 꽃 같은 기억은 남겨두고 덮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덮일 때까지 덮을 생각이다. 그렇게 마흔 둘을 고이 접어 마흔 셋을 나빌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