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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Dec 25. 2023

 독일인과 장기연애 후 이별

1.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고?

어연 독일에서 살게 된지 7년. 7년동안 외국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를 가장 많이 성장하게 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장기연애라고 할 수 있다. 연애를 두려워했던 나는 항상 짧은 연애를 선호(?)아닌 선호를 했고 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독일에서 학사와 석사를 끝마치기로 결정하면서 어떻게 보면 한 곳에 정착해서 6년을 살 수 있었고 그러면서 독일인과 5년의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미 지나가면 지나간 일이고 지나간 일이라지만 남의 연애 얘기가 제일 재밌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의 인생을 어느정도 글로 남기고 싶어서 연재 형식으로 연애얘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22살의 나는 미국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독일의 엄청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무모하다면 무모하게 선택을 했는데, 독일로 떠나면서 핸드폰을 가져가지도 않았고 아는 사람도 한명도 없이 가게 된다. 가져온 짐들도 아무것도 없이 배낭과 캐리어 2개. 하지만 어려서 그랬는지 무모해서 그랬는지 하나하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신나고 재밌었다. 길을 잃어도 재밌었고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재미었었달까. 


그 당시에는 6개월 정도 만난 남자친구에게 이미 이별을 고한 상태였다. 남자친구는 한국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였고 독일에 올수도 없는 상황이 였기에, 장기간 독일에서 학사 석사를 할 나로써는 남자친구와의 미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어렸던 나로써는 장거리 연애가 힘들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장거리 연애에 이미 데여본 나로써는 미래가 없는 장거리 연애는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의 성향상 장거리 연애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를 설득을 하려는 남자친구에게 한치의 미련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면서 다른 남자에게 설레서 환승을 하듯 연애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미래가 없는 연애에게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것을 이별이라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았다.


독일인 전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 것은 독일에 도착하고 나서 2주 뒤쯤이였다. 나는 독일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독일 기숙사에는 하우스마이스터 (Hausmeister)라는 건물관리인이 있다. 그 당시에는 기숙사에서 빨래를 하려면 공용 세탁기를 사용해야 되었었는데 세탁기에 맞는 동전을 하우스마이스터에게 따로 사서 썼어야 했다. 그 동전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는데 전 남자친구가 그 당시 나의 앞쪽에 줄서 있었다. 나는 독일인처럼 생겼고 나이도 들어보였어서 기숙사에 오래 살았겠지 하고 그 동전이 얼마인지 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자기가 오늘 처음이여서 모른다고 했고, 나는 당황한 채로 응? 너도 여기 신입생이야? 라고 물어보면서 살짝 대화를 시작했다. 그때 내 뒤에 서 있는 친구가 동전이 얼마인지 알려주었고 전 남자친구가 하우스마이스터를 만나러 가게 되면서 대화는 종료되었다.


그 친구는 친구들과 같이 살다가 친구들이 졸업을 하게 되면서 막학기에 집을 따로 구하기도 귀찮아서 기숙사로 들어오게 된 것이였다. 그 친구와 하우스마이스터의 대화가 길어지자 용건이 짧은 나는 중간에 들어가서 하우스마이스터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계속 나를 쳐다보며 웃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싫은 것은 아니여서 기다렸다가 대화를 더 해볼까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갔었다. 하지만 헤어진 지도 얼마 안되었을 뿐더러, 정말 인연이면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싶었다. 왠지 모르게 다시 만날수도 있을 거 같다는 느낌? 그래서 만약에 정말 마주치게 되면 그 아이에게 내 연락처를 줘야겠다 생각하고 그 아이에게 멀어져 갔다.


그러고 한 이틀쯤 지났을까... 그 아이를 정말 우연적으로 기숙사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독일은 한국과 다르게 기숙사가 남녀로 나눠져 있지 않다. 모든 사람이 한 방을 개인적으로 쓰게 되고, 스튜디오 방을 주거나 두명이 공용공간을 함께 쓰는 곳으로 나눠져 있다. 두명이 공용공간을 함께 쓰는 경우 커플이 아닌 이상 동성으로 하우스메이트를 잡아주고, 침실은 따로 쓰는 것으로 나눠져 있다. 나같은 경우는 스튜디오 방으로 잡았는데, 우연하게 그 친구도 같은 기숙사 동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만나면 연락처를 줘야 겠다는 생각이였는데, 다시 만났으니 그 아이와 얘기를 하면서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당시에 나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이메일이 유일한 연락처였다.


하루쯤 지났을까 그 친구에게 같이 산책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독일사람같아서 웃긴데 그 당시에 나는 아 내가 처음 온다고 해서 도시 구경시켜주려나보다 하고 신나서 그래 같이 만나자 했었었다. 그때가 9월이여서 학기가 시작하기 한달이나 남은 시기이기도 했고, 나는 그곳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남는 것이 시간이였다. 첫 데이트는 독일에 하나쯤 있는 구시가지의 타워에 올라가서 구경을 하는 것과 공원을 거닐면서 산책을 하는 것이였다.


그 친구는 참 많이 조용한 아이였다.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처음 간 곳에 신나서 쫑알쫑알 떠든 것에 반해 첫 만남에 그 아이는 몇마디 정도? 지금 지나서 생각해 보면 그 아이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다 독일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영어가 부족해서 더 그랬었던 것도 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여서 더 그랬었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은 과묵하고 서툰 스타일을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나로써는 그렇게 크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아니였다. 과묵한 성향과는 다르게 그 아이는 두번째로 만남을 이미 첫번째 만남에서 제안했는데 자꾸 Sea (바다)를 가자는 것이였다. 내가 살던 도시는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몇시간이나 걸릴텐데 계속 Sea Sea 거려서 아 그럼 뭐 차타고 가겠지 싶어서 가자고 했었다. 나중에 독일어를 알고 들어보니 독일어인 See(호수)가 영어로 뭔지 몰라서 계속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 남자친구 덕분에 나는 도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차가 있어서 처음 나와 사귀던 당시 도시의 여러 곳을 차로 구경시켜 주어주기도 했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보여주기도 했다. 독일인만 가득 차있는 파티에 나를 데려가 주기도 했고, 독일인은 케밥을 먹는다면서 케밥맛집을 데려가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독일에 온지 2주만에 독일인 남자를 만나게 되서 데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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