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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Feb 17. 2018

게으른 아빠와 딸

   이틀을 내리 자고, 삼일 째 되는 날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쉬고자 하는 마음이 드디어 질주를 멈추고,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몸을 씻고, 화장대를 정리하고, 책장을 정리하였다. 가볍고 정돈된 느낌이 안정감을 주었다. 다만 조금은 씁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삼일 째 되는 날에서야 나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자꾸 '허용'을 해준다. 이전 처럼 나에게 더이상 강압하지 않는다. 내가 계속 고민하면서도 결국 멀쩡하게 잘 살고 있음을 목격하기 때문일까. 강압과 금지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의 아버지는 다소 낯설다. 편하지만 어딘가 조금은 아버지의 늙음을 느끼게 하여, 마음이 괴로워진다. 

 

   이번 설에 나의 아버지는 본인이 나와 매우 닮았기에 나를 미워했다는 말을 했다.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지만 뇌리에 와 박혔다. 나 역시 알고 있었던 점이었다. 약간 이물감이 들었던 것은 아버지께서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뉘앙스로, 새삼스레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닮은 것은 하루이틀 이슈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사실은 예술가야."


   자조한 듯 내뱉는 아버지의 말은 내 눈가 어디엔가 스파크를 튀기게 했다. 작가를 "글쟁이"라 폄하하고, 가수를 "잡놈"이라 일컫는아버지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인정하다니. 결국 어떤 특징을 강렬하게 미워함은,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잠재해있기 때문임을 사소하게 다시 느꼈다. 과거에는 본인도 지금의 나처럼 게으르고, 지나치게 몰입하였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아침 7시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절대 일상의 규칙을 깨서는 안되는 지금의 모습은 사실 일생에 거쳐 아버지가 다 만들어낸 본인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말 속에서 내 시야가 얼마나 좁았던지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항상 반대하고, 지나치게 걱정하는 아빠. 그 이미지에서 나는 10년을 나아가지 못했었다. 내가 연인에게 차이고, 힘들어 하던 그 때. 2박 3일을 같이 울며 불며, 방안에 같이 드러누워 있었던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였는데 말이다.


   피라는 게 무엇이길래, 혈육이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에 사소한 게으름, 지나치게 아파하는 감수성이 그대로 내게 왔단 말인가. 내가 게으를 때 마다, 내가 너무나 아파하여 철철 울 때마다, 내지르셨던 분노와 짜증은 스스로를 향하는 것이었던가.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사실을 미리 알 지 못하여, 나의 아버지에게 악을 질렀던 내 지난 과거가, 이번 설에는 나를 깊은 곳에서 착착 무너뜨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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