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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iouiouuu Mar 18. 2019

슬픔의 모양새, 저마다가 다른 (1)

- 작은 외삼촌의 장례식을 끝내고 돌아와서



작은 외삼촌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외삼촌은 아들 하나와 외숙모와 함께 살았다. 그의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고, 형제는 형인 큰 외삼촌과 여동생인 우리 엄마 뿐이어서- 상복을 입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조카인 나와 나의 언니와 영아언니까지 상복을 입게 되었다. 작은 외삼촌과 나는 그리 자주 만나거나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솔직히 제대로 된 말 몇 마디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다. 외가 쪽은 특히나 성격이 조용조용하고 말을 아끼는 편이라, 더욱이 그랬다. 금요일에 언니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장례식장으로 향할 때, 나는 그리 슬프지 않았다. 꽤 덤덤했고, 그저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랬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어제오늘 그리도 많이 운 것은 내 눈앞에 있는 유족의 슬픔을 복사한 슬픔, 그리고 나의 관계를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슬픔들이었다.


 작은 외삼촌은, 큰외삼촌에게는 동생이고- 우리 엄마에게는 오빠이고- 외숙모께는 남편이고- 철이오빠에겐 하나뿐인 아버지이자- 어린 시절에 혹은 어른이 되고나서 만난 좋은 사람들에게는 친구였고- 회사 사람들에게는 자주 만나던 동료였겠고- 철이오빠의 어린 이모들에게는 그들의 언니를 맡긴 형부였겠고- 그곳에서 나고 자란 외삼촌은, 동네 사람들에게  생활 공동체였겠다.  


  나는 그것이 슬펐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그런 관계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 묻어있는 슬픔을 바라보자면, 자연스럽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게도 형제 혹은 자매가 있는데…’, ‘내게도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하면서. 그들이 나를 잃거나 내가 그들을 잃을 때의 침묵과 슬픔을 그려볼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아들은 없지만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계시기에 철이 오빠처럼 아버지를 잃은 심정을 100만분의 1의 심정으로 느껴보면서,  또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의 심정을 그려보면서 울게 되었다.


  사람들의 기나긴 침묵 혹은 눈물이 모든 감정을 말해주는 3일간, 나 역시 오래 침묵했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려 애썼다. 마음 한 켠에 서로에 대한 걱정과 깊은 먹먹함은 접어둔 채 있었다. 죽어서 ‘당신’은 어떤 마음이냐고 마음이 괜찮냐고 하는 안부의 물음 대신, 잠은 제대로 잤냐거나, 지금 어서 한숨 자두라거나, 밥은 먹었냐거나, 어서 한술 뜨라거나 하는, 서로의 밥이나 잠을 걱정하는, 하릴없는 겉만 핥는 말들 만이 쉴 틈 없이 오고 갔다. 일부러 장난치고 농담했고 환하게 웃을 일을 찾아 나섰다.



 

  사흘 간 나는, 조용히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여느 때의 나처럼- 타인의 표정이나 소리나 행동들을 관찰했다.


 모두 각자가 저마다가 다른 <슬픔의 모양새> 를 가졌다. 기억하는 대로 기록했다. 내 관찰과 기억은 선명한 사실도 아니고 솔직한 판단도 아닐 수 있지만 흐릿하게 나마 글로 기록하고 싶다.

  마음이 아프다거나 쓰라리다는 말로는 절대 절대 표현할 수 없지만, 일단은 그런 말들로 그때 사람들의 감정과 공기들의 일부를 도려내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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