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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Aug 26. 2019

현실과 추상의 만남, 영화음악

한스 짐머, 류이치 사카모토 그리고 엔니오 모리꼬네

언젠가 영화음악에 대한 재밌는 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가장 현실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와 가장 추상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만남. 이 정의 안에서 영화음악은,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는 것이다.




Hans Zimmer - Circle of Life

ⓒ 프라이빗커브


영화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은, 셀 애니메이션의 대미를 장식한 <라이언킹>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TV에 틀어주신 디즈니 영화 중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이 <라이언킹>과 <101마리 달마시안>이다. 그 중 <라이언킹>은, 스코어만 들어도 영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다. 특히 영화 도입부에서 'Circle of Life' 스코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동물 세계가 보여지는 장면은 가히 최고의 명장면. '아빠, 저기 사자가 오고 있어' 라는 가사가 외쳐지며, 온 동물들이 아기 사자 심바에게 몸을 숙여 경의를 표하는 모습은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라이언킹>의 스코어 작업에는 거장들이 함께 했다. 가사가 있는 곡은 엘튼 존이 작곡을, 팀 라이스가 작사를 했다. 엘튼 존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그리고 연주곡은 한스 짐머가 작곡했다. 그가 받은 유일한 아카데미 음악상은 <라이언 킹>이 선사해주었다. 여섯 살에 아버지를 잃은 그의 성장배경 속 고통이 <라이언킹> 속 아기 사자 심바의 성장으로 승화되었다. '단순한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쉽게 기억된다'는 그의 작곡 철학이 호불호의 영역을 넘어 세계적인 명곡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Ryuichi Sakamoto - 출성

황동혁 감독과 류이치 사카모토 ⓒ CJ E&M


2017년, 병자호란 남한산성 속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됐었다. 영화관에서 보고 나오자마자 이 영화음악의 작곡가를 검색했던 기억이 난다. 인조가 청나라의 칸에게 무릎을 꿇기 위해 출성하는 장면의 음악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섞인 역사적 배경을 담담하고도 격정적인 멜로디로 그려낸 곡이었다. 그 곡의 이름은 '출성'이었고, 작곡가는 다름아닌 일본의 류이치 사카모토였다.


나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주연인 다큐멘터리 두 편, Coda와 Async를 보면서 인공적인 소리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날 것의 소리에 섬세하게 귀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봤었다. 비가 올 때는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가, 양동이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 푸르른 숲 속에 들어가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를 듣기도 한다. 누군가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소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시간과 공간의 소리라고 답하는 그의 철학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었다.


그리고 영화 <남한산성>은 류이치 사카모토와 한국영화의 첫 만남이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남한산성>의 주요 테마를 자존심(pride)과 구원(salvation) 사이의 분투로 잡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더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던 남한산성 속 인조의 인간적 고뇌 그리고 국가의 운명이, 때로는 고전적이면서 감정적으로, 때로는 현대적이면서 건조하게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Ennio Morricone - Cinema Paradiso

ⓒ Ennio Morricone Official Website


내가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음악 거장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 중 최고는 망설임 없이 엔니오 모리꼬네. 영어를 전혀 못하지만 미국 영화음악을 이끌고 있는 이 거장을 보며, 음악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적 영역은 이해의 영역보다는 '느낌'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코어 음반 중 영화 <시네마 천국> 음악들을 정말 좋아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 영화 속 이미지,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영화를 영화답게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영화음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2016년, 영화 <헤이트풀8> 스코어 작업을 통해 첫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60년 음악인생을 지내온 엔니오 모리꼬네가 88세가 되어서야 첫 수상을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계 예술가에 대한 차별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엔니오 모리꼬네는 영화보다 음악 자체에 더 집중하게 해 영화음악의 기능적 범위를 넘어버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각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 오보에, <피아니트스트의 전설>의 매직 왈츠, <헤이트풀8>의 서부극 음악들.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영화를 좀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 정도면 영화음악의 기능에 충실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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