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종훈 Apr 13. 2018

당신의 친절을 거부합니다.

미생(未生) ‘쿠팡맨’의 ‘고객 감동 서비스’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손 편지 한 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고객님께 이 편지를 드리는 것처럼요. ^.^ 쿠팡맨 OO드림.”


생면부지 사람으로부터 손 편지를 받았다. 쿠팡맨들의 이른바 ‘고객 감동 서비스’ 일환이었다.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 위에는 쿠팡맨이 쓴 편지가 붙어 있었다. 평범한 편지라도 손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감상이 더해진다. 때문에 새로웠다. 매번 택배 보관 장소를 두고 기사님들과 실랑이를 벌여온 터라 감사함도 배가 됐다. 하지만 편지 속 과한 친절은 묘하게 불편했다. 쿠팡맨 님, 어찌 소중하지 않은 제게 소중하다고 부를 수밖에 없게 되셨나요···.

한글날 배달된 쿠팡맨의 손편지
편지는 약과였다. (참고) 쿠팡은 회화전공이나 캘리그라피 경력자를 우대한다. 


택배를 집에 넣어두고 나가던 길. 먼발치에서 박스 서너 개를 품은 쿠팡맨이 뛰어오고 있었다. 개당 20~30cm 높이 상자를 포개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발만 분주히 움직였다. 아마 그가 내게 ‘고객 감동 서비스’로 손 편지를 보낸 OO 쿠팡맨이었으리라. 발 달린 박스가 내 옆을 스쳐갈 땐 인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가 든 박스들엔 내 택배상자에 붙여진 것과 동일한 편지지가 붙어있었다. 마지막 이모티콘이 동일한 걸로 미루어보아 내용은 같은 듯했다.


날림의 글씨체, 분주히 뛰는 모습, 동일한 내용의 편지. 일련의 단서들은 강요된 친절임을 의심케 했다. 생각은 ‘쿠팡맨이 손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로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기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됐고, 불편함은 안타까움이 됐다. 인터넷으로 ‘쿠팡맨의 처우 및 현실’을 찾아보면서였다. 쿠팡맨은 완생을 꿈꾸는 미생들이었다. 현재 비정규직인 쿠팡맨은 성과에 따라 정규직 전환 여부가 결정됐다. 물론, 여기서 이르는 성과는 고객들의 평가였다. 열심히 한다고 모두가 완생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규직으로의 신분 이동이 가능한 이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즉, 대부분 쿠팡맨은 비정규직으로 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이런 희망고문은 그들로 하여금 낮은 임금도 감내하며, 고객과 회사에 충성을 다하게 만드는 동인이 됐을 터였다. 이런 강박과 강요의 실체가 친절한 편지였다. 


평소 기승전결 없는 친절에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다. (아마 다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갑질’이 유일한 취미거나, 환대받을 곳이 없어 ‘갑질’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옷을 사러가도 점원이 쳐다보면 마음이 바빠진다. 말이라도 거는 순간엔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찾아오고, 이내 “둘러보고 올게요”라며 가게를 나선다. 그들의 친절이 선의임을 알면서도 혼자이고 싶었다.


플러스알파 친절을 기대하지 않으며, 때문에 과한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희망한다. 그저 사고, 파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얼마 전 한 화장품 회사는 매장 입구에 두 종류의 바구니를 배치하게 했다. 하나는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문구가, 다른 하나에는 “혼자 쇼핑할게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점원과 고객 모두 필요한 만큼 에너지를 사용하는 선례였다.


손 편지를 쓰느라 잠을 줄어야만 했던 쿠팡맨. 박스에 가려진 그의 눈이 발갛게 충혈 돼 있을 것만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채용청탁이 나쁘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