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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Apr 04. 2019

월급이 올랐다

# 평범함을 수행한다는 것

2년간의 연봉 동결. 연봉이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인 백오만원 월급이 2년간 동결됐다. 그리고 3년 차 직장인.


일은 익숙해져 갔다. 월급은 2년간 동결이었지만  그 사이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영업용 차가 2008년식 모닝에서 당시 신형 엑센트로 바뀐 것이다. 엑센트의 내부는 생각보다 더 작았지만, 화면을 보고 후진하는 기쁨이 추가되어 삶의 질이 살짝 상향 조정된 느낌이었다. 또 하나의 변화라면 신입에서 ‘안신입’으로의 직급(?) 변화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입으로 대하며 모든 일에 친절을 베풀지는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편이어서 큰 무리 없이 신입에서 직원의 대열로 자리 바꿈을 했지만 신입이의 일상이 가끔 그리웠다.


3년 차가 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이유는

대부분 같았다. ‘가장으로 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다.’ , ‘뭘 해도 여기보다는 많이 줄 거 같아요.’라는 말들을 남기며 동기나 선배들은 하나 둘 퇴장했다. 본의 아니게 점차 팀장님들을 제외한 중간 관리자 위치로 이동해 갔다.


자리의 공백은 길지 않았다. 취업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라 꾸역꾸역 인원이 충원됐다. 신입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들 속에서 영업부 팀장님은 고민이 하나 생기셨던 것 같다. 내 월급에 대한 고민. 팀장님과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브런치를 먹었는데, 어느 날 팀장님이 불쑥 월급 얘기를 꺼내셨다.


“회사일 할만해?”

“네 영업도 이제 좀 적응이 돼서요.”

“그만두지 않고 계속 있어줘서 고맙다.”

“..... 네??”

“월급이 작아서 힘들 거 아니야.”

“사실 힘들긴 하죠. 생활이 힘든 건 아닌데, 마음이 힘들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디서 연봉 얘기만 나오면 괜히 눈치 보고 주눅 들고..”

“응 그 맘 뭔지 조금은 알 거 같다.”

“그래도 팀장님이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그 날 대화를 특별히 기억에 담아두진 않았었다. 그저 그래도 팀장님이 좋은 분이라 다행이다 라는 생각 정도 했더랬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나고 뜬금없이 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셨다.


“메일로 월급 명세서 올 거야.”

“네, 늘 그랬는데요 뭘.”

“월급 오른 금액으로 메일 갈 거야.”

“네?”

“팀장들이 너 월급 너무 작다고...”

“오....”

“오...는 무슨.. 고생 많다.”


이곳은 그랬다. 매년 말에 연봉협상을 하고 그런 곳이 아니었다. 대표님이 마음을 먹으면 언제라도 뜬금포로 월급을 올려줄 수도 있는 곳이었다. 작은 기업들이 연봉협상을 하지 않고 그저 통보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월급이 올랐다.

백오만원 -> 백칠십오만원으로..


무려 칠십만원이 올랐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840만원이나. 매년 연봉이 천 단위로 오르는 사람들은 모른다. 이 금액이 얼마나 놀라운 금액인지. 2년간 백오만원으로 숨죽여 지냈던 직원에 대한 호의인가, 아니면 계속 함께 갈 사람이라는 신뢰의 표시인가. 좋았다. 월급 통장에 찍힌 어색한 금액에 한동안 멈춰서 있었다. 오랜만에 들춰본 월급 통장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카페에 들르기 시작했고, 영업 선배들과 식사 때 밥을 종종 사기 시작했다. 물론 집에서는 여전히 엄마의 철통 방어에 월급 인상 기념 선물 외에 십원 한 장 집을 위해 쓸 수 없었다. 빠듯한 살림인데도 아들 월급에 손대지 않으시는 엄마의 결기(?)는 지금 생각하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일이다.


나이 서른한 살. 직장생활 3년 차. 여러 사정으로 취직이 늦었던 절친들. 스물일곱에 경찰 공무원에 합격한 친구와 나를 빼고 그 해 친구들은 모두 취직을 했다. 다들 대기업 다닐 깜냥(?)들은 아니었는지 ‘소기업’에 취직을 했다. 물론 첫 월급은 내가 3년 전 처음 받았던 백오만원보다는 다행히 많았다.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한 친구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온 가족이 회사에 다니는 ‘가족 경영’이 친구의 입사로 방점을 찍게 되었다. 친구의 첫 직급은 과장. 직급부터 다르구나. 그럼 연봉은. 경력이 전혀 없는 친구, 친구여 연봉은 얼마인가? 친구는 아주 자연스럽게 앞자리 ‘3’을 내뱉었다.


“3600”

“........”


그리고 생각했다. 3년간 내 월급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 였다고. 앞으로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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