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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Mar 31. 2019

영화 ‘악질 경찰’에 대한 오해(스포 포함)

세월호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은 정당한가

이정범 감독의 대표작은 원빈 주연의 ‘아저씨’입니다. 한 때 한국적 누아르의 대표주자로 언급될 만큼 강렬한 영화였습니다. 특히 무심한 원빈의 폭발적인 액션씬은 지금 다시 봐도 근사합니다.


아저씨로 입지를 다진 이정범 감독. 그럼 그는 그저 액션에 특화된 감독이기만 한걸까요? 아저씨에서 원빈의 전직은 특수요원입니다.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은 남자. 조그만 구멍을 사이에 두고 고객과 소통하는 전당포 일은 그에게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가능케 하는 직업으로서 적격입니다.


사고 후 굳게 걸어 잠가버린 태식의 마음을 두드리는 유일한 친구는 김새론이 연기한 ‘소미’란 아이입니다. 결핍된 아이, 마약중독자 엄마와 함께 사는 소미의 곁엔 좋은 어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소미에게 태식은 좋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방식일지언정, 소미를 위해 싸우는 어른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이는 세상에 혼자만 남은 것 같다 여기던 태식이었습니다.


소미와 태식은 각자의 사정으로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핍은 ‘상실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어떤 정의인지는 모르지만 결핍이 결핍을 구원하는 서사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저씨의 원빈과 ‘악질 경찰’의 이선균은 너무 다른 캐릭터이지만 영화의 주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맞닿아 있는 지점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 원빈과 이선균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아내를 잃고 고립된 원빈과 비리 경찰로 개인의 이권 챙기기에만 급급한 이선균에게 세계는 개입하고 싶지 않은 그 무언가 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둘이 극에서 변곡점을 맞고 영웅(물론 이선균은 영웅이라 하기에는 찌질하기 그지없습니다만)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유사합니다.


위협을 받고 있는 두 소녀 소미와 미나. 소미는 마약중독자 엄마의 부재를 겪고 있고, 미나는 세월호 사건으로 절친했던 친구를 잃은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원빈과 이선균은 그 두 소녀가 받는 위협에 적극 나서며 영화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극적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악당(?)을 처치하는 방식이 유사합니다. 원빈이 김희원 일당을 죽음으로 응징하는 것과 이선균이 악의 무리의 거두  송영창(기업의 회장) 머리에 총을 발사함으로 응징하는 것이 유사합니다. 끝장을 보는 것이죠. 대충 체포되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잔인하게 적들을 처단하고 나서야 영화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세월호 유가족 한 분의 페이스북을 접하면서였습니다. 세월호를 다루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과 함께 ‘악질 경찰’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와중에 영화는 흥행이 부진했고 댓글들은 혹평 일색이었습니다. ‘세월호를 이런 무례한 방식으로 다루는 것에 반대한다.’라든지 ‘유가족에 대한 실례다.’ ‘사회적 사안을 어설프게 건드렸다.’라는 악플들이 달렸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세월호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아지길 바랐던 저는 세월호를 어떤 식으로 다루었길래 저 난리들인가 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에 유가족 분의 새로운 글을 접했습니다.


.....

<악질 경찰>은 그리고 감독, 스텝, 배우, 제작사 모두는 슬픔을 넘어 ‘분노에 공감’하면서 ‘정말 미안하다’고 그래서 ‘끝까지 같이 싸워서 꼭 단죄하겠다’고 우리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고백하고 다짐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격려, 지지, 응원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분들이 서로서로에게 이러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면 정말 좋겠습니다.

......  유경근님(예은아빠) 페이스북에서 발췌


영화를 봤고, 영화가 끝난 후 동행한 2명과 더불어 한참 자리에 있다가 나왔습니다. 극장에 8명 남짓한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세월호 사건이 왜 등장해야만 하는가?’였습니다. 되묻고 싶습니다. 왜 세월호 참사가 이 영화에 등장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유가족들이 계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그날의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과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억울하게 하늘로 간 아이들을 제대로 보내줄 수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런데 전 정부에서는 참 집요하게도 그 일을 방해했습니다. 힘이 부족했던 유가족들은 줄기차게 시민들의 관심을 바라며 긴 시간을 버티고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말이죠. 그래서 여전히 우리의 관심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환기’시킬 수 있는 운동들이 필요합니다.


이정범 감독은 지금쯤 얼마나 침전해 있을까요? 그가 가졌을 부담감은 흥행 실패보다 세월호를 폄훼했다는 세간의 평가 때문에 더 커졌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용기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세월호를 ‘환기’시켜 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악질 경찰’이 ‘아저씨’를 뛰어넘는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세월호 5주기를 한 달 앞둔 2019년 3월에 꼭 기억될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이선균은 얼룩 없는 흰색 총을 3D 프린터로 구현해 악당의 머리에 발사합니다. 흰색 총으로 발사한 총알에 붉은 피의 파편들이 사방에 난사됩니다. 이선균이 들었던 흰색 총에 악이 더 위협을 느끼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악의 피를 보게 될 때(흰색 총에 피가 묻는 것)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거나(미나의 죽음),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선균의 감옥행)이 도래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또 다른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영화의 만듦새, 배우들의 연기, 세월호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평보다, 세월호 참사를 향한 ‘내’ 관심은 여전히 유효한지를 먼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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