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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Mar 29. 2019

백오만원 정규직 vs 백십만원 알바몬

# 평범함을 수행한다는 것 3

일 년간 백오만원 인생으로 버틴 건 순전히 사람들 때문이었다. 신입인 나보다 물론 월급이 많은 동료들이었지만 함께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은 끈끈한 동지애를 가능케 했다.


역사는 꽤 길었지만 기울어져 가던 출판사. 편집, 기획, 총무, 디자인, 영업부서를 다 합쳐 열한 명. 구박보단 격려가, 질타보단 칭찬이 더 자연스러웠던 곳에서의 일 년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월급날 통장을 확인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백오만원이란 숫자를 망각하기로 결심하면서 무난한 일 년이 활짝 열린 것이다.


집에서는 오히려 가족들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들이자 막내가 적은 월급에 기라도 죽어지낼까 노심초사 한쪽은 오히려 가족들이었다. 월급 탔다고 조그만 먹거리라도 사 올라치면 되려 다시는 사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었다.


“결혼할 때 보태주지도 못할 텐데 집에 돈 쓰지 마.”

“엄마, 나도 아들 노릇 좀 합시다.”

“돈 써야 아들 노릇하나?”

“그래도...”


가난의 대물림. 엄마는 늘 벗어날 수 없는 지금의 경제 상황 속에 차선책 찾기에 안간힘을 쏟으셨던 것 같다. 엄마가 물려주고 싶은 것 중 상위 항목에 분명 ‘돈’이 있었을 텐데, 엄마는 돈을 물려주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끊임없이 돈 쓰려는 아들을 전담마크하셨다. 아들이 대기업 사원이나 공무원쯤 됐다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엄마는 아들 전담마크에 열을 올리셨을까.


백오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연봉이 오르면 씀씀이가 커진다더니 밑바닥 연봉에 맞춰진 작아진 씀씀이 덕분이었다. 마음껏(?)은 아니지만 쓸 만큼(?)도 아닐 수 있지만 그냥 그렇게 한 달을 쓰고 40만 원씩 저축을 할 수 있었다. 일 년 480만원.


잘하고 있는 걸까?

480만원짜리 일 년?

동료애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큼일까?

나는 안전한가?


가끔 이런 생각들이 일상과 일상의 틈을 파고들어와 스며들곤 했지만, 또 다음날이 되어 일을 하다 보면 숫자의 굴레는 옅어지곤 했다. 그래도 살만했다. 당장 큰돈 들어갈 일이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직 서른에 머물러있는 나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살만했다. 청년실업은 대기업 들어가려는 자들의 값비싼 투정이라고 치부해버리며 취직한 자의 허세를

맘껏 부리기도 했다. 근사하진 않아도 절망적이진 않았다. 아는 동생 저녁 한 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형편은 됐으니까.


“형, 첫 알바비 탔어요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취직 후에 만날 때마다 밥을 사줬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그 귀한 돈을.. 아니야 형이 살게.”

“월급 받으면 형한테 꼭 맛난 밥 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도.. 너 필요한 거 사야지! 나중에 정규직으로 취직 하고 나서 쏴! 그때 다 갚아 버려.!”

“일단 만나요 형”


후배는 만나자마자 대뜸 물어봤다. 정규직은 좋으냐고. 알바몬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백십만원 벌려고 많이 참았어요.”

“으응?”

“남의 돈 버는 거 쉽지 않더라고요.”

“백십만원 이라고 했지?”


힘들다는 후배의 말 중에 그때도 지금도 뇌리에 박힌 말은 ‘백십만원’ 이었다. 백십만원. 왜 그날 그렇게 나머지 기억은 없어졌는지. 결국 후배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백십만원에 꽂혀 도무지 지갑을 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이유였다.


정규직 105만원 vs  알바몬 110만원


그 당시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이럴 바에 알바의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백오만원의 안정된 고용이 과연 정말 안전한가에 대한 고민.


그럭저럭 잘 산다고 생각했던 내게 균열은 늘 대기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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