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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Mar 29. 2019

백오만원 인생

# 평범함을 수행한다는 것 2

1,050,000원


첫 월급의 슬픔이란 무엇인가. 첫 월급의 연관 검색어가 슬픔이라니. 통장에 금액이 찍힐 때까지 조마조마했지만, 설마 했다. 팀장님의 온화한 미소, 연봉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차분한 말투에서 괜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현실의 통장에서 나뒹구는 숫자들이 바닥으로 그대로 떨어졌다.


첫 월급은 스물아홉 겨울의 미스터리가 되었다. 아무도 그 겨울 월급 통장의 숫자를 알지 못했으니까. 비밀은 철저하고 치밀하게 숨겨야 유지되는 것. 그 날 이후로 내 월급을 아는 사람은 회사의 총무 팀장님뿐이었다. 엄마에겐 거짓 고백을 하고야 말았다.


“엄마, 나 월급이 좀 적어.”

“그래? 시작이니까 그렇지!”

“그리 생각해도...”

“얼만데?”

“세금 떼고 150만원.”

“아.....”

“적지?”

“적긴 적다...”

“미안해 뭔가”

“미안할 일은 아니고”


150만원 아니고 105만원. 150만원이란 소리에도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온 엄마, 엄마는 9년이 지난 지금도 4년제 지방 대학 나온 아들의 사회생활 첫 월급이 150만원이라는 가짜뉴스를 믿고 계신다.


105만원짜리 인생? 아무도 내 앞에 서서 그런 얘기를 꺼낸 적 없지만, 105란 숫자가 꽤 오랜 시간 나를 가로막았다. 그 가로막힘은 다음으로 갈 수 있는 동력을 최대치로 충전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으며, 대학 내내 잘 챙겨주셨던 교수님을 스승의 날에도 찾아뵙기 어렵게 하는 일이었다.


백오만 원어치만 일할까?

회사가 내게 기대하는 것은 백오만원만큼일까?

백오만원.. 백오만원...


이것은 월급인가 몸값인가.

월급으로 평가절하되는 삶의 시작은 그 후로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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