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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Mar 27. 2019

스물 아홉, 졸업 그리고 취업

# 평범함을 수행한다는 것 1

스물아홉의 이른 가을, 지방 대학의 코스모스(?) 졸업은 조촐했다. 아들 졸업식과 결혼식은 봐야 한다는 특유의 지론 덕에 아버지는 아침나절부터 트럭에 이상은 없는지 괜스레 자동차 주위를 맴돌았다. 아버지가 상상한 졸업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체육관에 학사모를 쓴 아들을 상상하셨던 걸까? 아버지의 상상의 크기가 어떠했든 그날 졸업식은 금세 푹 꺼져버린 솜사탕처럼 왜소했다.


강원도에 위치한 지방대학의 추가 합격 전화를 받고 엄마는 상의도 없이 그 자리에서 “감사하지만 우리 아들은 다른 곳에 합격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결국 재수를 거쳐 충청권으로 대학 입학이 결정된 다음날이었다. 그날 엄마는 아들에게 거는 기대를 꽤나 많이 내려놓으셨던 것 같다.


나이 많은 복학생의 길은 두 가지쯤 되시겠다. 맨 앞자리 착석, 수업조교 자청, 틈만 나면 발표 등등. 학점 잘 받는 일이라면 두 손 두 발 할 거 없이 열일에 앞장서는 부류. 다른 쪽은 복학생 연합 모임 참석에 열을 올리는 부류로 축구, 농구, 당구 등 과에서 공으로 하는 모든 경기에 앞장서는 부류다.


제대 후 복학해서 수업 시간에 뒤돌아보는 경우는 누군가 발표할 때 빼곤 없었다. 교수님 얼굴을 주구장창 쳐다보며 아이 컨택의 세계로 입성하고 말아야 ‘수업 잘 들었다.’라고 할 만큼 열심이었다. 올 에이플도 받아봤고, 웬만해서 과 3등 안에 들었다. 올 에이플을 받고 전액 장학금이 결정된 날 엄마는 배에 힘을 콱 주고 말씀하셨다.


 “너도 할 수 있구나?”


대학생활 내내 자존감을 짓눌렀던 것은 대학 앞에 붙은 ‘지방’이라는 단어였다. ‘4년제 대학 졸업생 실업자 증가’라는 뉴스를 볼 때면 ‘지방’이라는 단어는 더 진하게 강조되곤 했다. 몸의 ‘지방’처럼 떼어낼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수술일정을 잡고 싶을 만큼 간절했다.


지방대학 졸업, 딱 거기까지. 가족들은 막내 아들의 대학 졸업 만으로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안도의 한숨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놀고먹어도 나무라지 않겠다는 태도가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태평성대. 바야흐로 평화가 태동하는 시기였다. 9년째 다녔던 대학의 졸업이 가져다준 평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평화의 지속을 원하지 않은 건 오롯이 ‘나’였다.


돈을 벌고 싶었고, 동시에 초조했다. 그 초조함의 근원은 ‘지방’이라는 단어에 연관 검색어처럼 붙는 ‘실업자’ 소리였다.


“엄마, 나 취직 좀 해 보려고..”

“취직..? 어.. 해야지 그럼..”


우리 가족은 참 착한 족속들이었으니,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할지언정 “네가?”라는 속내 담긴 반문을 절대 입으로 꺼내놓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관심도 못 받은 취준생 시절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가 금세 끝나 버렸다.(^^;;)


면접에서 담당 팀장님이 물어본 건 딱 2가지였다.


“대학 졸업이 좀 늦네요?”

“영업 일이 잘 맞을 거 같으세요?”


정확히 뭐라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두 질문에 답한 후 집으로 돌아가려는 내 뒤에 대고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별일 없으면 아마 출근하게 되실 거예요.”


집에 도착해 아무에게도 면접 얘기를 꺼내놓지 않고 잠들었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침 면접 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라고. 덤덤하게 알았다는 대답을 남기고 또 잠들었고, 저녁께 일어나 담담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나 다음 주부터 출근해.”

“응??”

“그렇게 됐어.”

“응?”

“믿어주소서 어마마마”

“어딘데?”

“조그만 출판사 영업”

“얼마 준대?”

“응??... 아...”

“왜?”

“몰라, 안 물어봤어..”

“그래 암튼 잘 됐다.”


여전히 영혼 없는 엄마를 뒤로 하고 방에 들어와 녹색창에 검색을 시작했다. ‘4년제 대학 졸업자 신입 연봉’, ‘지방대학 졸업자 초봉’ 등등.. 3천, 2천5백 등등이 검색되었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천... 오백만이라도.....”


첫 출근해서 팀장님께 처음 한 질문


“팀장님 제 월급이..?”

“글쎄요 모르겠는데.. 월급날에 확인해 봐요.”

“........ 넵...”


착한 신입 타이틀을 얻기 위해 참고 또 참았다. “그런 게 어딨어요?”라는 말을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었다. 늦깎이 지방대학 졸업생 두 달만의 취직을 허락하신 신께 감사하며 한 달을 보냈다. 생각보다 일도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25일.. 드디어 25일.. 통장에 찍힌 숫자는

무려

105만 원.


“그래도 우린 신입 수습기간 없어요.”


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계속.....어두운 꽃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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