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하철)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남기
임산부 배지를 다는 순간 나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 한다. 왜 전락(落, 떨어질 락) 하느냐 하면 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출근길의 불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됐다고 임신을 했다.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해서 2주 간 속이 메슥거리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져도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했다. 어느 날, 점심도 못 먹고 쓰러져 잠든 날 이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밥이 중요한 사람이라. 혹시나 해서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샀고,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두줄이 나왔다.
8주 5일이었다. 남들은 4-5주에 난황부터 본다던데, 나는 아기 심장소리를 만나자마자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 전, 출장지에서 만난 타 부서 상사가 결혼도 했는데 임신생각은 없냐고 여쭤보셨다.
“ 아 저는 남편과 2년 뒤에 갖기로 했어요"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직원이 두 자릿수를 넘어가고, 육아휴직 대체자 중 일부가 잡음을 내는 상황이라 “우리 회사의 인재네, 그쯤 되면 지금 나간 사람들은 다 들어왔겠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일주일 뒤, 임신을 확인한 것이다.
나 역시 입사하자마자 팀원의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몇억짜리 거대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었다(신입인데요?) 물론 경력직 신입으로서 어찌어찌 해내긴 했는데, 중간에 실수도 있었고 쌍욕도 들어먹기도 했다 ^^.. 지금 부서에도 갑작스럽게 발령이 나서, 회사를 고소하려고(?) 노동법도 찾아본 적 있었는데 이 역시도 이래저래 따져보면 수많은 육아휴직(및 퇴사/파견)의 나비효과였다.
그렇게 매번 땜빵만 하던 나임에도, 임신했다는 말을 하기가 참 미안했다(계획이라도 했으면 밑밥이라도 깔았을 텐데). 물론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필 최근의 조직개편 모두 연달은 육아휴직 때문인걸 아니까.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상사도 “아 축복할 일인데… 또 육아휴직이구나 싶기도 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나 역시 상황을 알기에 , “저도 계획한 건 아니라서요”라는 변명 아닌 변명만 늘어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현재 육아휴직에 매우 매우 친화적인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으며, 육아휴직 대체자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 아예 공백은 아니란 얘기다.(물론 경력차이를 무시할 순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애매한 불편함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렇지 않은 기업에선 얼마나 많은 ‘죄송합니다’를 (죄송하지 않음에도 ) 안고 살아야 할까
물론 내가 입사 3-4년 차에 가졌던 이직의 기회를 날려버렸던 주요 이유 중 하나도, 출산친화적 제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또는 출산생각이 없었다면 더 많은 선택지를 눈앞에 두고 내 인생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다. 먼 미래의 출산임에도 보이지 않게 여자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
겉보기엔 일반인과 다름없는 8~12주 차지만, 초기 임산부는 유달리 더 힘들다고 한다. 겪어보니 정말 그러했다. 하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나는 왜 이걸 지금까지 몰랐지?"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송해나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위의 책을 읽으며 구구절절이 공감하고 동의하며 가장 와닿았던 문구가 있다.
"인류보존을 위하여 모두가 임신의 고통을 쉬쉬해온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어떻게 여성인 나 조차도 임신하는 동안 겪어야 하는 모든 몸의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잘못된 성교육이 성을 숨기고 부끄러운 것으로 만듦은 물론이고, '탄생'의 아름다운 순간 뒤에 감춰진 무너져내리는 산모의 몸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인가. 또는 내가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던 것인가?
그래도 사회가 많이 바뀌어, 생리통의 고통이 세상이 알려지고 육아의 어려움이 콘텐츠로서 제작되며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임산부의 세상은 그다음 순서인 걸까, 오로지 여성만이 감내하기에 여전히 변방의 어떤 것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임산부배려석이 생기기 전의 임산부들이 살던 세계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산부배려석을 차지하는 대부분이 중년여성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에이 설마 그렇겠어했는데 개인적 통계상, 백이면 백, 중년여성이었다.... 어째서....? 심지어 배지를 보고는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이 이백퍼센트... 한 번은 과호흡이 와서 숨을 헐떡이며 서 있느라, 오히려 주변사람들이 내 눈치를 본 적도 있다. 여성연대.. 여성이 여성을 돕는다.... 여기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건가... (이 부분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임신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여성에게 이런 설움을 겪게 되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2018년에 쓰인 <나는 아기캐리어가 아닙니다> 보다는 상황이 나아진 것도 같다. 또는 내가 타는 호선이나 방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70% 정도의 경우에는 앉을 수 있도록 비워져 있었고(이것도 젊은 사람이 많은 시간엔 비워져 있고 아닐 때는…) , 임산부라 모욕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왜 두려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몸도 무겁지 않은 초기 임산부에게 “앉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9주의 경우 나는 아랫배 통증이 있었다. 자궁이 커지기 때문이란다. 확실히 오래 서있거나, 무리할 경우 더 아프곤 했는데 앉아서 갈 수 있는 경우 통증이 덜 했다. 지금 당장 통증이 없더라도, 잠깐의 서 있음은 결국 이후의 통증으로 나타났다.
10주의 경우에는 왼쪽 골반과 엉덩이가 아팠다. 흔히 환도 선다라 부르는 것인데 임신 초기에 그게 와버렸다. 여러 피로가 쌓인 금요일엔 집까지 걷는 5분이 50분 같았던 순간이었다. 앉는다고 덜 아픈 건 아니었지만 서 있는 것보단 나았다.
11주의 경우엔 과호흡이 왔다. 사람 꽉 찬 버스를 타자마자 갑자기 숨이 가빠왔는데, 아침버스에선 앉는 것 자체를 기대도 않기 때문에 봉에 기대어 끝없이 심호흡해야만 했다. 결국 그날의 출근길 한 시간 내내 심호흡을 하며 오느라 정말 힘들었고, 잘못될까 싶어 중간중간 심장박동수를 체크했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앉아 있을 때, 조금 더 낫기는 했다.
입덧이 심한 산모의 경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고통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몇 주간 수박만 먹는 산모도, 귤만 먹으며 버티는 산모도 있다). 태아에게 피가 쏠리니 모든 산모에게 기립성 저혈압은 기본인데 기절을 밥 먹듯이 하는 산모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모들이 이렇게 다양한 고통을 겪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이 사회가, 우리 모두가, 나 조차도 모르고 몰랐지 않나.
어디가 어떻게 힘든지 모르는데 어떻게 배려를 기대하겠나
임산부 배지를 다는 순간 나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 한다. 왜 전락(落 떨어질 락)하느냐 하면 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출근길의 불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임산부배지를 달고 처음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을 땐 나 스스로 '약자' 인양 굴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들었다. 태연히 휴대폰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괜히 힘들어하던가 하다못해 잠이라도 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도 아직 배가 나오지 않은 초기임산부로서 남들에게 '나도 힘들어요'를 설득해야만 할 것 같았다. 텅텅 빈 지하철을 탔을 때, 사람들이 임산부석 바로 옆에 앉아있으면 나도 넓게 빈 가운데 자리에 앉고 싶다. 하지만 그 경우,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임산부석에 앉지 않아서 일반석을 뺏는 건 아닐까? 애매한 경계선 위에서 나는 매번 마음 졸인다.
일반인 같은 겉모습과 달리, 벌써 내 일상의 수많은 부분이 바뀌어 버렸다. 8주 차 배는 똥배 같지도 않아 보이지만 벌써 속옷을 전부 갈아엎었고, 평소에 입던 바지는 입지도 못한다. 배가 조금 끼어도 참고 입을 수 없는데, 모든 피가 자궁에 쏠리면서 위도, 장도 모두 제 기능의 70-80% 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아침에 갑자기 위경련이 와서 출근 못 한 적도 있다. 예전에 입던 원피스를 전부 꺼내고, 또 그중에서 편한 것만 골라낸다. 매일 아침 가지고 다니던 책은 이제 굿바이다. 언제 몸이 어떻게 힘들지 모르기 때문에 신발도 운동화만 신는다. 생산적인 출근길도 포기했다. 언제 잠이 쏟아질지, 배나 엉덩이가 아플지, 과호흡이 올지 모른다.
최근 중국의 한 병원에서 출산을 앞둔 산모가 자살한 뉴스를 봤다. 제왕절개를 위해서는 보호자(남편)는 물론 남편의 가족까지 동의를 해줘야 하는데(도대체 왜) 그들이 자연분만을 강력히 고집했다고 한다. 자연분만을 하게 될 경우 산모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산모는 그 병원에서 떨어져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지만, 꼭 중국만의 이야기도 아닌 듯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내가 가장 많이 울었던 편이 산부인과 편이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아무리 멋지고 주도적인 삶을 살던 여성이라도 아이를 배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사라지나 보다. 그저 태아 보관함이 되어 태아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산모가 아프고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더라고, 태아를 위해 어떤 약도, 치료도 받지 못한다. 이렇듯 모든 구체적 고통은 산모가 겪고 있는데 아이에 대한 결정권 역시 국가가 가져가버린다. 당신들이 그 고통을 직접 겪어보고 그러는 건가.
정말 화가 난다. 그 누구보다 아기를 가장 사랑하는 것은 산모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상의 변화와 고통을 겪고 있는 것 역시 산모이다. 고통을 겪어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중년 남성들이 저출생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불편해졌다. 특히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면서 조직 내 육아휴직자들을 어떻게든 빨리 복귀시키려고 하는 한 중년 남성의 행태를 경험하며, 진심으로 화가 났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해법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 임산부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능이던, 소설이던, 사회적 이슈로 터지든 간에 임산부가 겪는 일상이 조금이라도 더 대중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왜 임산부가 힘든지", "어디가 힘든지", "아이가 커 갈수록 온몸의 뼈가, 장기가, 혈액이 어떻게 변하는지" 좀 더 구구절절 질리도록 세상에 공유되어야 한다.
정책/행정가들은 더더욱, 그렇지 않으면 또 쓸데없는 인력낭비를 통해 "전국 가임기 여성지도" 같은 잘못된 사상을 전국에 자랑하는 꼴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임신을 하고 나니 세상에 분노가 많아졌다. 제도가 온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그저 타인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하기에 내 모든 행동의 재량이 쪼그라들었다. 한창 운동을 하고 나선, 위협적 남성을 만나면 그냥 치고받고 싸울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의 전환자체가 삶을 꽤 쾌적하게 했는데 이젠 무조건 참고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임산부는 조금 더 공감받고 배려받을 필요가 있다. 저출생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가 더욱 배려받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 사회는 여러모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이 최소한 한 명의 인식이라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덧) 4호선에서 들리던 전장연의 절규는 이보다 더 큰 불편과, 더 오래된 분노와, 더 깊은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