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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Jan 09. 2023

약을 쓸 수 없는 아내의 코로나

28. 임산부 아내의 코로나 투병기

아내와 나의 동반 코로나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실제 증상 발현은 내가 3일가량 빨랐다. 하지만 주말이 끼어있던 탓에 확진 판정을 받은 날짜는 하루 차이에 불과했고, 덕분에 아내와 나는 함께 집에 갇혀 일주일을 오롯이 둘이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길게, 단 둘이서 보내는 시간을 가진 것은 8년 전 신혼여행 이후로 처음이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기회는 신혼여행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아주 약간의 시차를 두고 완전히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갑자기 배탈이 온다. 그러고는 스멀스멀 열이 오르더니 가래가 끓고 잔기침이 생긴다. 기침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길어지며, 몸이 무겁고 둔해짐을 느끼게 된다.


기운이 없어 잠을 많이 잤다. 일어나 있는 시간에도 약간 달뜬 느낌으로 꿈처럼 현실을 걸었다. 마치 뭔가에 취한 것처럼, 그렇게 평소와는 다른 감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가격리 나흘이 지나서야 우리는 조금씩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온전한 정신을 되찾기까지 나흘의 시간이 걸렸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해요.”


아내가 말했다.


“특히 임산부는 열이 오르면 위험할 수 있어요. 탈수가 올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양수가 마르기도 한대요. 그래서 아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물을 잘 먹고, 잠을 푹 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아내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명료해진다. 물을 많이 줘야 한다. 가급적 차갑지 않은, 미지근하거나 따듯한 물로. 습도가 너무 낮아지지 않도록 가습기를 틀고 물을 채워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열이 오르지는 않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38도가 넘어가면 곤란하다. 그럴 경우에는 물수건으로 찜질을 해주거나 해야 한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열이었다.


아내는 원칙에 충실했다. 수시로 물을 마셨고 충분히 잤다. 먹는 것도 신경 썼다. 입맛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절대 굶지 않았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먹기 위해 악을 쓰고 숟가락을 들었다.


우리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나흘이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었는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열이었다.


“영 열이 떨어지질 않네.”


아내가 말했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부지런히 열을 재며 확인하는 아내는 37도 중반 언저리를 맴도는 체온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38도를 넘어가면 위험한 거죠?”


내가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응. 그런데 지금은 좀 애매해요. 계속 애매하게 걸리적거리는 수준으로 내려가질 않아요.”


뾰족해진 목소리로 아내가 말한다. 피로와 열감을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임산부. 아내가 먹을 수 있는 약은 오직 타이레놀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도 성분 함유량을 절반으로 낮춘 약한 버전으로.


그런 상황에서도 아내는 본인의 불편함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저 뱃속에 있는 꼬물이가 오른 체온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을까, 혹여 탈수가 와서 양수가 부족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런 아내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꼬물이의 태동뿐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꼬물이는 그런 엄마를 안심시키고 싶었던 것인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몸을 뒤틀고, 여기저기 엄마의 배를 걷어차고 밀어댔다. 이제는 배에 손을 대면 아주 또렷하게 움직임이 느껴졌다. 21주에 느껴지는 태동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코로나 격리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출근하네요?”


아내가 말했다. 나의 코로나 격리 마지막 날. 그리고 아내의 코로나 격리 6일 차가 되던 날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네. 나 회사 나가면 혼자 괜찮겠어요?”


“응. 걱정 말아요. 잘 쉬고 있을게요.”


아내가 답했다. 씩씩하고 용감해 보이는 아내의 정신력은 전쟁터에 나가는 웬만한 베테랑 군인 못지않을 듯싶었다. 문제는 아내의 체력이다. 아내의 몸이 잘 버텨줄 수 있을지, 누가 곁에서 지켜봐 주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격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다. 버티는 수밖에.


밤이 되었다. 여전히 아내의 열은 떨어지지 않고 37.5도 언저리를 맴돌았고, 아내는 처음으로 내게 귀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


“귀가 아파요. 혹시 좀 봐줄 수 있어요?”


아내의 귀 주변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귓속으로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들여다보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귀 주변이 부어올라 귓구멍이 더 좁아진 탓이었다. 아내는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장인어른은 열을 낮춰줘야 한다고, 별다른 수가 없으니 식염수로 코세척을 하는 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내는 장인어른의 설명을 착실하게 따르면서 내게 웃어 보인다.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하고.


결국, 아내가 쓰러졌다.


다음 날이 되어, 나는 회사에 나갔다. 순식간에 지나갔던 일주일이었다. 대단히 아프지도 않았지만 결코 편안하지 못했던 일주일.


딱 하루, 아내를 홀로 두어야 하는 날을 보내야 한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이미 일주일이나 회사를 나가지 못해 쌓인 일이 산적해 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확진은 나를 대체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꽤 많은 동료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딱 하루, 아내를 홀로 두었던 이 날.


한창 정신없이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던 오후 3시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처남이었다. 격앙된 목소리로 처남이 말한다. 아내가, 쓰러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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