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코로나 후유증은 여전히 치명적일 수 있다.
병원에 도착한 것은 저녁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응급실에 한 사람 밖에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네. 일단 저녁 먹고 차에서 잠시 쉬고 있어. 필요하면 부를게.”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침묵이 흐른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장모님이 다시 이야기하신다.
"많이 놀랐지? 급하게 오느라 고생했어. 맘에 걸리더라도 편하게 있어. 한 사람이라도 에너지 남겨놔야 해."
코로나 격리 중에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있었다.
코로나 격리 종료를 이틀 앞두고 귀가 아파오기 시작했던 아내는 불안한 마음에 보건소로 연락했다. 보건소에서는 격리기간 중에도 방문할 수 있는 이비인후과 병원을 알려주었다.
"내일도 계속 아프면 병원을 가야겠어요."
아내가 말했다. 참기 어려울 정도냐는 나의 물음에 아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음 날. 점점 심해져 오는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참을게 아니라 판단한 아내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병원에 들어서며 아내는 자신이 임신 중이며, 오늘이 코로나 격리기간 마지막 날임을 의사와 간호사에게 이야기했다. 수년 전 메니에르를 앓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의사는 아내의 귀를 살펴보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귀에 수포가 있는데, 거기에 피고름이 가득 찼네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의사는 수포를 째고 피고름을 짜냈다. 염증으로 인한 통증과 열이 귀를 붓게 하면서 아내를 괴롭혔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체 왜 귀에 피고름이 차오른 걸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사도 알지 못했다.
“약 처방해 드릴게요. 진통제 하고 소염제…”
의사의 말을 끊고 아내가 이야기한다.
“아까 말씀드렸는데, 저 임신 중입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의사의 손이 멈추고 시선이 아내에게로 옮겨간다. 아마도 의사와 간호사 모두 아내의 말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던 듯하다. 그의 시선은 아내의 얼굴과 이제는 제법 불러오기 시작한 배를 번갈아 머물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이렇게 답한다.
“제가 약 처방해 드리면 드실 거예요?”
“먹을 수 있는 약을 처방해 주시면 먹죠.”
잠깐의 침묵. 이어서 의사가 말한다.
“뿌리는 약을 드릴게요. 소염제는 드시지 마시고.”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병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아내는, 병원 1층 문을 나서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움을 느낀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급히 장모님께 전화를 걸었고, 병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계시던 장모님은 쏜살같이 달려와 아내를 데려가셨다.
장모님 댁에서 3시간가량 누워 안정을 취한 아내. 조금 괜찮아졌나 싶은 마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한 순간 아내는 다시 한번 쓰러졌다. 이번에는 잠시 의식을 잃을 정도로. 다행히 함께 동행하던 장모님이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대원들은 꽤 빠르게 달려와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코로나에 걸린 임산부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아무리 마지막 날이라도 코로나 격리기간에 속하기에, 아내는 아무 병원에나 갈 수 없었다. 아내가 가야 할 병원의 조건은 이러했다. 코로나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곳. 음압병동이 있는 곳. 그리고 이비인후과와 산부인과의 협진이 가능한 곳.
구급대원들은 아내를 눕혀놓고 옹기종기 모여 아내가 갈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처음에는 가장 가까운 수원의 병원들을 알아보았고 그다음은 분당, 동탄, 광교를 넘어 용인까지 갔다. 30분이 지나도록 아내를 받겠다는 병원은 나타나지 않았고, 구급대원들은 바쁘게 병원을 검색하고 전화 걸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병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 음압병실 딱 하나 남았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문의만 세 팀을 받았어요. 가장 먼저 오는 팀에게 병실을 줄 겁니다. 그러니 오시려면 서두르세요.”
아내는 몽롱한 정신에도 이 통화내용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어쩌면 도로에서 응급차 드래그 레이싱이라도 해야 병실 하나 얻을 수 있겠다고.
아무튼.
결과적으로 아내는 안산의 한 대학병원에 딱 한 자리 남은 음압병실로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아내는 피를 세 번 뽑고, 소변검사를 두 번 했으며, 엑스레이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했다고 한다. 길고 다양한 검사에 지친 아내는 나와 통화할 힘도 없는 상태였고, 나는 응급실 앞 벤치에 앉아 장모님이 업데이트해주시는 정보를 보며 어둠이 깔리는 병원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내는 당분간 요양을 떠나기로 했다.
아내가 검사를 모두 끝나고 나온 것은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수많은 검사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쓰러진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병원에 머무르며 수액을 맞은 것이 그나마 아내가 기운을 차리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었는지, 저녁이 깊어질수록 아내의 눈빛이 조금씩 살아났다고 한다.
뚜렷한 병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아내는 더 위급할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음압병실을 비워주기로 결정했고, 나는 응급실 앞에서 장모님의 부축을 받고 나오는 아내를 맞이했다. 아직 저녁도 들지 못하셨을 장모님께 빵과 음료를 건네드리고 걸음이 현저하게 느려진 아내의 손을 잡고 주차장을 향했다.
“많이 놀랐지?”
차에 타고 수원으로 향하는 길에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앞으로 이렇게 놀랄 일이 수도 없이 많을 거야.”
그렇지. 아내의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이런 일이 언제고 일어날 확률도 높아지겠지. 출산 후에도 아이가 커가면서 이런저런 심장 철렁이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것이다. 나의 초조했던 오늘 하루는 앞으로 숱하게 다가올 일들에 비하면 작은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이 또한 나를 강하게 키우는 작은 준비일지도 모른다. 장모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듯하다.
“나, 당분간은 엄마 집에 있을게요.”
아내가 말했다. 회사에 가야 하는 나는 아내가 혼자인 시간 동안 아내를 지켜줄 수 없다. 나 또한 장모님께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던 터였다. 그걸 아내가 먼저 이야기해 준다. 장모님도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신다.
옷가지와 영양제 등을 챙겨 아내를 장인어른 댁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왔다. 시침이 자정을 넘어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홀로 남은 집은 내가 살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적막하고 한산하며, 겨울로 접어드는 차가운 공기가 얼음처럼 굳어있었다. 멍하니 소파에 몸을 묻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린다. 아내다.
“잘 도착했어요?”
오늘 고생했어요. 나를 위로하는 아내의 목소리에서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이 실려있음을 느낀다.
“꼬물이는 엄마가 힘든 것도 모르고 수액 맞으니까 신나서 움직여요. 꼭 ‘달아! 맛있어!’ 하고 춤추는 것 같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요.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데 얼른 자야지. 아내가 말한다.
“고마워요. 잘 자고.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고, 내 걱정은 말고 푹 쉬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아내의 목소리가 사라진 거실은 다시금 적막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힘을 내야 한다.
“힘내야 돼. 한 사람이라도 기운 차리고 있어야지.”
장모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 힘내야지. 여차하면 내가 뭐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기운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감겨오는 두 눈은 텅 빈 허공을 맴돌고 소파에 파묻힌 나의 몸은 늪으로 빨려들 듯 녹아내린다.
“꼬물이는 신났어. 춤추는 것 같아.”
연약한 아내의 뱃속에, 더 작고 어찌할 수 없는 22주 된 아기가 있다. 꼬물이. 아내를 닮았을 내 작고 귀여운 딸.
“꼬물아.”
텅 빈 거실에 나의 목소리가 울리며 적막을 깬다.
“꼬물아.”
천천히 두 눈을 뜨며 허공을 채우는 나의 목소리를 느낀다.
“오늘 고생 많았어. 그리고, 엄마 너무 고생시키지 마. 알았지?”
참 길었던 하루가 간다. 옅어진 나의 목소리는 깊은 밤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나는 다시 내일을 위한 깊은 휴식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