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코로나 후유증이 바꿔버린 것들
아내가 코로나 후유증으로 쓰러지고 일주일이 조금 넘게 지날 무렵. 아내는 장모님 댁에서 임신 22주 차를 맞이했다.
코로나 후유증이 이렇게 무섭다.
아내는 장모님 댁에서 머무르는 중에도 또 쓰러졌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세 번을 쓰러졌고 두 번의 응급실 신세를 졌다. 병원에서는 갖가지 검사를 한 후 ‘코로나 후유증’이라는 진단명을 내놓았다. 딱히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듯했다. 왜 귓속에 피고름이 가득 찼는지, 왜 아내는 앉았다 일어나기만 해도 심박수가 150을 넘게 급상승을 하는지 산부인과 의사도 이비인후과 의사도, 또 심지어 정신의학과 의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코로나 후유증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고 생각하기로. 그래도 아내와 아이 모두 큰 탈이 없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라고.
아내는 회사의 배려로 코로나 격리기간이 끝난 후에도 2주 간의 재택근무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달리 조그마한 스타트업에 다니고, 내가 속한 인사팀 부서에 팀장인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1인 인사체제이기 때문에 재택근무나 장기간의 휴가 신청 같은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자꾸만 픽픽 쓰러져대는 임산부 아내를 혼자 집에 두고 출근길을 나서는 건 못할 짓이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셨는지, 장모님이 제안을 하셨다. 일주일 정도 아내가 회복될 때까지 아내를 맡아서 돌봐주시겠다고. 먹고살려면 회사에 나가야 하는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꾸벅 숙이게 된다. 아내의 산후조리원 비용과 아이 카시트, 유모차 값을 미리 벌어둬야 한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에 차오르는 서운함.
아내가 장모님 댁으로 들어가고 첫 이틀은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집에 도착해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한 후 빨래를 돌리고 소파에 앉는다. 평소에 들였을 노력과 시간의 절반도 들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3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든 관심 갖지 않고 참견하지 않는다. 눈치 볼 일이 전혀 없는 완전한 혼자만의 퇴근 후 휴식시간. 그 느슨함이 주는 편안함.
하지만 이런 감각은 곧 뜨거운 햇볕에 녹아 아스팔트에 들러붙은 껌처럼 변했다. 떼어낼 수 없는 지루함. 연애도 하지 않던 솔로 시절에 나는 이렇게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던 걸까.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12년 동안 나는 어느새 혼자만의 생활을 어찌할 줄 모르게 되었다. 혼자 잘 놀다가도 엄마가 날 봐주고 있는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가 된 기분이다.
이런 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일주일이 지나 집에 돌아오기로 한 날, 장모님 댁에서 며칠을 더 지내겠다고 했다. 아마도 아직은 불안한 장모님의 마음을 달래 드려야 했을 테니까. 아마도.
나의 머리는 아내가 장모님 댁에서 지내는 게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사에 나가야 하는 나는 장모님처럼 아내를 돌봐줄 수 없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이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자꾸만 마음 한구석에 차오르는 서운함.
서운함의 정체는 나의 변화에 있었다.
그 서운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자, 변해가는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다시 익숙해져 가는 것. 차갑게 식은 텅 빈 침대에 들어가 나만의 온기로 이불속을 데우며 스르륵 잠에 빠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그리고 떠올렸다. 나는 원래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했음을. 고요함 속에서 생각의 실을 짜 맞추고, 어휘와 낱말을 꿰어 글을 써 내려가던 그 시절을. 나는 어느새 괴짜 작가 지망생이던 총각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점점 아내와 함께하던 생활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 익숙하던 감각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서운함. 아마도 나의 서운함의 정체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던 때 핸드폰이 울린다. 아내의 화상통화다.
“그냥. 똑같았어요. 일하고, 돌아와서 밥 먹고, 치우고.”
“그다음엔?”
“그냥 쉬었어요. 소파에 누웠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인터넷도 좀 뒤적이다가 유튜브도 좀 보고.”
당신은요? 당신은 어땠어요? 장모님이 잘 챙겨주시죠? 내가 묻자 아내가 웃으며 답한다.
“바빠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먹이고, 주무르고, 운동시키고. 엄마랑 동생이랑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잘해주시는 거 맞네.”
혈색이 많이 좋아졌어요. 목소리에도 힘이 좀 붙었고. 많이 좋아졌다. 다행이에요. 나의 말은 아내의 얼굴을 미소 짓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나의 속은 평화롭지 못하다. 아내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아내가 멀어질수록 내가 아빠가 되어간다는 감각도 함께 멀어져 가는 것만 같다.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 갈수록, 내가 언제 결혼을 했더라 싶을 정도로 빠르게 나의 생활은 혼자만의 시간에 맞게 새로운 균형을 찾아간다. 못내 불안한 이 감각. 함께 쌓아 올렸던 시간이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져가는 것 같은 그 느낌.
전화를 끊고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된다. 아내는 지금 장모님과 처제, 처남 곁에서 잘 회복하고 있다. 바로 곁에서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차오르는 불안감과 서운함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어쩌면 남편으로서 해주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도 어느 정도는 섞여있을 듯도 싶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생활을 통해 아내와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면 각자가 자기 역할을 하며 각자의 싸움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모든 걸 다 이해할 수도, 또 이해받을 수도 없다. 서로의 영역과 역할에 충실하기만 해도 힘에 부쳐 상대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순간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의 영역을 다시 쌓고, 그 안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혼자면서 둘이어야 하는, 그런 순간들을 통해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만 한다.
나의 회복도 챙기기로 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코로나에 걸렸었다는 걸. 나 또한 코로나로 인해 건강이 상했고, 아직도 완전히 돌아오지 않는 목소리와 얼음처럼 하얗게 변한 얼굴로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음을. 코로나 격리가 끝나기 무섭게 쓰러진 아내를 돌보러 응급실로 달려갔고, 늘 불안한 경계상태로 지난 2주를 지내며 회사와 집을 왕복하고 있었음을.
쉬어야겠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은 아내의 휴식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휴식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아내는 아내를 아끼는 가족의 품에서 편안하게 잘 회복하고 있으니, 아내가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게 내 건강을 되찾아야겠다고. 잃어버린 나의 혈색을 되찾고, 갈라진 나의 성대를 깨끗하게 붙여놓아야겠다고.
그리고 아내는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보다 더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아직은 다 돌아오지 않은 체력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우리는 한참을 소파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었다. 예전과 같은 모습이지만, 그 속에 담겼던 익숙한 느낌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가 거쳐간 자리에 남은 우리의 생활 패턴은 눈에 띄지 않는 묘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알고 있었다. 여전히 많은 변화를 앞에 두었다는 것을. 우리가 어찌하지 못할 변화가 다가온다는 것을. 그 변화는 우리가 원했지만, 원하지 않는 것도 함께 가져올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또 우리가 어찌하지 못할 불안감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음을.
차마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서로가 같은 걱정을 안고 있음을. 하지만 그래서, 또 어떻게든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찾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