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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Mar 13. 2024

출산, 그 후 1년

에필로그 : 제 글을 읽어주신 소중한 독자분들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꼬물이 아빠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지 어느새 일 년 가까이 지나, 오늘로 꼬물이가 세상에 빛을 본 지 정확히 360일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쓰는 출산일기]를 쓰면서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듬뿍 받았습니다. 걱정 많고 겁도 많은 우리 부부에게 [남편이 쓰는 출산일기]를 연재하는 것은 스스로를 다잡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 개인적인 의도가 가득했던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또 응원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이렇게 감사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서툰 보살핌에도,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꼬물이가 태어나고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봄의 초입에 섰습니다. 늘 되풀이되는 계절이건만, 지난 일 년은 너무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태어났을 때 3.36킬로그램이었던 딸은 이제 10킬로그램을 넘겼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복직을 했고, 저는 이제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꼬물이가 보여준 성장은 눈부실 지경입니다. 초보 아빠의 서툰 보살핌에도 아이는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키와 몸무게뿐만 아니라 인지 행동 등의 발달도 빨라서 상위 5% 정도의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목도 스스로 가누지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도리도리, 곤지곤지, 짝짜꿍을 마스터하고 뽀뽀와 바이바이도 잘합니다. 엄마 아빠 맘마 발음도 또렷한 게 제 엄마를 닮아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듯해요. 순식간에 지나가는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하루하루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아이에 관해 하루 종일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딸바보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위해 바보가 되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의 첫 돌을 앞두고 지난 사진과 영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꼬물이가 세상에 나와 첫인사를 하던 그 모습이 마치 머나먼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어느새 저는 꼬물이가 없었던 때의 제 모습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마치 단 한 번도 아이가 곁에 없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아내도 저도 그 이전의 삶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 년간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한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근본적인 물음은 성인이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오래된 숙제였습니다. 그리고 꼬물이의 탄생은 이 숙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끝에서 끝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으로. 


저는 제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삶의 관점’에서 늘 생각해 왔습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도전과 노력, 그 과정으로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 상대적으로 ‘죽음’은 있지만 감춰진 것, 잊힌 것에 가까웠습니다. 오로지 ‘나의 삶’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반대로 ‘죽음’의 관점에서 저의 삶을 바라봅니다. 꼬물이가 태어났을 때, 저는 곧 저의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여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서는 그 과정 어딘가에 있을 저의 죽음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끝나지만 이 아이의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는 단 한 번도 걱정한 적 없는, 제가 없을 그 시간을 살아갈 이 아이의 삶을 간절한 마음으로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별 미련이 없어서, 언제 갑자기 죽게 된다 해도 별 후회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을 잘하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는 죽음이 두려워졌다는 고백을 했을 때, 저보다 좀 더 빨리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던 친구가 제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주었습니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된 거야라고.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자,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도 어렵지 않게 나왔습니다. 내 삶은, 내 아이가 살았으면 하는 삶의 예시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말로써 가르친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부모님이 보여준 매일매일의 습관과 행동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저는 부모님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삶이 중요한 순간에 얼마나 귀중한 등대가 되어주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말이 아닌 매일의 행동으로 아이의 삶에 등대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저는 제 딸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고 과감하게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길 희망합니다. 갖은 핑계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용감하게 꿈을 좇아 달려 나가길 바랍니다. 설령 넘어져도 툭 툭 털고 웃으며 앞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꿈꿉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얼마나 많은 핑계와 두려움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왔는지를.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꼬물이가 세상에 태어나며 제게 준 선물입니다. 그런 의미로 이 아이는 저의 스승이 되어줍니다. 



아이의 존재로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졌으나, 그에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위로와 위안을 받습니다. 아이를 통해 잊고 있었던 많은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놀다가 잠든 저를 침대에 눕혀주던 아버지의 단단한 팔. 손빨래를 하다 말고 등에 달라붙던 저를 안아주던 어머니의 품. 달려가서 안기면 구수한 사투리로 내 새끼 왔구나, 하고 말씀하시며 손에 가득 사탕을 쥐어주던 할머니. 그 외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제가 받았던 모든 사랑을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나 둘 포기하는 것들이 생기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잃어가던 제게 그것은 다시없을 위로였습니다. 저는 그토록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자 저는 많은 것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짐처럼 쌓여있던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꽤 많이 덜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엇보다 저 스스로에 대한 용서가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는 누구보다 저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은’이라고 지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은’이라고 지었습니다. 금, 은, 동 할 때의 ‘은’입니다. ‘은’은 옛이야기 속에 꽤 자주 성스러운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삿된 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거나 사악한 것들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은’은 귀금속 중에 유일하게 방치되면 그 빛을 잃고 까맣게 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은 그 빛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갈고닦아야 하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삶에 나쁜 것이 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하는 부모의 책임을 모두 담고 싶었습니다. 이 이름이, 우리 부부가 꼬물이에게 주는 첫 선물입니다. 


저는 지금 최선을 다해 작아지는 중입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행복을 밀알을 줍듯 그렇게 주워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삶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는 건방진 말을 해봅니다. 세상은 참 슬프고, 가엽고, 안타깝고, 또 감사하고 행복한 것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삶의 축복을 제 딸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글이 올라가면 놓치지 않고 와서 봐주시며 댓글을 남겨주셨던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용기를 받았습니다. 따듯한 마음을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멀지 않은 시간에 새로운 글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루가,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은이의 성장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까 하여, 아내가 만들어나가고 있는 은이의 인스타그램 계정 주소를 공유합니다. 혹 들르시게 된다면, 아내에게 따듯한 응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 https://www.instagram.com/maria___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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