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별것 없는 일상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비가 내렸다.
누군가 하늘에 달아놓은 수도꼭지가
고장이라도 난 모양이다.
쉴 새 없이 콸콸 쏟아지는 비를 보고,
이제는 우기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사계절이 뚜렷하던 나의 삶에 새로운 기준이 자리 잡는다.
건기, 그리고 우기.
새로운 기준이 자리 잡는다.
건기, 그리고 우기.
은이가 태어난 지 506일이 되었다. 목도 스스로 가누지 못하던 아이는 정신을 차려보니 한 마디 두 마디 단어를 익히고 있다. 이거. 저거. 이거 봐. 앙먀(양말). 맘마. 까까. 무우(물). 아빠(아빠를 가리키며). 아빠(엄마를 가리키며). 아빠(자기를 가리키며). 아빠(신문지에 인쇄된 어느 정치인의 얼굴을 가리키며). 아빠?(그림책 속 강아지를 가리키며).
비가 내렸다. 아이는 삼촌과 이모가 사준 작은 그네에 앉아 까르르 웃으며 더 세게 밀어달라고 소리 질렀다. 꺄아아. 꺄아아. 아이를 보며 웃는 나의 표정에는 굳은 근육의 통증이 어려있었다. 아이에게 웃어줘야 한다는 강박. 찌푸린 표정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나의 욕심.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그런 나의 다소 검게 물든 마음.
육아휴직 11개월 차. 육아하는 가정주부와 같은 일상을 보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할 줄 아는 게 늘어갈수록 웃을 일과 함께 목소리도 커져간다. 안돼. 아니야. 으악! 아이를 향해 뱉는 내 말의 원천은 점점 변연계에서 편도체로 이동해 간다. 발달하는 아이의 기동성과 기능성을 낡아가는 나의 몸이 따라가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몸이 이동하지 못하는 간극만큼 나의 혀가 발 빠르게 먼저 옮겨간다. 나도 모르게 질러버린 소리. "야!" 새로 배운 개념을 적용해 본다. 나는 아마도 우기를 지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아마도 우기를 지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이는 아름다운 표정과 천상의 목소리로 웃음 짓는다. 사랑이 가득한 아이. 아침에 일어나 온갖 인형에게 아침인사로 키스를 남기는 따듯한 아이. 그렇게 아이는 넉넉하게 자라고 있다. 참 다행스럽게도.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나다. 육아휴직이 끝나가는 시기가 오고 있고, 나는 미뤄두었던 꽤 많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회사는? 나의 커리어는? 아이의 육아는? 맴도는 생각의 꼭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 은이가 달려오며 외친다. “무우!(물!)”
아이의 물을 따르며 생각한다. 정신을 차리면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있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이 이후의 일을 상상할 수 있다. 아주 아주 자세히, 모든 디테일을 살려서.
물병을 쥔 아이는 손가락 두 개를 따닥따닥 붙였다 떼며 “이거! 이거!” 하고 말할 것이다. 나는 어색한 영어로 홈팟의 시리에게 부탁한다. “Hey Siri, play baby shark.(시리야, 아기상어 틀어줘.)”그리고 덧붙이는 한 마디. “On repeat.(반복으로.)”
무한 반복되는 아기 상어를 들으며 나는 이 노래를 열 번만 더 들으면 정신병이 올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의 간식을 꺼낼 것이다. 간식을 다 먹이고 나면 그림책을 들고 온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것이고, 이내 싫증이 난 아이를 그네에 앉혀 있는 힘껏 밀어줄 것이다. 부디 오늘은 아이가 공에 관심을 갖지 않기를 바라면서.
공을 던지기 시작한 아이는 이 방 저 방으로 튕겨나간 공을 내게 줍도록 시킨다. 무릎이 아작이 날 것만 같다. 그러다 아이가 문득 생각난 듯 주방에 친 펜스로 가 외친다. “맘마! 맘마!” 그리고 때로는 다르게도 말한다. “밥!”
왜 이 단어만 이토록 또렷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차마 나는 아이에게 왜냐고 묻지 못한다. 주섬주섬 밥과 반찬을 식판에 덜어 데우고, 사방으로 튀기는 밥풀과 반찬을 온몸으로 받으며 밥을 먹이고 나면 양가 부모님에게 화상 전화를 걸 시간이 된다.
목욕을 시키고 밤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고 이를 닦으면 곧 (푹 익은 파김치처럼 지친) 엄마가 온다. 엄마를 만나 신난 은이를 아내는 다정하게 안아 아이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5분 뒤, 문을 닫고 나오는 아내의 등 뒤로 서럽게 목놓아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은 보통 3분을 넘기지 않는다. 졸음 가득한 투정인 탓일 게다. 아이는 옛 저녁에 이미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제 엄마를 닮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을 게다. 놀고 싶은 일념 하나로.
나의 하루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아이를 재운 아내와 나는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거실에 어질러진 아이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다음 날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마친다.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모를 그런 하루가 지났고, 침대 위에 녹아내린 치즈처럼 붙어버린 아내와 나는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한 문제에 대해 떠올린다. 결정은커녕 고민조차 하지 못하는 일상이다.
참 별것 없이 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 쳇바퀴 돌듯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로 우리의 아이는 키가 크고 체중이 늘어간다. 계절이 바뀌는 속도가 빠르다. 참 별것 없는 하루하루. 뉴스조차 보지 않는 외딴섬 같은 생활이다.
이상하기도 하지.
별것 없는 이 일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별것 없는 이 일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오늘 하루가, 어제와 하나도 다를 것 없던 그 하루가 호숫가에 부서진 햇살 조각 같다. 아이는 오늘도 밝게 웃었고, 나는 오늘도 고민하기를 하루 미루었다.
유모차를 끌고 오는 길에 사 온 바나나를 아이는 입안 가득 욱여넣으며 웃었고, 저물어 가는 햇살이 방 안 가득 비추는 모습에 아주 잠시 마음을 빼앗겼다. 햇살에도 향기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별것 없는 일상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계절은 우기인데,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봄이다.
흘러가는 모든 것을 붙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별것 없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자주 일어나는 작은 변화와 때때로 찾아오는 제법 큰 변화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할 줄 아는 게 글 쓰는 것뿐이라, 좋은 핑계로 다시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그렇게, 브런치에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