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9일의 기록.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사방이 깊은 골목의 안개처럼 뿌옇게 흐렸다. 아이의 방에서 들리는 소리. 여섯 시 반. 아내는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주섬주섬 카디건을 걸쳐 입고 아이 방을 열었다. 작은 극세사 이불과 팔뚝보다 조금 큰 곰돌이 인형을 안고 입술을 비비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다 비틀 흔들린다. 두 팔을 뻗어 아이를 품에 안는다.
안녕. 딸. 왜 벌써 깼어.
꿈을 꿨던 모양이다. 아이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보며 동그란 알약 인형을 두드린다. 아빠. 여기.
배게처럼 기다란 알약 모양의 인형을 베고 눕자 아이가 따라 눕는다. 엎드리며 뒤척이다, 이내 일어나 나의 허리에 올라타고 미끄러진다. 한참을 배며 무릎이며 가슴팍을 헤매던 아이는 두 눈을 감은 나의 골반에 기대어 조그만 손으로 토닥이며 말한다. 자장. 자장.
팔을 뻗으며 아이를 부른다. 여기. 눕자. 코.
아이가 팔을 베고 눕는다. 가슴에 올린 손바닥에 두근. 두근. 그 작은 것이 세차게 뛴다. 쉬지 않고 강하게. 블라인드와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웃풍에 저항하듯이.
그런 날이 있다. 문득 일상 속 모든 장면이 반 박자 느리게 흘러가는 날. 평소에 지나치며 보지 못하던 작은 디테일이 바위처럼 눈동자에 쿵 하고 담기는 날. 맥락 없이 어느 의미 없는 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날.
오늘의 새벽이 그러했다. 채도를 잃은 것 같은 공기가. 보석처럼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낡은 창이. 보드라운 이불에 입술을 문지르는 너의 작은 얼굴이. 품 안에서 꼬물거리는 너의 몸짓이. 내 몸을 토닥이던 너의 작은 손가락들이.
이십 분을 부산하게 뒤척이던 너는 결국 나의 팔을 베고 두 눈을 감았다. 새근대는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나를 다시 잠들게 한다. 잠에 빠져들기 전 감은 두 눈 너머로 어둠을 보며 생각했다.
어둠에도 색이 있을까.
어둠에도 색이 있을까.
명도의 차이처럼, 어둠에도 색이 있을까.
색과 색의 스펙트럼 사이 그 어딘가, 분절된 틈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다. 동굴처럼, 토끼굴처럼, 두더지나 쥐의 굴처럼.
나는 안 갈 거야. 물도 가져오지 않았고, 더 내려가면 힘들어서 다시 올라올 힘이 없어. 가려면 너 혼자 다녀와. 나는 다시 돌아갈 거야.
꿈속의 나는 십오 년 전, 그랜드 캐년의 트레일을 따라 내려가던 길 위에 멈춰 선다.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밟는다.
지금이 아니면 돌아갈 수 없어.
네가 말한다. 머릿속에는 길에서 만난 벌새의 요란한 날갯짓 소리와 두 손가락 만한 도마뱀의 재빠른 발놀림이 반복되고, 등 뒤로 지구의 가장 큰 상처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상처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콜로라도의 세찬 물줄기가 웅장한 상흔 위로 새롭게 날카로운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저 상처 속에서 길을 잃을지 모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돌아간다. 내려왔던 그 길을 따라서. 안전하게 원래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로.
내려갔어야 했다. 혼자서. 물 없이. 벌새가 날아갔던 그 길을 따라. 도마뱀처럼 재빠른 발놀림으로.
저린 팔을 조심스레 빼 주무르며 몸을 일으킨다. 다시 잠든 아이는 은백색 숨을 내쉬며 어둠을 조금씩 밀어냈다. 이제 아이에게 아침밥을 주고 비타민을 먹이고,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히고 어린이집에 데려가야 할 시간이다. 아니, 평소보다 한참 늦었다. 좀처럼 없는 늦잠이 되고 말았다.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이의 몸을 두 손으로 쓸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을, 두 볼을, 양쪽 팔을, 가슴과 배를, 두 다리와 발바닥을, 그리고 두 손을.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간 너는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몸을 뒤튼다. 아침이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너의 의식이다.
부스스 일어난 너는 실금 같은 눈을 하고 이를 보이며 웃는다. 두 팔을 뻗어 안아, 하고 말한다. 품에 안으면 목과 어깨에 머리를 폭 기대고 큰 숨을 후, 하고 내쉰다. 온몸을 다해 안기며 아빠, 하고 말한다.
눈을 감자 어둠과 어둠 사이 벌어진 틈이 보인다. 더 깊은 그곳은 표면의 어둠과 다른 색을 하고 있다. 어둠에도 색이 있다. 모든 어둠은 다른 색을 하고 있다.
아빠, 하고 네가 불러줄 텐데.
저 구멍 아래 내가 만나게 될 것이 무엇일까 하고 나는 묻는다. 토끼일까. 너구리. 두더지나 스컹크. 고슴도치나 어쩌면 날카롭게 우는 부엉이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부엉이를 미워하는 올빼미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내려가볼까. 말로 꺼내본다. 어둠에 먹히더라도, 네가 숨을 쉬면 아침이 올 텐데. 은백색 반짝반짝 빛나는 숨을 내쉬며, 보드라운 이불에 입술을 비비며 아빠, 하고 네가 불러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