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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Feb 19. 2021

'사건'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어떤 단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사건의 지평선_1


내가 가장 애정하는 우주영화는 <인터스텔라>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인터스텔라>에서 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사랑한다'는 표현은 아무때나 쓰는 것이 아니라지만, 이 장면이라면 '사랑한다'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묘사한 사건의 지평선 / 출처 : 영화 <인터스텔라>


그리고 이 장면은 내가 '사건'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홀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이 천체의 이름은 '블랙홀'. 우리가 반 평생을 그저 검은 구멍으로만 생각했던 그것이다. 


블랙홀은 현대 과학에서도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블랙홀의 또 다른 이름은 '사건의 지평선'이다.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사건의 지평선'. 너무 멋진 말이지 않는가? 이 말이 특히 멋진 건, 이 단어를 만든 이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천재들'이라는 점이다. 인류에서 가장 똑똑하 두뇌들의 지식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라니! 정령이니 영혼이니 하는 판타지보다 신비한 과학의 영역이 이다면 '사건의 지평선'이지 않을까 싶다.


어떠한 사건이 외부의 관측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계를 이르는 말. 이 안에서는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한다.

'사건의 지평선'의 뜻 / 출처 : <우리말 샘>
사건의 지평선 상상도'대형 블랙홀이 주변의 가스를 빨아들이면서 빛을 방출하는 상상도 ⓒ미국항공우주국(NASA)
2019년 4월 10일 인류 최초로 공개된 블랙홀의 모습. /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사건의 지평선과 그 원리를 설명하는 그림 / 출처 : 네이버


사건의 지평선_2


내가 아는 과학용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어인 '사건의 지평선'. 나는 이 말을 과학 이야기를 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정말 아깝다. 우리 일상에도 블랙홀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니 말이다.


예를들면 우리는 평소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아무리 비밀이 없는 부모자식 사이나 부부사이라 할지라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단편적으로 부부를 예로 들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이 아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당장 나부터도 아내의 일상을 매일 듣고, 궁금해하지만 실제로 내가 들을 수 있는 건 그녀의 8시간 중 많아야 10분 정도에 불과하다. 아내가 아무리 자세히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것은 고도로 압축된 정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궁금해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는 의처증이나 집착 같은 병적 현상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 대해 아는 것보다, 인류가 블랙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 어느 날 말이다. 부부들이 서로의 일상에 대해 고도로 압축된 정보만 받아낼 때, 과학자들은 첨단 광학장비를 통해서 최신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내고 있으니까. 365일 24시간 동안!


그래서 나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말을 아침 07시부터 저녁 17시까지의 우리집 문턱 에도 붙여 놓기로 했다.


블랙홀보다는 한없이 작고 나약한 경계선이지만,

나는 그 너머로 떠난 아내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




출근 버스를 타는 아내, 그녀는 하얀 옷을 입었다❤


가끔은 지평선 너머를 따라 여행한다. 아침 운동을 하기 전, 그녀의 출근길을 배웅할 때다, 이런 날에는 두 번째 지평선을 만난다. 그것의 정체는 14번 버스. 약간의 멀미가 있는 아내는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잘 만지지 않는다. 그래서 버스에 타면 카톡도 전화도 잘 안될 때가 많다.








작가의 다른 글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서툰 남편의 자서전>


<서툰 남편의 자서전>은 28세의 마지막 달에 결혼생활을 시작한 서툰 남편의 일기입니다. 28년을 서툴게만 살아왔던 제가 너무나도 소중한 사랑과 함께 하면서 조금은 덜 서툴어지고 싶은 욕망을 담아 적어갑니다. 결혼을 앞둔 서툰 남자친구나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서툰 남편들이 읽어보시고, 서로의 지혜를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clumsyhus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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