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남편의 자서전 D+570
3년 전 아내와의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내는 나 말고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 걸.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약간의 서운함이 들었지만 이후로 알게된 사실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는 당시 나 이외에 다른 한 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10명도 넘는 남자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질투심이 많은 남자임을 아무리 어필해도 아내는 그들의 이름을 내 앞에서 수시로 꺼냈고, 나와 함께 있을 때도 그들이 나오는 영상을 틀어놓곤 했다. 나중에는 나도 모르겠다 싶어서 아내가 그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동행하고 어떨 땐 목이 터져라 그들의 이름을 불러 외치곤 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독수리와 주황색 아이템으로 무장한 그 마약 같은 남자들의 정체는 '마리한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그로부터 3년 나는 매번 패배하기만 하는 이들이 뭐가 좋냐고 말해놓고, 가뭄에 단비처럼 안겨주는 승리 소식에 함께 기뻐했다. 중간엔 아내가 한화의 팬이 된 이후로 처음이라던 '가을야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지난 해에는 사정상 그들을 보러 자주 가지 못했는데 처참한 결과를 보여주어서 아내가 많이 아쉬워했다. 그래서 올해는 좀 더 자주 가자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연기되고, 무관중 경기를 진행하면서 아직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있다.
이걸 도대체 뭐라고 해야하지... 더..덕후의 성공한 남편(?) 아내 때문에 야구장에 출입하다가, 지난 해에는 <한국시리즈> 시상식 공식 작가가 돼버렸다.
이제는 아내 못지 않게 마리한화에 중독되어버린 나는 아내 몰래 그들의 소식을 열어보곤 있지만, 아내가 낙심할까봐 결과는 조용히 나만 알고 있다.(알면 마음이 아플 정도로 너무 많이 지고 있다 ㅠㅠ 힘내요 한화 ㅠ) 그런데 며칠 전부터 조금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아내가 한화를 떠올리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다른 남자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좀처럼 보기 힘든 '빵터지는 웃음'도 그들을 볼 때는 수시로 나온다. 내 여자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래, 너희는 제2의 한화구나'라고 인정하겠는데... 이들은 가끔 아내를 울리기도 한다.
두 번째로 찾아온 나의 라이벌은 '팬텀싱어'. 매일 매일 목청 터져라 서글픈 사랑노래를 부르는데 베이스, 테너, 카운터테너 등. 평생 음악점수는 C등급을 넘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겐 생소한 직책(?)까지 등장한다. 가끔 나도 들으면서 참 잘부른다, 좋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대체로 사연이 깊은 목소리로만 노래가 나와서 나에겐 잘 맞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이번 주 결승무대를 준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여보 JTBC 회원가입 좀 해줘
우리 팀 투표하게
아아 가슴아프다. 어제 쫄깃쫄깃한 탕수육을 튀겨주고, 짜장면을 볶아 준 나에게... 외간 남자들을 지원사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다니. 내가 그렇게 해야 당신이 행복할 것을 알기에 거절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들의 서글픈 목소리처럼 나도 울부짖고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흔한 대한민국의 2년차 남편. 아내에게 사랑받기 위해 라이벌들을 뽑기로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를 도와 아내의 남자들을 지원사격할 이들을 찾는다.
<JTBC> -> <팬텀싱어3> -> <투표하기> -> <라포엠> 팀에 투표해줄 사람을...
* 계정당 하루 1회 투표 가능하다.
* 농담이다 진짜로 해달라는 거 아니니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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