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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un 16. 2020

매일 아침 아내의 도시락을 싸줬더니 생긴 변화

서툰 남편의 자서전 D+557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나의 아침 첫 일과는 '아내의 도시락 싸기'가 됐다.


외부인이 뒤섞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 걱정된다는 아내의 말에 공감하고,

마침 아내의 동료들이 도시락을 싸먹기 시작했다는 말에 의지가 솟아서


"그럼 내가 도시락 싸줄게, 여보도 도시락 먹어"

라고 약속한 덕분이었다.


사실 저렇게 말한 다음 날 아침, 나는 지난 밤의 약속을 후회했었다.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매일 도시락을 쌀 생각을 하니 귀찮아서' 따위의 이유는 아니었다.



아내의 점심 식사를 내 손으로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충분히 기쁘고 즐거웠다.

다만 당시 벌여놓은 일들이 떠올라 부담스러웠을 뿐이다.


코로나가 시작하기 직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의 이름을 걸고 만든 웨딩스냅 업체의 대표가 됐다. 말이 대표지 사실은 말단 사원이었고, 모든 일을 도맡아서 처리해야 하는 유일한 직원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나는 우리 회사의 CEO이자 마케팅 총괄이고, 고객 상담업무를 비롯하여 사진 촬영, 보정, 앨범제작 등 가장 핵심적인 업무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는 '유일한 직원'인 셈이다. 때문에 당시 나의 하루는 25시간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바쁜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기다 잘못된 자세로 인하여 어깨와 목에 통증이 시작되어서 2시간 가까이 되는 도수치료도 받아야 했다. 한마디로 '물리적인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니 무거운 몸으로 도시락을 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체감한 즉시 '혹시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은 아닐까, 아내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고작 3일 싸주고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나를 덥쳐온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면서 나는 아내의 도시락을 싸주기로 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중간에 늦잠이나 감기몸살 따위의 이유로 몇 일 빼먹긴 했지만, 대체로 성공적인 점심식사를 대접하면서 아내의 도시락싸기가 가져다주는 기적 같은 효과를 체감한 것이다.


처음엔 그저 도시락을 싸주면 '아내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는 성취감이 다 일줄 알았다. 하지만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행동 덕분에 나는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 변화를 만끽했다. 내가 느낀 변화 중 가장 반가운 변화 다섯가지는 아래와 같다.





첫째, 초보 개인사업자들이 가장 쉽게 놓치는 '규칙적인 기상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 아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함께 일어나야, 매일 아침 신선한 도시락을 싸줄 수 있다.

- 자연스럽게 아내의 드라이기 소리에 일어나게 되고, 차가운 물로 손질한 재료를 따뜻하게 조리하며 잠을 깨운다.


둘째, 매일 아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를 즐길 수 있다.

- 나는 학창시절 요리사를 꿈꿨을 정도로 요리를 즐겨한다.

-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기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내게 매일 아침 좋아하는 게임을 한 판 즐기는 것과 같다.


셋째, 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내를 상상할 수 있다.

- 아내의 회사와 업종 특성상 점심이 되면 바쁘게 식당으로 이동해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아내가 늘 마음에 걸렸었다.

- 하지만 도시락을 싼 후로는 비교적 여유로운 식사 시간과 휴식시간을 얻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좋다.


넷째, 대충 차려먹던 나의 식사 시간도 즐거워졌다.

- 아내의 도시락을 싸주고 나면, 도시락 통에 들어간 양과 동일한 반찬이 내게도 할당된다.

- 덕분에 라면이나 대충 끓여먹던 점심이 신선한 재료로 만든 풍족한 식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다섯째, 건강이 좋아졌다.

- 아내의 도시락을 싸준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친구들에게 욕을 먹고 수명이 늘었다.

- 는 농담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요리를 하며 잠에서 깨면 가벼운 요가나 조깅을 한다.

- 기상 시간이 당겨지며 생긴 여윳시간이 아까워서 운동을 시작하며 건강이 좋아졌다.

매일 조깅을 하다보니 메달까지 받았다 ㄷㄷ




아내의 도시락을 싸준 덕분에 본업의 능률이 오르고, 건강이 좋아지고, 행복도도 늘어났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분명한 실화다.


아침을 보다 무거운 책임감과 그만큼 행복한 성취감으로 시작한다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하지만 인정한다.


나처럼 1인 기업을 운영하며 자택근무를 하는 남자가 아니라면 대체로 매일 아침 아내의 점심 도시락을 싸주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남편들은 자신이 못해준다고 자책하지 말고, 이 글을 읽은 아내들은 본인의 남편은 왜... 라며 실망하지 말자. 그래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저 작은 용기를 내보자. 일주일에 하루, 아니면 주말에라도 사랑하는 최측근을 위한 식사를 만들어보자고.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중이라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충분히 노력해볼 가치가 있다.



행복하게 식사하는 아내(남편)의 모습,

남편(아내)이(가) 도시락을 싸줬다며

동료들에게 자랑하는 아내(남편)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까짓 잠 30분 덜 자면 그만이니까.






인스타그램에 매일 한 편 짧은 글을 쓰고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kwangseok_photographer/



<서툰 남편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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