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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un 05. 2020

오랜만에 아내와 마주보고 밥을 먹었다

서툰남편의 자서전 D+546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보정작업을 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해를 만났던 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아내를 못본 채 하고 슬쩍 전봇대 뒤로 숨었다. 요즘 한창 핸드폰 게임에 빠져사는 아내이기에 나를 못보고 지나치면 놀래켜줄 생각이었다. 잠시 기다렸는데 아내가 오지 않았다. 전봇대 뒤로 슬쩍 바라보니, 아내는 몸을 반도 숨기지 못하는 얇은 기둥 뒤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만났다. 오늘 아침 이후로 10시간 만에, 오늘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어젯 밤 아내와 함께 우중 러닝을 즐긴 뒤, 아내는 약간의 두통을 호소했다. 빨리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쉬고 싶어했지만 집에는 마땅한 반찬이 없었다. 아내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설득한 뒤 집근처 마트로 향했다.


애호박 2개에 1300원, 부침용 두부 한 모 990원, 새송이버섯 4개 1400원, 햇감자 한 봉지 2400원. 아내에게 신선한 채소로 만든 따뜻한 부침과 조림을 해줄 생각으로 바구니를 채웠다. 계란 한 판까지 13000원을 조금 넘는 식재료를 사서 집으로 왔다.


호박을 씻어 손질하고, 두부를 썰어 소금간을 해서 물끼를 뺐다. 새송이 버섯은 반으로 썰고, 세로로 얇게 썰었다. 재료들에 물기가 빠지는 사이 부침가루와 계란물을 준비하고 팬을 달궜다. 기름이 톡톡 끓어오른 소리에 맞춰 계란을 입힌 애호박, 버섯, 두부를 차례로 넣고 부쳤다. 호박과 버섯은 그대로 무침으로 마무리. 버섯 일부와 두부에는 간장과 물을 붓고 고추를 썰어 올려 조렸다.


그렇게 우리의 저녁 식사가 완성됐다.


그 모습과 향기는 고픈 배를 더욱 자극했고, 우리는 사진을 찍는 것도 잊어버린채 식사를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소파와 TV 사이에 밥상을 놓고 앉아 밥을 먹는다. 항상 나란히 앉아서 TV를 켜고 식사를 시작해왔다. 오늘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따끈한 음식이 많이 있으니 TV 대신 서로를 바라보고 먹자고 했다. 밥을 먹는 속도를 더 천천히하고, 맛을 음미하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TV 대신 서로를 보고 먹기는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속도 조절엔 실패했다. 맛은 중간중간 조금씩 느꼈지만 그 맛이 느껴질 때마다 더 빠른 속도로 다음 반찬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다행히 두부, 버섯, 호박이 주 재료였기에 칼로리로는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라고 위안한다)


그렇게 오늘은 오랜만에 아내와 마주보고 밥을 먹었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던 사진.


결혼 준비를 하던 시기 신혼집 입주 후 우리의 첫 식사때 찍은 사진이다.

그러고보니 이 때도 두부가 반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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