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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un 26. 2020

대표의 삿대질에 '화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서툰 남편의 자서전 D+567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사진작가로 살고 있지만, 글의 배경이 되는 시점은 내가 글밥을 먹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실적이 정말로 좋지 않았다. 아마 입사 이례 최저의 실력을 보여주던 시기였을 것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면 '노력하면 되겠지'하는 희망이라도 있었을 텐데, 매일 늦은 새벽까지 글을 쓰는데도 결과는 언제나 참담했다. 대표가 나에게 처음 삿대질을 했던 건 연이은 새벽 야근 직후, 밤샘 작업까지 더한 날이었다.


저녁식사도 거르고, 퇴근도 하지 않고,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세수를 6번이나 하면서 글을 썼다. 동료들이 하나 둘 출근하고, 어느새 사무실이 북적이게 되었다. 대표는 그날 11시를 넘겨 출근해서는 동료들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밥보단 잠이 절실했기에 식사를 참석하지 않았다. 그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대표는 모든 직원들을 근처 카페로 모아놓고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다른 동료들 노력하는데, 당신에게선 노력이 느껴지지 않아요. 게다가 동료들을 존중하는 마음도 없어 보여요. 점심시간엔 동료들이랑 같이 밥을 먹고 소통도 해야지. 광석 씨는 참 좋은 사람인데 그 한 가지 아쉬움이 장점을 덮어요. 일주일 안에 변화하지 못하면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요.


대표의 언성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을 즈음, 그래서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을 끝낸 카페 사장님도 나를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볼 즈음. 대표는 삿대질을 하던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며 말했다. 대표가 자신의 허벅지를 찌를 때마다 나는 차라리 내 가슴을 찔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일기를 쓰면서 나는 그동안 믿어왔던 모든 신념을 뒤집었다.

일에 대한 생각, 노력에 대한 생각, 실력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만족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가 인정하는 결과가 중요했다.

과정의 아름다움은 성공한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 직원에게 바라는 '실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 후 어깨를 가득 채웠던 허세를 쫙 빼고, 본질에만 집중한 글을 썼다. 매일 연달아 야근하던 습관을 정리하고 18시가 되면 칼퇴근을 해서 몸과 정신을 가꿨다. 좋은 글의 기본이 되는 '맑은 정신'을 찾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팀 전체 피드백에서 모두가 별로라고 평가했던 글이 역대급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동료들은 말했다.


솔직히 그동안 광석 씨 글은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 그냥 우리와 스타일이 다른 것이었어요.
광석 씨 다운 스타일로 성장하길 응원할게요.


사실 그랬다. 내가 아무리 밤새 글을 써와도 팀 전체 회의 시간이 지나면 내 글은 내 것이 아닌 글이 되어 있었다. 선배들의 피드백에 대표의 피드백을 얹어가며 글을 수정하는 사이, 내가 처음 의도했던 생각들은 모두 사라지고 동료들의 피드백만 남은 글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자연스레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는 횟수가 줄었고, 피드백을 거부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허락(?) 같은 게 생긴 기분이었다. 덕분에 조금 더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연달아 좋은 결과를 만들면서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자에게 '영원한 영광'은 없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슬럼프를 맞이했고, 다시 타율이 좋지 않았다.

동료들도 대체로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 나를 한 사람의 선수로 인정하고 믿어주는 분위기라 동료들의 피드백을 탓할 수도 없었다. 성장하던 실력이 분명하게 멈춰 선 시기였다.


그 날은 웬일인지 오후 3시에 출근한 대표는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하다가 1층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곤 과거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던 그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요즘 너무 자만하는 것 같아요.

잘하고 있는 건 아는데, 살짝 거슬려요.
조금 겸손해지세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이 그러하듯. 두 번째는 처음보다 덜 충격적이었다.

처음엔 큰 상처가 생겼었다면 이번엔 큰 의문이 생겼다.


'이 사람, 도대체 내 실적을 보고 하는 말인가? 요즘 나랑 대화를 나눴던 적이라도 있었나? 아니, 애초에 이 사람이 나에게 바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실적? 실력 향상? 나의 불행? 자신에 대한 굴복? 도대체 뭐지?'


하지만 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폭언은 지난번 상처의 흉터를 뚫고 나의 내면으로 침투했다. 실적이 좋을 때 들었으면 반성이라도 했을 텐데... 최악의 결과를 만들며 자존감이 한껏 떨어져 있던 시기라 아픔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대표가 책상을 두드릴 때마다 '차라리 내 가슴을 찌르라니까'라고 생각할 때 즈음 나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다 큰 성인 남성이 회사에서 눈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성적이 좋지 않은데 자만하지 말라니, 지금보다 더 위축되어 있던 시기가 없는데... 내가 여기서 더 겸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대표는 내 데이터를 보더니 자신이 착각했다고, 계속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 날 점심시간, 혹시라도 나의 자만이 다른 동료들에게 불편함을 끼쳤을까봐 미안함을 전했다. 그 말을 듣던 동료 중 한 명이 처음으로 나에게 언성을 높였다.


"무슨 소리예요? 광석 씨 요즘 너무 잘하고 있어요. 오히려 자부심을 더 가졌으면 좋겠던데! 그런 개소리 듣지 말고, 그런 생각 하지 말아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그 사람 오늘 기분 안좋아보였는데 광석 씨한테 푼 거예요."


동료의 위로 덕분이었을까? 그 주에 쓴 글을 통해서 나는 간신히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지난번 경험과 이 경험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을 바꿨다.


잘하는 것보다 역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보다 역시 내가 만족하는 게 시작이다.

위 두 가지가 갖춰져야 실력은 향상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대표에게는 역시 과정보단 결과, 만족 보단 인정이다.

단, 그는 어떤 결과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후로는 나에 대한 평가가 박한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에 대한 평가가 좋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나다움'을 유지하는데 더 큰 공을 들였다. 글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누군지도 모르고, 내 글을 무슨 생각으로 읽었는지도 모르는 구독자들의 '조회수', '좋아요' 따위에 내 마음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흘러 다니면 그보다 못한 글이 없을 정도로 최악이 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정든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고, 나는 회사에서 가장 타율이 좋은 선수. 회사에 가장 많은 개인 수익을 창출하는 선수가 되었다. 동료들이 떠난 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다시 삶의 패턴이 깨어지고 있었다. 신혼 초기여서 몸이 회사를 떠나는 시간은 동일했지만, 아내와의 저녁식사 이후 새벽까지 일을 이어가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새벽 4시에 잠에 들었다가 6시에 일어나 출근했던 날, 어김없이 11시쯤 출근한 대표는 나에게 말했다.


회사를 떠나 주세요.



허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의 성장은 곧 회사의 성장. 회사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이라는 회사의 말을 믿고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실적을 올려왔는데... 3년 동안 10배 이상 성장한 회사가 지친 나를 내몰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회복하는데 그리 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했다.


정규직에 대한 마땅한 이유 없는 해고 통보. 절차도, 법규도, 의리도 없는 저급한 통보였다. 그런 원시적인 태도에 일일이 화낸다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노무사에게 물어보니 약간만 더러운 싸움으로 끌고 가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더러운 싸움을 하고 싶지도, 큰 보상을 얻고 싶지도 않았다. 대표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내가 공들여 키운 회사와 그 회사의 동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사가 피해보지 않을 정도, 내 마음이 아쉽지 않을 정도, 법에서 보장하는 최소한의 보상(30일 이전 해고 통보 시 1개월 급여 + 3개월 퇴직금 + 권고 사직서)만 받고 관계를 정리했다.


반년 정도 흐른 지금. 대표와는 직원 대 대표 관계에서 그냥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전환했을 뿐. 서운함도 악감정도 남기지 않았다. 흉터가 언제 왜 생겼는지 기억은 있지만, 아픔은 남아있지 않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약간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굳이 격지 않아도 될 아픔이었지만, 그래도 그 아픔을 겪은 덕에 배운 것이 있었으니까.


내가 잘하든, 못하든 쏟아지던 그의 악평과 폭언 덕분에 나는 앞으로 변하지 않을 가치관을 확립했다.


내 삶의 기준은 언제나 나에게 있어야 한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분명하다.

나의 잘함은 오직 나만이 칭찬하고,
나의 부족함은 오직 나만이 질책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나의 평가가 객관적인지를 가늠할 때 사용하는 근거 정도일 뿐이다.

스스로 잘해가고 있다면 스스로를 믿자.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면 얼른 고치자.  


이 믿음은 퇴사 이후 6개월 만에 안정적인 창업과 성장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당시 회사 동료들 중 가장 가까이서 가장 조심스레 나에게 큰 힘이 되었던 동료는 미켈란젤로를 좋아했다. 그가 쓴 글 중에는 이런 사례가 나온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역작을 그릴 때, 천장 모서리의 작은 그림을 그리는데 몇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걸 본 조수가 "아무도 안 보는 곳에 왜 그렇게 힘을 쓰냐"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안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그 동료가 왜 대표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아파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는 잘할 때도, 못할 때도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는 자신의 기준을 중요시했다. 잘하는 것도 본인이 알기에 칭찬을 고파하지 않았고, 못하는 것도 본인이 알기에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 받지 않았다.


그런 그의 자세를 떠올리며 요즘 자영업을 이끌어간다. 평소 좋아하던 사진이라는 취미가 13년 동안 무르익어 특기가 되어버렸기에 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역시 주변에선 안될 것이라 말했지만, 그건 그들의 평가일 뿐. 나는 나의 사진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요즘 나를 거쳐간 신랑 신부님들은 말한다.

"작가님 사진에선 따뜻함이 느껴져요."
"다른 작가님들과 달리 진정성이 있어서 좋아요"
"뭐랄까, 사진에서 확신이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따뜻함, 진정성, 확신.

사진은 어느새 나의 내면을 닮아가는 듯하다.



직장 상사의 말에 흔들리지 말자.

회사 대표의 삿대질에 아프지 말자.

단기간 짧은 성과에 자만하지 말자.


성장과 슬럼프를 반복하는 사이 스스로를 담금질하자.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자.


그것이 부족함이든 충분함이든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고,

그 균형을 맞춰낼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뿐이니까.






따뜻한 가슴을 지켜내기 위해

진정성을 갖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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